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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13 | hatao&nami

hatao&nami

취미/음악 | 2019. 8. 13. 20:19
Posted by 메가퍼세크

나는 새로운 음악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한때는 내 취향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한번 좋다고 느낀 음악은 기본적으로 몇 주일씩 듣고 어느 정도 질리면 예전에 꽂혔던 곡을 듣는 성향 탓에 어느새 꽂힌 음악들의 레퍼토리만으로 이 사이클을 한 바퀴 돌릴 수 있게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슬슬 새로운 곡을 모으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고, 취향도 꽤 확실해져서 듣던 곡만 돌려 들으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아직도 7080 음악을 찾는 것처럼, 어쩌면 나도 평생 동안 지금 좋아하는 음악들만을 반복해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 매일 반복하면서 같은 노래들을 수십 번씩 듣다 보면 가끔은 각 곡들에 처음 빠졌던 순간부터 마음에 드는 소절, 가사와 곡에 얽힌 경험들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그런 기억들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도 그런 기억의 모음집들을 더듬다가, 문득 떠올랐던 특히 강렬했던 기억을 하나 풀어놓으려 한다.

 

 

 

hatao&nami는 일본의 2인조.. 밴드?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하고, 합주단?이나 듀오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nami는 아이리쉬 하프와 피아노를, hatao는 다양한 종류의 관악기를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장르는 기본적으로는 아일랜드 음악이지만 북유럽 계열의 민속 음악도 연주하며, 일본 내에서의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것 같다. 공식 홈페이지도 일본어로만 되어 있고, 유튜브에서도 hatao의 개인 계정에서 가끔씩 공연 영상을 올리는 정도다. 

 

내가 이 밴드를 알게 된 건 평소 좋아하던 아일랜드 음악 밴드 '바드'와의 합동 공연 덕분이었는데, 예매할 때는 누군지도 몰랐지만 막상 찾아가 연주를 듣고서는 순식간에 빠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경쾌함과 서정성을 모두 갖춘 아일랜드 음악의 매력을 잘 살려 주는 아이리쉬 하프와 피아노의 선율도 좋았고, 다양한 종류의 관악기들에서 나오는 독특한 톤과 음색들, 보컬은 없지만 마치 이야기하는 듯한 멜로디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말 예술적이었다. 

 

공연 중간중간 들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관악기를 맡고 있는 hatao 씨는 그야말로 일본의 장인 정신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사람이었다. 젊을 때부터 관악기와 포크 음악에 빠져 십수 년 이상의 세월 동안 다양한 관악기들을 섭렵하고, 아일랜드와 북유럽을 오가며 각지의 악기와 연주 기법에 대해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공연 중에 사용했던 관악기만 대여섯 개가 넘었는데, 그중 하나는 북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구한 소나무 피리라면서 세계에 몇 없는 귀중한 악기라고 했다. 관악기에 대한 열정만큼 그의 연주는 시종일관 완벽하면서도 정열적이었고, 스피커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두터우면서도 섬세한 선율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진지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고, 멘트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숨길 수 없는 유쾌함과 해맑은 미소를 보면서 진심으로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분의 멋진 실력이 잘 드러났던 곡은 수없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Night flight라는 곡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도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의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조용함과 경쾌함이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굴곡이 멋지게 표현된 느낌.

 

(공식 채널에 좋은 음질의 영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CD에서 추출한 음원을 업로드했다. 영상 설명에 공식 채널과 홈페이지를 링크했으니 참조)

 

하프와 피아노를 맡은 nami 씨도 그 못지않게 해맑고 유쾌하면서도 차분한 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첫인사부터 시작해서 시종일관 쾌활한 분위기로 멘트를 진행하다가도, 연주에 몰입할 때면 표정이 확 바뀌면서 곡의 리듬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연주 레퍼토리 중간에 Time flow라는 곡이 있었는데, 시작하기 전에 이 곡을 작곡할 때의 심정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나가고 나서 오랫동안 슬픔에 빠져 있다가, 문득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는 잊히겠지 하는 달관한 마음이 들어 작곡한 곡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실제로 음악을 들을 때도 6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감정들이 흐르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반에는 흐느끼는 듯하다가 방황하고, 무언가를 읊조리고, 체념하는 듯한 선율들. 분명 가사가 없음에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다 알 것 같은, 음악이 왜 만국 공통의 언어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곡이다.

 

 

 

그 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곡은 수없이 많지만,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다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싶어 일단 이쯤에서 접는다. 위의 두 곡이 마음에 드는 분들은 유튜브에 hatao nami를 검색해 보시기를. 이 글에서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멋진 듀오와,. 그들의 좋은 곡 두 개를 소개한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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