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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5.04.25 | 바드-춤추는 바람 1
  5. 2015.04.25 | DEPAPEPE-二人の写真(두 사람의 사진)
  6. 2015.04.24 | 위플래시 리뷰
  7. 2015.04.14 | 여유와 휴식에 대하여
  8. 2015.04.08 | 복싱 일지. 일주일째
  9. 2015.03.31 | 복싱 일지. 1일째
  10. 2015.03.10 | 킹스맨 리뷰(스포)

'위플래쉬' 와 잔혹 동시집 사태에 대한 생각

잡설 | 2015. 5. 25. 22:39
Posted by 메가퍼세크

몇 주 전에 위플래쉬를 보고 리뷰 하나를 휘갈겼는데, 영 뒷맛이 좋지 않았다. 필력의 한계인지 표현력의 한계인지, 내가 느꼈던 복잡한 기분을 거의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가지로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로 조금이나마 더 숙성되고 다듬어진 내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여기에 정리해 보려 한다.




'가르친다' 는 것은 무엇일까?


교육, 훈련, 훈육. 다양한 종류의 가르침을 일컫는 많은 말들이 있지만, 모두 근본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자잘한 단어의 뉘앙스 차이는 주로 그 변화가 어떤 면에서 일어나는지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변화는 보통 크게 두 가지, 기능적 변화와 인간적 변화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기능적 가르침은, 주로 '훈련' 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훈련을 주도하는 사람은 총을 쏘거나, 못을 박거나,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은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기술들을 높은 수준으로 익히고 있고, 그런 기능들을 훈련받는 사람에게 전수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합의에 기반하며, 일종의 거래로 생각할 수 있다.


반면 '교육' 이나 '훈육' 같은 단어로 일컫는 인성적 가르침은 좀 더 복잡하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언가의 방법을 통해 교육자가 교육받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고의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던가, 함부로 물건을 부수지 않는다던가 하는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인성적 변화를 주는 가르침의 복잡함은, 그 가르침의 당위성을 판단할 때 드러난다.


어떤 가르침이 '당위를 가진다' 고 표현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두 입장에서의 만족도를 생각할 수 있다.(앞으로 편의상 '스승' 과 '제자' 로 통칭한다) 스승과 제자가 모두 가르침을 주고 받고자 하는 의사가 있고, 그 과정과 결과에 만족한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결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기에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헬스 트레이너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자. 트레이너의 제자는 자신의 몸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고자 하는 큰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트레이너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 가르침을 받는다, 이 가르침은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운동의 방법을 배우는 것만을 이야기하겠지만, 많은 트레이너들은 제자가 덤벨을 더 이상 들 수 없다고 할 때 한두 번 더 시키는 것처럼, 기능적인 가르침의 영역을 벗어나곤 한다. 이는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제자의 의사를 거슬러 가르침을 강요하는 행동이지만, 보통 여기에 불평을 표하는 제자는 거의 없다. '자신의 몸을 변화시킨다' 는, 조금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위플래쉬의 플래처 교수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는 비인간적인 긴장과 인간적 모욕, 체벌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교육을 시행했다.

모욕을 당한 제자 한 명이 자살하는 등 그의 교육의 부작용은 매우 컸지만, 사실 기본적인 구도는 위의 예시와 그렇게 다를 것이 없다. 교육의 장기적인 목적은 '명 연주자의 양성' 이고, 그것을 위해 제자에 대한 체벌, 인격 모독, 고압적인 분위기 등을 활용해 정신적 충격을 주어, 그 반동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극단적이고 도박적인 방법은 맞지만, 본질적으로 틀린 방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두 예시 모두 시간에 따라 제자의 정신 상태가 변하는 가르침의 과정이고, 헬스 트레이너의 사례에서 중간 과정보다 마지막에 다다른 제자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여기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플래처의 방법이 정말로 명연주자를 양성할 수 있다면, 원칙적으로는 그 방법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너무 과할 만큼 강하게 시행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또한 얼마 전에 일어났던 잔혹 동시집 사태도 이런 프레임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특정한 인성적 가르침을 단계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된 관습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당연시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항상 밝고 명랑하고 선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고, 단지 보편적인 고정관념이었을 뿐이다. 어린이들의 정신세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확연히 달랐고, 이전의 관념과 대비되는 잔혹함도 충분히 들어 있었다.


물론 어린이들의 그런 면들이 소름끼친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런 부분이 빼놓을 수 없는 아이들의 진짜 '동심'의 일부분이라면, 어른들에게는 교육을 통해 그것을 왜곡시킬 권리가 있는 것일까? 이는 정말로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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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절망

자아성찰/기타 | 2015. 5. 25. 22:11
Posted by 메가퍼세크

나는 정신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매일 내가 가진 모든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걱정, 나와 전혀 관계없는 무언가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많은 스트레스 덩어리들을 안고 산다. 그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중학교 즈음에는 매일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이 들지 못했고, 지금도 항상 일정 정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사람의 뇌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때, 내 정신은 안정되고 잠시 동안의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상태가 끝나면 다시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몰려오고, 이하 반복. 


가끔은 이런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켜도 그게 의미를 갖는 건 어디까지나 그 순간뿐이다. 멋진 영화를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무언가의 수단을 통해 얻은 즐거움이나 기쁨은 언제나 그 시간뿐, 그 감정이 식은 후면 내 정신은 언제나 똑같은 상태로 가라앉는다. 하루 종일 재미있는 일을 한 날과 끔찍한 경험을 한 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 상태는 기억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내 욕망과 욕구, 기쁨과 즐거움은 언제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와 같다. 죽을 힘을 다해 기분의 바위를 꼭대기로 올려 놓으면 다시 굴러 내려오고, 올리면 다시 내려오고. 참 끝을 알 수 없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계속될 바보짓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겠지만.

 

오필리아-루시아

취미/음악 | 2015. 4. 25. 11:57
Posted by 메가퍼세크



그대의 낱말들은 술처럼 달기에 
나는 주저 없이 모두 받아 마셔요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너는 나를 다 믿었죠 

어떤 때에 가장 기쁨을 느끼고 
어떤 때에 가장 무력한 지 
나 자신도 알지 못 했던 부분과 
나의 모든 것에 관여되고 있어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그러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떠났다가 다시 오라 내게 머물지 말고 

부유한 노예 녹지 않는 얼음 
타지 않는 불 날이 없는 칼 
화려한 외면 피 흘리는 영혼 
하나인 극단 그것들의 시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그러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그래 녹지 않는 얼음처럼 
아픔을 마비하고 고통을 무감케 해 
함께 할 수 없을 거예요 
서로를 찢고 할퀼 거예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모를 거예요 

그대의 낱말들은 
그대의 낱말들은 




루시아의 가사는 무언가 특별하다.


소재의 선택이나 본인의 감성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그 소재와 감성을 가사로 담아내는 표현 능력.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주제라도 다른 사람들이 조망하지 않았던 측면을 파고들어 자신만의 새로운 정서로 다시 창조하는 느낌이 든다.


이 곡은 그런 측면이 가장 잘 돋보이는 곡 중 하나다.

'햄릿' 의 등장인물인 오필리아의 정서가 소재인데, 얼핏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사랑과 집착이라는 두 가지 정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문화 컨텐츠에서 가장 널리, 많이 쓰이는 소재에 속하고, 잠깐 가요 차트만 뒤져도 그에 대한 곡을 수십 개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의 내용을 아는 사람에게, 곡의 가사는 다르게 들린다.


'햄릿'의 도입부에서, 오필리아와 햄릿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복수에 눈이 먼 햄릿이 미친 척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도를 당하고, 복수극에 얽힌 사고로 자신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마저 잃은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해 미쳐버리고 결국에는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사람에게 매도당하고, 아버지까지 잃어버리게 된 비련의 여인 오필리아. 그럼에도 이전의 사랑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면, 그 정서는 이 노래의 가사와 같지 않았을까. 햄릿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실성한 오필리아가 부르는 아리아는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곡에 쓰여진 표현들이다. 일반적인 사랑노래들의 레퍼토리처럼 사랑의 대상에 집중해 그저 자신의 사랑을 토로하고 애원하는 대신, 이 곡은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은유와 비유를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대신 '당신의 낱말들은 술처럼 달고,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당신은 나를 믿어 주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당신을 영원히 생각하겠습니다' 대신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하고, 영원히 안고 있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장본인을 사랑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한탄하는 대신 수많은 역설적 상황에 대한 묘사와 내적 갈등에 대한 암시로 곡 속에 녹여냈다.


결국 이 곡의 가사는 햄릿이라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등장인물에 대한 깊은 감정 이입.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 능력이 합쳐져 탄생한 훌륭한 2차 창작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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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드-춤추는 바람

취미/음악 | 2015. 4. 25. 11:56
Posted by 메가퍼세크


심심해서 엔하위키를 눈팅하다가, '바드' 항목에서 동명의 인디밴드를 발견했다.


밴드 이름 한번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유튜브를 검색해 노래를 들어 보았고, 처음 눌러본 곡 '아이시절' 의 전주가 나오기 시작한 지 불과 5초도 안 되어 이 밴드가 내 취향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잔잔하면서도 활기찬, 마치 축제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액센트가 분명한 힘있는 연주.

거기에 더해진, 정말로 음유시인들이 노래할 법한 평화로우면서도 어딘지 아련한 가사.


곡에 따라 분위기는 꽤 다르고 연주곡도 꽤 있지만, 전체적인 악기들의 조화와 분위기 조성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 자체가 말도 안 될 만큼 내 취향의 스트라이크 존을 직격했다.


첫 곡을 들은 지 10분 만에 음원 사이트에서 모든 곡을 구입하고, 음악 플레이어에 넣어 랜덤 반복 재생으로 돌린 지 벌써 거진 이틀째. 앞으로 일주일 가량은 듣게 될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 외적인 요소로 고른 가수의 음악이 마음에 드는 것은 투어리스트에 이어 벌써 두 번째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제목 선정이나 앨범 구성 같은 쪽에서도 취향이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언제 콘서트라도 하면 꼭 보러 가야지.


바드(Bard) 2집 - Road To Road
음반
아티스트 : 바드(Bard)
출시 : 2012.05.24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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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APEPE-二人の写真(두 사람의 사진)

취미/음악 | 2015. 4. 25. 11:52
Posted by 메가퍼세크

한 때 통기타 소리에 꽂혀서 연주할 만한 곡을 찾다가 발견한 그룹.

분위기도 좋고, 연주 실력도 좋고, 가사 한 줄 없이 연주로만 승부하는 그 담백함도 좋다. 


잔잔하면서도 확실한 높낮이와 포인트가 있는 멜로디는 마치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서 

데파페페 곡들을 들을 때는 다른 곡들에 비해 조금 더 한음 한음에 집중하게 된다.

연주자가 어떤 생각과 감성으로 현을 뜯고 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대부분의 노래가 다 좋지만 이 곡, '두 사람의 사진' 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내가 생각하던 '잔잔한 통기타 연주곡' 의 이상적인 이미지에 완벽하게 매치되어, 처음 듣는 순간 참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전주가 끝나고 시작되는 첫 마디 멜로디부터 아련하고 추억하는 듯한 정서가 진하게 담겨 있고, 너무 방방 뜨지도 축 처지지도 않으면서 가을 길을 산책하는 것처럼 이어지는 분위기. 가사가 없음에도 전체적인 멜로디의 완급 조절이나 높낮이가 정말로 말소리를 닮아서, 누군가가 모닥불 앞에서 조용히 추억을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교나 어려운 테크닉이 충분히 들어가 있음에도 곡의 분위기에 충분히 녹아들어, 과도하지 않은 맛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정말 세심하게 조절을 잘 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언젠가 기타를 배우게 된다면, 그 이유의 90% 이상은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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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시 리뷰

취미/영화 | 2015. 4. 24. 23:07
Posted by 메가퍼세크

모진 훈련으로 거장을 키워낼 것인가, 너그러운 교육으로 평범한 제자를 키워낼 것인가.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스승들의 골치를 썩이고, 지금도 썩이고 있는 질문일 것이다.


이 영화, '위플래쉬' 는 그 중 첫번째 극단을 선택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연주자를 담금질하기 위하여 비인간적 경쟁과 체벌, 인격 모독까지 서슴치 않는 플래처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가 날 때까지 드럼을 치는 네이먼은 무서울 만큼 닮았고,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면서도 결국은 서로의 철학과 열정에 공감하여 펼치는 마지막 신의 열정적인 연주는 첫번째 극단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과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 이상적인 무대를 이루어내기 위하여 네이먼과 다른 학생들이 겪었던 잔인할 정도의 고통은, 관객이 플래처의 교육방침과 네이먼의 열정에 단순히 감동할 수 없게 만든다.


과연 채찍질을 통해 만들어진 한 명의 위대한 연주자는, 그 채찍에 맞아 다친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는 매우 복잡하고, 또한 중요하며,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플래처의 교육 방식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자의 자존심이나 인권, 명예와 같은 가치는 타인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핵심적인 가치들을 무참히 짓밟는 플래처의 교육은 결과에 상관없이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얼핏 보면 이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 그런 가혹한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극중의 네이먼도 부분적으로는 그렇고, 여러 운동선수들이 스스로 혹은 코치, 트레이너들을 통해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넣는 훈련을 추구한다는 것이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더 가까운 예로는, 야간자율학습에 자율적으로 참가하여 스스로를 공부하도록 하는 고등학생들도 있고.


물론 위의 사례들은 플래처 교수의 가혹한 수업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 높은 성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때로는 자유를 빼앗긴 채로 얻은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플래처 교수의 방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 문제의 답은 간단하다. 플래처 교수의 교육 방침은 분명 잘못되었으나, 그 잘못은 가혹한 교육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플래처 교수가 자신의 팀에 들어오기로 한 한 모든 모든 학생에게 자신의 교육 방침과 스타일을 사전에 공지하고, 충분히 그에 공감한 학생들만으로 팀을 꾸렸다면 어땠을까? 극중 나타난 대부분의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그쳤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자신과 공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한, 소통의 문제였던 것이다.


 

여유와 휴식에 대하여

잡설 | 2015. 4. 14. 00:50
Posted by 메가퍼세크

요새, 생활에 여유가 없다.


일은 그렇게 바쁘지 않고, 출근과 퇴근도 자유롭고, 취미 활동도 충분하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어쩐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휴식이 부족한가 싶어 잠자는 시간도 늘려 보고,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쉬기도 하고, 독서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는 쉽게 생기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리 안정적인 정신상태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로 무언가에 휘둘리는 느낌은 처음이었기에 문득 내가 편안하게 쉬고 있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야간자율학습 시간.


매일 한두 시간 동안 죽어라고 공부를 하다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1층으로 내려가  교정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굳이 1층까지 내려갔던 이유는, 그 자판기가 조금 특이했기 때문에. 다른 자판기 커피와는 조금 다르게, 커피 가루와 물을 섞어서 내려주는 게 아니라 물과 커피가 따로 내려온 이후 젓는 막대가 꽂혀서 나왔다. 신기하기도 했고, 기분 탓인지 다른 자판기 커피보다 조금이라도 더 맛있어 보여서 거의 그 자판기 커피만 마셨던 것 같다.


며칠 그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었는데, 아무래도 교실에서는 좀 멀어서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고, 바깥에 접해 있어 어둡고. 다른 사람 신경쓸 것 없이 혼자 조용히 있기 딱 좋은 곳이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그 자판기로 내려가, 커피를 뽑고,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머리를 식히다 보니 문득 그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고, 수능을 보는 그 날까지 거의 매일 그 커피를 마시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했다.


내가 이 고생을 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수능을 망치면 어떡하지. 대학에 들어가서도 친구놈들을 계속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생각했고, 대부분의 결론은 '어떻게든 되겠지' 로 끝났다.


커피를 마시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밤하늘을 보면서 기분이 풀렸는지. 혹은 둘 다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은 평소의 비관적이고 스트레스 받던 심리상태가 어느 정도 풀려서,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꽤 많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마치 공원처럼 잘 꾸며지고 분위기도 좋았던 캠퍼스를 산책할 때,

시험 기간에 가장 친한 친구 집에서 밤을 새다가 잠시 쉬려고 근처를 걸어다닐 때,

모든 면에서 내가 생각하던 분위기에 딱 맞는 카페를 찾았을 때,

특히 멋지다고 생각했던 가로등 앞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을 때.


보통은 아주 조용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이 들려오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에서, 몸의 컨디션이 충분히 좋으면서 주변이 어둡거나 은은한 조명이 있고, 주변의 풍경도 마음에 들 때, 내가 진짜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참 까다로우면서도,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조건들이기도 하다.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아무 것에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나에게 가능한 자극을 주지 않는,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기에. 나에게 거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거슬리지 않거나 긍정적인 자극들만 남겨야만 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보호할 수 있겠지.


물론 주변 환경만 맞는다고 무조건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휴식을 취하는 주체는 '나' 이고, 내 몸이나 마음이 휴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내가 놓여 있는 환경에 대해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심리를 가지지 않으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결국 나에게 있어 제대로 휴식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 주변 환경이 모두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하는 까다로운 일이고, 어찌 보면 제대로 일한다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떤 것일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몸의 피곤함? 새로운 장소에 대한 이질감? 어느 쪽이든, 언젠가 다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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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일지. 일주일째

취미/복싱 | 2015. 4. 8. 01:16
Posted by 메가퍼세크

첫 날 일지를 쓴 게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평소에도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던 건 아니었지만, 요새 특히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는 복싱을 시작한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원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고 있을 시간에, 스텝을 밟고 주먹을 휘두르며 무언가에 열중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하루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줄여 주었고, 매일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다 보니 약간 있었던 불면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도 하루를 짧게 느끼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말하자면 하루 중에서 다소 여유롭고 지루했던 시간들을 다듬어 잘라낸 느낌?


뭔가 서론이 길었지만, 요컨대 복싱이 들어간 일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다.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건 참 위대해서, 절대로 적응할 수 없었던 첫 날의 느낌이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겨우 일 주일 만에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줄넘기를 할 때, 한 라운드의 처음과 끝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한 라운드 안에서 얼마 되지 않는 체력을 순식간에 방전시키고 한 10초쯤 헐떡거리다가 다시 줄넘기를 시작하는 과정을, 셀 수도 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라운드 공이 울렸는데 이제는 대략 두 번이나 세 번쯤의 전력질주로 한 라운드를 끝낼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진 것이다.


백 수십개에서 이백 개 정도의 줄넘기를 한 번 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백 수십개 정도를 하면 라운드의 끝나는 종이 울리는 것을 보면, 첫 날의 죽을 것 같던 고통과 끝나지 않던 한 라운드의 기억이 참 거짓말 같기도 하다. 


두 번째로, 운동하는 중 어느 정도 평상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금만 운동해도 이미 바닥으로 추락한 체력을 붙잡고 헉헉거리며 좀비 상태로 운동을 지속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체력이 완전히 떨어져도 조금 쉬면 충분히 한 번의 루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생겼다. 항상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의 최소치가 올라갔다는 느낌인가? 덕분에 운동을 하면서 조금 더 자세와 디테일에 집중하고, 주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 것 같다.


세 번째로, 기술들을 배웠다.


뭐 기술이라고 해 봤자 기본은 첫 날 배운 잽과 둘째 날 배운 스트레이트, 그리고 스텝의 조합이지만. 잽과 스트레이트, 앞뒤로 뛰는 스텝을 조합한 콤비네이션들을 하나씩 배우고, 매일매일 연습하다 보니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혔다. 거울 앞에서 주먹질을 반복하는 내 모습이 매일 조금씩 그럴듯해지고, 이제 복싱이 끝났을 때 종아리만이 아니라 팔도 아프다는 데서 묘한 보람을 느낀다. 


그래 봤자 결국 아직 종아리에 배긴 알도 안 사라진 햇병아리일 뿐이기는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복싱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가, 체급이 비슷한 상대와 서로 기술을 받아주다 보면 거울 앞에서 혼자 연습할 때와는 엄청나게 다른 감각을 느끼고, 이런 게 복서가 느끼는 시야구나. 하고 혼자 감탄하기도 한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지, 스파링과 비슷한 매스 복싱을 하는 분들도 몇 쌍 있었는데 그 중 몇 분들의 움직임은 정말 만화같았다. 화려한 스텝과 움직임으로 상대의 펀치는 피하고 자기 펀치는 때려넣고. 구석에 몰아넣은 후 툭툭 압박하다가 반격하려고 하면 피하고 카운터. 정말 말도 안 나올 만큼 멋있었고, 언젠가 저런 걸 하고 싶다는 목표 의식도 한 구석에 생겼다.


결과적으로, 일주일째의 감상은 만족스럽다. 계속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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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일지. 1일째

취미/복싱 | 2015. 3. 31. 23:51
Posted by 메가퍼세크

갑자기,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부터 허구한 날 책상에만 앉아 있었던 부작용이 이제야 발병한 건지,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쏟아낼 배출구가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무의식 중에 운동 하나쯤은 해야겠다는 근거없는 목적의식이 생겼던 것이다.


운동 중에서도 특히 해보고 싶었던 건 격투기. 남자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쓰잘데기없는 로망도 있고, 이리저리 치고박고 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 넘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근처 체육관들 몇 개를 싸돌아다니다가 가장 활발하고 그나마 체력소모가 적을 것 같은 복싱 체육관을 선택해 등록을 마친 게 바로 어제. 오늘부터 첫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굴러다니던 츄리닝과 싸구려 운동화를 들고 가장 붐비는 시간에 체육관에 들어가,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처음 하게 된 것은 역시 복싱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줄넘기.


3분짜리 한 라운드와 30초의 휴식시간을 표시해 주는 공에 맞춰, 줄넘기 5라운드로 첫날 운동을 시작했다.


'3분간 줄넘기' 라는 단어를 얕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초죽음이 되어 헉헉거리며 뻗어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두 라운드 반쯤. 생각해보면 말이 3분이지, 줄넘기를 1초에 두 번만 한다고 쳐도 쉬지 않고 한다면 무려 360개를 해야 된다는 소리가 된다. 5라운드를 쉬지 않고 한다면 무려 1800개. 한번에 100개씩 해도 18번을 돌아야 하는 거다.


근 3년 이상 운동이라고는 전혀 손도 대지 않았던 저질 체력의 몸에 그 정도 분량의 운동을 시켜버렸으니, 결과는 뭐 뻔할 뻔자였다. 한 라운드 3분은 근 30분에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휴식 30초는 진짜 한 10초도 안 되는 것 같은 모순된 시간감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줄넘기를 겨우겨우 마쳤다. 줄넘기만으로 다리에 알이 배기고, 좀비처럼 줄을 돌리다가 '힘들어서 줄에 걸리는' 게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는 신비한 경험도 했다.


그 후 배우게 된 첫 날의 진도는 가장 기초적인 복싱의 스탠스와 전진, 후진, 그리고 잽. 스탠스는 만화나 동영상 같은 데서 본 것과는 꽤 달라서, 이마 높이까지 손을 높게 올리고 가로로도 상당히 좁았다. 발의 자세는 뭐 생각하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는데, 상체는 정면을 보면서 발은 대각선 자세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스텝을 뛰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론 그 '어려웠다' 는 말의 의미에서 가장 컸던 건 역시 체력적인 부분이었다. 주먹을 이마 높이까지 올리고 지속적으로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 뛰는 자세는 그 자체만으로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쓰다 보니 얼마 안 되는 체력은 물 흐르듯 빠져나갔고, 한 라운드를 다 채우기는 커녕 한 30초에 한번씩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하기가 다반사더라.


마지막으로 배운 잽과 스텝의 연습이 끝날 때쯤에는, 마치 배터리가 엄청 노화된 스마트폰 같다고 할까. 잠시 엎드려 숨을 몰아쉬며 체력을 눈꼽만큼 채워놓은 후 잽 몇 번으로 순식간에 방전시키고, 다시 숨을 몰아쉬는 바보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뭐, 군대도 힘든 보직이 시간은 잘 간다고 했던가. 한 라운드 한 라운드는 엄청나게 안 가는 거 같은데, 막상 '죽겠다' 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으니 한 번씩 시계를 보면 분침이 엄청나게 전진해 있는 게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줄넘기 3라운드로 마무리 운동을 하고 나자 어느 새 시간은 운동하러 온 지 1시간 뒤. 정말 폭풍같은 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비도 오고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몸에서 비오듯 흐르는 땀과 화력발전소 수준으로 폭발하는 열 때문에 굳이 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고, 입고 왔던 옷을 가방에 넣은 후 체육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츄리닝 차림으로 걸어서 왔다.


미리 저녁을 늦게, 많이 먹었음에도 엄청나게 폭발하는 허기와 갈증 때문에 요새 거의 안 먹던 야식도 먹고 스포츠드링크도 사서 먹어보고, 여러 모로 평소와는 현저히 다른 경험을 해 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물론 그 경험에는 다리에 생긴 알과 전신에 몰려오는 피로도 포함해야겠지만,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자 몸의 고통은 (잠시)깨끗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열심히 뺑이쳤던 기억이 미화된다고 해야 하나. 재밌었던 기억으로 바뀌더라. 뭔가 신기했다.


내일은 뭘 하게 될 지, 얼마나 빡시고 힘들 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와 이렇게 개운한 기분으로 블로그질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꼴랑 하루 해 놓고 너무 설레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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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리뷰(스포)

취미/영화 | 2015. 3. 10. 12:58
Posted by 메가퍼세크


킹스맨은 최고였다.


정장간지와 액션, 정신나간 스토리 전개가 합쳐져 형용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양복입고 총쏘는 액션과  B급스러운 절단 연출 등은 이퀄리브리엄이 생각나는데, 거기에서 정장간지와 약간의 첨단장비를 더한 느낌?


스토리 자체도 뻔하디 뻔한 액션물의 과대망상증 최종보스, 무력파 중간보스, 찐따였다가 어떤 계기로 강해져서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 강력하고 현명한 멘토라는 아주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프레임을 따왔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같은 요리도 다른 사람이 만들면 맛이 달라지듯이, 그 프레임에 씌워진 살들은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영국식 정통 정장을 입고 첨단 장비를 곳곳에 숨긴 채 절제된 액션으로 적을 해치우는 등장인물들.

심지어 그들이 원탁의 기사들의 이름을 따온, 오래전부터 내려온 소수정예 첩보원이라니.


'신사', '기사', '스파이', '정장', '권총', '격투'


대부분의 사람들이 멋지다고 느끼는 '멋의 물감' 들을 잘 선별하고, 그들을 전형적인 스토리의 프레임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시켜 하나의 완성된 멋의 그림을 그렸다는 느낌이다.


물론 완성도나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에서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왜 의족을 달고 있는지, 어떻게 격투를 그리도 잘 하는지 끝까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중간보스라던가. 주인공과의 경합 끝에 랜슬롯 자리를 차지하고도 인공위성 격추하고 전화 한 통 거는 단조로운 역할만 맡은 안습한 여자 기사. 그 어떤 의심도 없이 공짜 유심을 받아 자기 스마트폰에 꽂는 전 세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런 자잘한 단점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이 영화가 뿜어낸 멋과 임팩트가 충분했기 때문에.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액션과 멋이었고, 스토리와 설정, 완성도와 같은 요소들은 모두 그것을 위한 부가적인 도구로만 작용했다.(그리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폭죽 장면과 난데없는 스칸디나비아 공주의 섹드립. 액션과 멋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했던 약간의 시리어스함을 중화시키고, 아직도 이 영화의 성격에 대해 긴가민가했던 관객들에게 확실한 쐐기를 박는 좋은 도구였다. 맛을 살리려다 보니 너무 느끼해진 고기 요리에 뿌리는 몇 방울의 식초라고 할까?


이런 류의 영화를 원체 좋아하기도 했지만, 멋을 내는 데 쓴 재료들 자체도 개인적인 취향에 딱 들어맞아서 전체적인 감상은 퍼펙트. 속편이 나온다고 해도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면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물론 나만 느끼는 감상은 아니겠지만, 머릿속에 콜린 퍼스의 간지나는 정장 차림은 당분간 클래식 정장에 대한 지름신을 일으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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