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1.27 | 글쓰기의 어려움
  2. 2014.04.26 | 나의 가장 큰 고민. 1

글쓰기의 어려움

잡설 | 2015. 1. 27. 00:15
Posted by 메가퍼세크

요새 블로그를 들어와 이것저것을 확인하다 보면, 항상 신경쓰이는 숫자가 있다.


블로그 우측 상단쯤에 표시되는 총 글의 개수가, 로그인하기 전에는 20개였다가 어드민으로 로그인하는 순간  29개로 급격히 늘어나는 것.


늘어난 9개의 글은 모두 비공개로, 주로 한창 쓰던 중 더 이상 이어갈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다 썼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너무 개판이어서 블로그에 걸어놓기가 민망할 정도인 것들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공개로 놓은 글들에 문제가 없냐고 한다면 그건 또 전혀 아니지만, 29개나 되는 글 중에서 거진 3분의 1이나 비공개라는 건 뭔가 내 글쓰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이 블로그를 만들기 전, 페이스북이나 다른 온라인 사이트에 가끔 글을 쓸 때부터 글쓰기라는 건 항상 오랜 시간과 생각과 고통, 그리고 노가다를 동반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글로 써보고 싶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재가 나타나야 하고, 그 소재로 인한 모티베이션이 키보드 앞에 앉는 시점까지 유지되어야 하며,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그 소재에 대한 생각과 재해석을 전개하고, 부족한 필력으로 그 상세한 내용을 남김없이 풀어내면서 제대로 된 글로서의 짜임새와 완결성, 결론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


매 과정 하나 하나가 성립되기 엄청나게 어려운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특히 글의 표현과 짜임새에 있어서는 점점 높아져만 가는 스스로의 기준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지는 문장력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무더기로 발견되는 어색한 문장과 스펀지마냥 구멍이 숭숭 뚫린 논리 전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의 반의 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미숙한 문장을 보면 그냥 컨트롤 A-딜리트를 눌러버리기 일쑤였다.


그나마 페이스북을 할 때는 아무래도 SNS라는 특성상 여러 사람들이 자유롭게 떠드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 상대적으로 쓰기 어려운 주제라도 상대적으로 덜 깊이 생각하고 부담없이 올릴 수 있었는데

(그 때도 4~5시간 잡아먹는 건 예사였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글들은 하루 안에 끝났다)


글이 너무 길어지고 SNS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주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티스토리로 이사한 이후에는 오히려 '글을 쓰기 위해 만든 공간' 이라는 터무니 없는 부담감 때문에 글을 쓰는 모든 과정에서 적용되는 기준이 현저히 올라가 버렸다.


그 결과로 몇 시간씩 쓰다가도 스스로에게 절망감을 느끼고 팽개쳐 버리는 글들이 늘어났고, 그렇게 비공개로 돌려진 글들은 그 절망을 떨쳐낼 만큼의 새로운 모티베이션이 생길 때까지 그대로 수감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 좀 어렵다 싶은 주제로 시작한 글은 비공개 상태에서만 몇 달이 넘는 기간을 보내면서 대여섯 번이 넘는 갈아엎기와 가필을 거치고서도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의 글 수는 올라갈 기미가 없고, 일부러 열어놓은 블로그를 몇 달 동안 방치해두기도 뭐해서 차선책으로 한두 개씩 쓰기 시작한 과자나 음악 리뷰들은 어느새 블로그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린 지 오래다.


정말 쓰고 싶었던 내용들은 검증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비공개로 돌려지고, 취미 겸 가벼운 흥미로 시작했던 리뷰들은 별다른 제지 없이 블로그를 점령하는 이 상황.


대체 몇 년이나 글을 더 쓰면,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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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큰 고민.

자아성찰/가치관 | 2014. 4. 26. 01:21
Posted by 메가퍼세크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춘기가 되면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나는 누구인가' 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적어도 교과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저학년 정도부터 나도 그런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왜 살고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인생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뭐 이런 내용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이런 질문들이 내 인생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지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고, 며칠 밤낮을 고민해도 답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난해한 문제였지만 가끔씩은 그럴 듯해 보이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하는 아리송함도 있었기에 매일 매 시간마다 쉬지 않고 그 문제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저녁에 자려고 누웠을 때조차 매일 생각만 하다가 새벽까지 잠을 못 잘 정도로 열심히. 혹시나 답이 쓰여 있지 않을까 싶어 책도 참 열심히 봤다.(주로 철학책)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나는 왜 사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 보았을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결론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로서는 내가 아는 어떤 지식과 논리를 동원해도 내가 세상에 태어날 당위성도, 필연성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우선 영향력의 문제. 세상과 우주는 엄청나게 넓고, 거기에 존재하는 사람과 생명체의 수도 엄청나게 많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넓어야 우리 동네 정도에 국한될 뿐. 조금만 범위를 넓혀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드물고, 내가 여기 존재함으로서 영향을 받는 사람도 사실상 없다. 나의 존재는 말하자면 티끌과 같아,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미물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는 내가 내일 길을 가다 차에 치여 죽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몇 달 동안 내 장례식이나 사망 신고, 그 외의 여러 감정적인 일들로 주변 사람들이 약간의 소란을 겪는 것 외에는, 큰 일이 없을 것이다. 일 년만 지나도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흔적과 증거는 거의 사라지고, 60억이 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애초에 모르고 있었고, 이후로도 모르고 살 것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오른다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물론 아니다. 내가 만약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겨 전 세계에 영향력을 떨치고 수백년 동안 길이길이 기억되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나는 죽고, 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그 모든 현상은 광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구석에서 일어나는 국지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의 나에게는, 세상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하나하나는 모두가 무언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언젠가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라는 허무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런 믿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그 작은 균열은,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빅 뱅이니 진화론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는 책들을 읽어대기 시작하면서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빅 뱅으로부터 생성된 우주는 물리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화하여 태양계와 지구를 생성했고, 지구의 환경은 생명체의 발생에 좋은 환경이었기에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뭉쳐 생명체를 만들었으며, 그 생명체들은 자기들간의 자연 선택을 거쳐 인간이 되었다는 과학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각각의 고유한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단서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았고,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개체들과 나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생각의 연쇄는 당시의 나를 끝없이 절망하게 만들었고, 스스로 판 허무주의의 늪에서 몇 년의 세월을 허우적대게 만들었다. 중간중간에 어떤 계기들로 인해 자신의 의미를 찾고,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처럼 보이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뉴턴이 고전역학을 처음으로 정립하여 출간한 '프린키피아' 라는 책의 서문을 보면서, 300년도 더 전의 천재가 생각하던 내용을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이해하고 있고,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 밀려오는 감동 속에서 나도 이처럼 놀라운 업적을 남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지구라는 행성, 인간이라는 종, 지성과 문명이라는 것들이 매우 일치하기 어려운 여러 많은 요소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로또와 같이 낮은 확률을 뚫고 생겨난 산물이며 외계의 생명체를 찾으려고 했던 현재까지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주의 유일한 지성체로 보이는 인간이라는 종, 그리고 그 일원인 내가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공간과 시간의 무한성, 내 자아의 당위성 부재와 같은 몇 가지 강력한 문제들에 의해 스스로 논파되어 다시 괴로워했다.


종교에 기대면 해결될 문제일까 싶어 잠시 교회에도 나가 봤지만 그곳에는 도저히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기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나올 수밖에 없었고, 철학 책들도 정말 많이 뒤져 봤지만 나와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한 책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나긴 탐색 끝에 자포자기하는 기분으로 스스로 내린 결론은, 세상에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에 의미란 없고, 단지 우연히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난 내가, 죽을 때까지 즐길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며, 주어진 시간을 살고 언젠가 죽어 존재가 천천히 소멸되는 그런 시간.


그렇기에 헛된 질문을 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그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최대한 많은 만족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피시방에 가서 열 시간을 선불로 낸 사람처럼.


물론 한 눈에 봐도 알다시피 이는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고, 그렇기에 삶의 지침이 될 명확한 목표나 기준이 없는 나는 지금도 무언가 결정할 일이 생길 때마다 수많은 고민으로 인해 머리가 아픈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만의 기준을 임의로 정하는 것은 종교를 믿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용납이 되지 않기에, 아마도 영원히 이렇게 살다 갈 운명인가 보다.


어쩌면 나만 하는 고민은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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