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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 배송된 후드 집업의 사연

잡설 | 2015. 1. 9. 00:15
Posted by 메가퍼세크

12월 초, 평소처럼 인터넷을 돌다가 어딘가에서 제법 괜찮아 보이는 후드 집업 하나를 발견했다.






(출처: http://www.shermancarter.com/products/two-tone-zipper-cardigan-hooded-double-pockets-long-sleeve-cotton-men-sweatshirt)


어새신 크리드라는 게임 느낌의 자켓이라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괜찮은 후드 집업이 필요했기에 별 생각 없이 확 질러버렸다.


Free Shipping인 대신 배송이 오래 걸린다길래 그냥 잊어버리고 2~3주일 있으면 알아서 오겠거니 했는데, 어째 시킨 지 몇 주일이 지나도 배송확인 이메일 이후에 새로 오는 게 하나도 없어...


뭔가 불안해서 후드 집업을 구입한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품 번호를 쳐넣고 배송 추적을 했더니, 난생 처음 보는 결과가 나왔다.






중국어도 모르고 한자도 젬병이라 대부분의 정보는 쓰잘 데 없었지만, 대문짝만하게 쓰여진 North Korea 와 배송 이력에 쓰여진 조선, KP 까지는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용했던 해외 배송 택배들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KR이라는 코드가 적혀 있었는데, KP는 또 뭘까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 봤다.





...그렇다고 합니다.


내 소중한 택배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소리였다.


세상에 북한에도 택배 수취하는 곳이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에서 시작해서, 내 택배를 가로채 가 버리면 어떡하지? 자본주의 느낌이 충만해서 어차피 못 입고 다니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나름 따뜻해 보이니 원래 용도처럼 집 근처에서 입고 다니려나? 애초에 북한에 내 사이즈에 맞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까지 도달하고 나니, 슬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인터넷을 뒤져 보니 이런 배송 오류 자체는 가끔 일어나는 일인 듯 했다. 외국에서는 딱히 우리 나라에 관심이 없고, 북한이 여러 가지로 국제 사회에서 유명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 오배송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발송지가 우리 나라 코 앞인 중국인 데다 주소도 South Korea로 제대로 입력했는데도 이 따위 상황이란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이 이상한 상황을 하루빨리 해결하고 후드 집업을 받기 위해, 구매처에 문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기업인 거 같지만 어차피 중국어는 알지도 못하니 영어로, 영어도 프리토킹 따위는 꿈도 못 꾸는 저질 중의 저질이니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은 메일 문의로. 어학 실력 때문에 문의 방법이 정해진다는 것도 참 슬픈 일이다.


그 후부터는 안 되는 영어 실력을 쥐어짜낸 고객 센터와의 사투의 연속.





: 12/12일에 너네 사이트에서 후드 재킷을 주문했고, 내 구매 정보는 이렇다.

근데 17track에서 배송 체크해보니까 내 택배가 북한으로 가고 있네?

가능한 빨리 체크하고 조치좀.


센터:? 니 택배는 아직 배달중이고, 정해진 배송 기간이 아직 안 지났음. 그 택배가 다른 나라에 잠시 배송 중 상태로 머물다가, 너네 나라로 갈 수도 있음.


: 아니 시발. 내가 중국 우정 많이 써봤다고.

근데 난 지금까지 배송 과정 중에 "Destination Country" 가 노스 코리아인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배송 중에 잠깐 노스 코리아를 거쳐가는 거면 적어도 저건 싸우스 코리아로 돼 있어야 되는 거 아님?

(첨부 파일로 배송조회 결과를 첨부함)


센터:?? 니 택배는 아직 배달중이고, 2주 안에 배달될 것임. 2주 지나서도 안 도착하면 우리한테 연락해. 그럼 우리가 재배송하거나 환불해줌.


(며칠 후): 12/22일부터 내 택배가 계속 북한에 짱박혀있는 걸로 보이는데.

너네가 전에 지껄인 대로 2주 지났으니 내 택배를 빨리 재발송해줘.


그리고 내가 알아본 바로는 택배 회사가 노스 코리아랑 사우스 코리아를 잘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대충 그런 경우인 거 같으니까 전화 좀 해보는 게 좋을 거 같다.


센터: 그렇군! 우리가 실수로 사우스 코리아 대신 노스 코리아로 보냈구나. 추가 비용 없이 제대로 된 주소로 재배송 해 주겠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당신 주소는 이건데 확인하고 맞으면 답장좀.


: ㅇㅇ 맞음


센터: 당신한테 보낼 택배 이미 새로 싸놨고 배송 번호 받으려고 대기중임. 이거 배송 정보 뜨면 바로 다시 메일 보내겠다.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대충 이런 흐름으로, 배송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그저께 아침. 고객 센터는 그럭저럭 대답도 빠르고 나름대로 친절한 것 같은데, 내 괴멸적인 영어 실력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잡아먹은 것 같다. 혹시 나와 비슷한 문제로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있다면, 고객 센터에 문의할 때 "택배 회사가 북한과 남한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는 사실을 고객 센터에 납득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게 좋을 듯.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분단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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