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일지. 일주일째
첫 날 일지를 쓴 게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평소에도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던 건 아니었지만, 요새 특히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는 복싱을 시작한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원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고 있을 시간에, 스텝을 밟고 주먹을 휘두르며 무언가에 열중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하루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줄여 주었고, 매일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다 보니 약간 있었던 불면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도 하루를 짧게 느끼게 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말하자면 하루 중에서 다소 여유롭고 지루했던 시간들을 다듬어 잘라낸 느낌?
뭔가 서론이 길었지만, 요컨대 복싱이 들어간 일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는 소리다.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건 참 위대해서, 절대로 적응할 수 없었던 첫 날의 느낌이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겨우 일 주일 만에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줄넘기를 할 때, 한 라운드의 처음과 끝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한 라운드 안에서 얼마 되지 않는 체력을 순식간에 방전시키고 한 10초쯤 헐떡거리다가 다시 줄넘기를 시작하는 과정을, 셀 수도 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라운드 공이 울렸는데 이제는 대략 두 번이나 세 번쯤의 전력질주로 한 라운드를 끝낼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진 것이다.
백 수십개에서 이백 개 정도의 줄넘기를 한 번 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백 수십개 정도를 하면 라운드의 끝나는 종이 울리는 것을 보면, 첫 날의 죽을 것 같던 고통과 끝나지 않던 한 라운드의 기억이 참 거짓말 같기도 하다.
두 번째로, 운동하는 중 어느 정도 평상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금만 운동해도 이미 바닥으로 추락한 체력을 붙잡고 헉헉거리며 좀비 상태로 운동을 지속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체력이 완전히 떨어져도 조금 쉬면 충분히 한 번의 루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생겼다. 항상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의 최소치가 올라갔다는 느낌인가? 덕분에 운동을 하면서 조금 더 자세와 디테일에 집중하고, 주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 것 같다.
세 번째로, 기술들을 배웠다.
뭐 기술이라고 해 봤자 기본은 첫 날 배운 잽과 둘째 날 배운 스트레이트, 그리고 스텝의 조합이지만. 잽과 스트레이트, 앞뒤로 뛰는 스텝을 조합한 콤비네이션들을 하나씩 배우고, 매일매일 연습하다 보니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혔다. 거울 앞에서 주먹질을 반복하는 내 모습이 매일 조금씩 그럴듯해지고, 이제 복싱이 끝났을 때 종아리만이 아니라 팔도 아프다는 데서 묘한 보람을 느낀다.
그래 봤자 결국 아직 종아리에 배긴 알도 안 사라진 햇병아리일 뿐이기는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복싱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가, 체급이 비슷한 상대와 서로 기술을 받아주다 보면 거울 앞에서 혼자 연습할 때와는 엄청나게 다른 감각을 느끼고, 이런 게 복서가 느끼는 시야구나. 하고 혼자 감탄하기도 한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지, 스파링과 비슷한 매스 복싱을 하는 분들도 몇 쌍 있었는데 그 중 몇 분들의 움직임은 정말 만화같았다. 화려한 스텝과 움직임으로 상대의 펀치는 피하고 자기 펀치는 때려넣고. 구석에 몰아넣은 후 툭툭 압박하다가 반격하려고 하면 피하고 카운터. 정말 말도 안 나올 만큼 멋있었고, 언젠가 저런 걸 하고 싶다는 목표 의식도 한 구석에 생겼다.
결과적으로, 일주일째의 감상은 만족스럽다. 계속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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