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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08 | 복싱 일지. 일주일째
  2. 2015.03.31 | 복싱 일지. 1일째

복싱 일지. 일주일째

취미/복싱 | 2015. 4. 8. 01:16
Posted by 메가퍼세크

첫 날 일지를 쓴 게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평소에도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던 건 아니었지만, 요새 특히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는 복싱을 시작한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원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고 있을 시간에, 스텝을 밟고 주먹을 휘두르며 무언가에 열중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하루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줄여 주었고, 매일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다 보니 약간 있었던 불면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도 하루를 짧게 느끼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말하자면 하루 중에서 다소 여유롭고 지루했던 시간들을 다듬어 잘라낸 느낌?


뭔가 서론이 길었지만, 요컨대 복싱이 들어간 일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다.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건 참 위대해서, 절대로 적응할 수 없었던 첫 날의 느낌이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겨우 일 주일 만에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줄넘기를 할 때, 한 라운드의 처음과 끝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한 라운드 안에서 얼마 되지 않는 체력을 순식간에 방전시키고 한 10초쯤 헐떡거리다가 다시 줄넘기를 시작하는 과정을, 셀 수도 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라운드 공이 울렸는데 이제는 대략 두 번이나 세 번쯤의 전력질주로 한 라운드를 끝낼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진 것이다.


백 수십개에서 이백 개 정도의 줄넘기를 한 번 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백 수십개 정도를 하면 라운드의 끝나는 종이 울리는 것을 보면, 첫 날의 죽을 것 같던 고통과 끝나지 않던 한 라운드의 기억이 참 거짓말 같기도 하다. 


두 번째로, 운동하는 중 어느 정도 평상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금만 운동해도 이미 바닥으로 추락한 체력을 붙잡고 헉헉거리며 좀비 상태로 운동을 지속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체력이 완전히 떨어져도 조금 쉬면 충분히 한 번의 루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생겼다. 항상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의 최소치가 올라갔다는 느낌인가? 덕분에 운동을 하면서 조금 더 자세와 디테일에 집중하고, 주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 것 같다.


세 번째로, 기술들을 배웠다.


뭐 기술이라고 해 봤자 기본은 첫 날 배운 잽과 둘째 날 배운 스트레이트, 그리고 스텝의 조합이지만. 잽과 스트레이트, 앞뒤로 뛰는 스텝을 조합한 콤비네이션들을 하나씩 배우고, 매일매일 연습하다 보니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혔다. 거울 앞에서 주먹질을 반복하는 내 모습이 매일 조금씩 그럴듯해지고, 이제 복싱이 끝났을 때 종아리만이 아니라 팔도 아프다는 데서 묘한 보람을 느낀다. 


그래 봤자 결국 아직 종아리에 배긴 알도 안 사라진 햇병아리일 뿐이기는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복싱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가, 체급이 비슷한 상대와 서로 기술을 받아주다 보면 거울 앞에서 혼자 연습할 때와는 엄청나게 다른 감각을 느끼고, 이런 게 복서가 느끼는 시야구나. 하고 혼자 감탄하기도 한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지, 스파링과 비슷한 매스 복싱을 하는 분들도 몇 쌍 있었는데 그 중 몇 분들의 움직임은 정말 만화같았다. 화려한 스텝과 움직임으로 상대의 펀치는 피하고 자기 펀치는 때려넣고. 구석에 몰아넣은 후 툭툭 압박하다가 반격하려고 하면 피하고 카운터. 정말 말도 안 나올 만큼 멋있었고, 언젠가 저런 걸 하고 싶다는 목표 의식도 한 구석에 생겼다.


결과적으로, 일주일째의 감상은 만족스럽다. 계속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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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복싱 | 2015. 3. 31. 23:51
Posted by 메가퍼세크

갑자기,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부터 허구한 날 책상에만 앉아 있었던 부작용이 이제야 발병한 건지,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쏟아낼 배출구가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무의식 중에 운동 하나쯤은 해야겠다는 근거없는 목적의식이 생겼던 것이다.


운동 중에서도 특히 해보고 싶었던 건 격투기. 남자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쓰잘데기없는 로망도 있고, 이리저리 치고박고 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 넘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근처 체육관들 몇 개를 싸돌아다니다가 가장 활발하고 그나마 체력소모가 적을 것 같은 복싱 체육관을 선택해 등록을 마친 게 바로 어제. 오늘부터 첫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굴러다니던 츄리닝과 싸구려 운동화를 들고 가장 붐비는 시간에 체육관에 들어가,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처음 하게 된 것은 역시 복싱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줄넘기.


3분짜리 한 라운드와 30초의 휴식시간을 표시해 주는 공에 맞춰, 줄넘기 5라운드로 첫날 운동을 시작했다.


'3분간 줄넘기' 라는 단어를 얕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초죽음이 되어 헉헉거리며 뻗어버리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두 라운드 반쯤. 생각해보면 말이 3분이지, 줄넘기를 1초에 두 번만 한다고 쳐도 쉬지 않고 한다면 무려 360개를 해야 된다는 소리가 된다. 5라운드를 쉬지 않고 한다면 무려 1800개. 한번에 100개씩 해도 18번을 돌아야 하는 거다.


근 3년 이상 운동이라고는 전혀 손도 대지 않았던 저질 체력의 몸에 그 정도 분량의 운동을 시켜버렸으니, 결과는 뭐 뻔할 뻔자였다. 한 라운드 3분은 근 30분에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휴식 30초는 진짜 한 10초도 안 되는 것 같은 모순된 시간감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줄넘기를 겨우겨우 마쳤다. 줄넘기만으로 다리에 알이 배기고, 좀비처럼 줄을 돌리다가 '힘들어서 줄에 걸리는' 게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는 신비한 경험도 했다.


그 후 배우게 된 첫 날의 진도는 가장 기초적인 복싱의 스탠스와 전진, 후진, 그리고 잽. 스탠스는 만화나 동영상 같은 데서 본 것과는 꽤 달라서, 이마 높이까지 손을 높게 올리고 가로로도 상당히 좁았다. 발의 자세는 뭐 생각하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는데, 상체는 정면을 보면서 발은 대각선 자세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스텝을 뛰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론 그 '어려웠다' 는 말의 의미에서 가장 컸던 건 역시 체력적인 부분이었다. 주먹을 이마 높이까지 올리고 지속적으로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 뛰는 자세는 그 자체만으로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쓰다 보니 얼마 안 되는 체력은 물 흐르듯 빠져나갔고, 한 라운드를 다 채우기는 커녕 한 30초에 한번씩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하기가 다반사더라.


마지막으로 배운 잽과 스텝의 연습이 끝날 때쯤에는, 마치 배터리가 엄청 노화된 스마트폰 같다고 할까. 잠시 엎드려 숨을 몰아쉬며 체력을 눈꼽만큼 채워놓은 후 잽 몇 번으로 순식간에 방전시키고, 다시 숨을 몰아쉬는 바보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뭐, 군대도 힘든 보직이 시간은 잘 간다고 했던가. 한 라운드 한 라운드는 엄청나게 안 가는 거 같은데, 막상 '죽겠다' 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으니 한 번씩 시계를 보면 분침이 엄청나게 전진해 있는 게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줄넘기 3라운드로 마무리 운동을 하고 나자 어느 새 시간은 운동하러 온 지 1시간 뒤. 정말 폭풍같은 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비도 오고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몸에서 비오듯 흐르는 땀과 화력발전소 수준으로 폭발하는 열 때문에 굳이 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고, 입고 왔던 옷을 가방에 넣은 후 체육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집까지 츄리닝 차림으로 걸어서 왔다.


미리 저녁을 늦게, 많이 먹었음에도 엄청나게 폭발하는 허기와 갈증 때문에 요새 거의 안 먹던 야식도 먹고 스포츠드링크도 사서 먹어보고, 여러 모로 평소와는 현저히 다른 경험을 해 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물론 그 경험에는 다리에 생긴 알과 전신에 몰려오는 피로도 포함해야겠지만,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자 몸의 고통은 (잠시)깨끗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열심히 뺑이쳤던 기억이 미화된다고 해야 하나. 재밌었던 기억으로 바뀌더라. 뭔가 신기했다.


내일은 뭘 하게 될 지, 얼마나 빡시고 힘들 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와 이렇게 개운한 기분으로 블로그질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꼴랑 하루 해 놓고 너무 설레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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