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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레빗 3집, 투어리스트 2집 지름.

잡설 | 2014. 6. 26. 01:24
Posted by 메가퍼세크

오늘 종로 3가에서 일이 있어서, 끝나고 잠깐 짬을 내어 지하철 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반디 앤 루니스에 음반을 사러 갔다. 목표는 얼마 전 발매된 제이레빗 3집 앨범.


지금까지 음반이란 걸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어서, 그리 넓지도 않은 음반 매장을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며 제이레빗 앨범을 찾기를 몇 분. 어쩐지 상당히 이질적인 앨범을 하나 발견했다.



가로와 세로의 폭부터 보통의 앨범과는 궤를 달리하고, 커버 재질도 앨범이라기보단 하드커버 책에 가까웠으며, 앨범 위에 묶인 베이지색 고무끈이 인상적이었던.


다른 앨범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비주얼을 자랑했던 이 앨범은, 딱 하나 남아있었다.

평소 이런 물건의 비주얼에 그렇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데, 하필이면 컨셉이 '책'


그것도 '소책자'


그것도 '하드커버 소책자'


내 취향의 정중앙에 돌직구를 꽂아넣는 심각하게 멋진 컨셉. 게다가 그 컨셉과 무한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파란색과 갈색 투 톤의 예술적인 자켓. 이 반칙급의 디자인을 갖춘 앨범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자동적으로 내 눈을 임의 해제 불가능한 오토포커스 모드로 전환시켰다.


아니 대체 어떤 그룹이 이런 기특한 앨범을 냈단 말인가 하는 감개무량함과 지름신께서 내 통장을 거덜내기 위해 이번에는 이런 형태로 내려오신 것인가 하는 착잡함이 어우러지며 앨범을 집었고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룹의 앨범을 사야 하는가 사지 말아야 하는 논제에 대해 무한한 내적 갈등을 일으키며 앨범의 뒷면을 보았다.




뒷면을 펼친 가장 주된 이유는 앨범의 트랙 제목들. "벚꽃 엔딩" 이라는 곡명을 보고 데스메탈을 떠올리지 않고, "착한 늑대와 나쁜 돼지새끼 3마리" 라는 곡명을 보고 잔잔한 발라드를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무릇 노래의 제목이라는 것은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가사를 함축하는 것. 전혀 모르는 그룹 앨범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는, 트랙 제목들을 보고 유추하는 게 그나마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뭐 그런 관계로, 트랙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1번 곡의 제목은 Arrival. 아래로 쭉 훑어보면 14번 트랙의 Departure과 대칭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발과 도착. 왜 순서가 바뀌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떤 줄거리를 이루는 앨범인 걸까? 15번 트랙의 in-flight를 보면, 비행기를 타고 출발과 도착을 한 모양이다. 어쩌면 도착해서 뭔가를 하고 다시 출발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나머지 곡들을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주제는 장소. 6,7,12,13번 트랙의 "요코하마에서", "월화수목원", "겨울 산장", "바다" 를 보면 수목원을 빼고는 여행지라는 분위기가 짙게 풍긴다. 자켓에 쓰여 있던 그룹 이름인 "투어리스트" 와 연계해 생각하면, 역시 여행을 컨셉으로 한 앨범이겠지. 바다와 겨울 산장이라는 이름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반 년 이상 장기간의 여행인 것 같다.


5번과 9번 트랙의 "설렘주의보", "나란한 걸음" 은 그냥 봐도 달달한 분위기의 연애이야기 곡.


여행이라는 컨셉과 다채로운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제목들은 곡의 다양성을, 제목부터 달달해 보이는 제목들은 그 다양함의 중심이 잔잔한 쪽으로 쏠려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기에, 대략 내 취향에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질렀다.


뭐, 사실은 앨범의 비주얼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에 곡이 완전히 똥만 들어있어도 사겠다는 생각이 잠시간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앨범에 신경을 쓰는 가수들이라면 그 섬세함으로 곡도 잘 만들었을 것이라는 믿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지름을 마친 후 원래 사려고 했던 제이레빗 3집도 같이 사들고, 집으로 와서 개봉.




<커버>

<뒷면>

<앨범 내부>

제이레빗 앨범의 느낌은 미니멀리즘. 커버와 뒷면, 앨범 내부 모두 단순하고 깔끔했다. 저 조각보같은 무늬가 뭔진 모르겠는데, CD에 새겨져 있는 모습은 멋있는 것 같다. 종이 틈에 끼어있는 가사집도, 깔끔한 디자인과 그림들로 딱 가사와 에필로그만 써서 6장 정도의 얇은 두께였다.



<가사집의 한 페이지>


가사집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하지만 분위기는 비슷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굳이 이 사진을 올린 건 제일 맘에 들어서... 가사들의 분위기는 앨범의 제목과 같이, 인생에 지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주가 되고 있었다. 확실히 제이레빗의 밝은 목소리에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투어리스트 앨범 개봉.



<앨범의 내용물들>


예상대로, 애네 앨범은 음반보다 부록들의 두께가 더 두꺼웠다...


왼쪽의 책처럼 생긴 건 가사집. 여행 컨셉이 아니라 진짜로 여행을 다니면서 곡을 만들었는지 여러 장소들의 다채로운 사진과 매번 다른 포맷의 가사들, 여행에서의 팁 페이지까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저 거대한 책자에 에필로그가 한 페이지, 스폐셜 땡스가 두 페이지. 마지막 장에는 여행지들의 경로까지 적혀 있어 볼륨이 장난이 아니었다. 종이 재질도 튼튼한 걸 썼고.


위쪽에 보이는 건 미니 사이즈 세계지도;; 와 스티커(여행가방에 붙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에 보이는 분홍색 태그(화물에 부착하는 표지라고 한다. 처음 알았다)까지 여행이라는 테마에 걸맞는 물건들이 참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고무 끈으로 마감해야 될 만 하지...


인터넷을 조금 뒤져보니 이 앨범은 제작비가 너무 들어서 많은 수량을 못 찍고 한정판매하기로 했다고... 한 개만 남아 있었던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앨범의 내용물, 곡들은 어떤가 하면, 앨범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앨범에서 풍기는 세심한 정성들이 녹아 있는 부드러운 곡들이 주가 되고, 예상대로 조금 활발한 분위기의 곡들도 있지만 너무 시끄럽지 않고 듣기 좋은 정도인 것 같다. 특이한 맛도 있고. 보컬도 남녀 보컬 두 명인데 둘 다 잔잔하고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타입이다.


항상 내 음악 취향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들어 보지도 않고 (음악 외적 이유로) 홧김에 질러버린 음반이 이 정도로 마음에 들다니. 참 신기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뭔가를 지를 때마다 항상 이 정도 만족도라면 정말 좋을 텐데.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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