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능력과 차별의 문제

자아성찰/가치관 | 2018. 6. 2. 08:37
Posted by 메가퍼세크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조던 피터슨이라는 교수가 페미니즘에 대해 인터뷰한 동영상을 봤다.

https://youtu.be/N7cf_DW5CQc

시종일관 정중하고 침착한 태도로 임하는 교수의 태도와 철저한 논리 속에서 근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주장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인터뷰 내내 교과서적인 무례함과 편협함으로 일관했던 여자 앵커의 태도였다. 교수의 주장이 담고 있는 객관적 태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한 주장을 끝임없이 감정적으로 곡해해서 받아들이며, 상대의 말을 수없이 끊어대며 자기 할 말만 한없이 반복하는, 그야말로 극단적 페미니스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모습. 


인간의 합리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크나큰 좌절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를 만한 광경이지만, 사실 그런 순간적인 감정이야말로 문제에 대한 심층적 접근을 막는 가장 큰 장벽 중의 하나다. 부질없는 화를 억제하고 영상을 다시 보면서, 그런 극단적인 태도가 왜 생겨났을지 고찰해 보았다.


인터뷰 내내 앵커의 말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전제는, '여자는 남자에 비해 크게 차별받고 있으며, 무슨 수를 써서든 이걸 없애야 한다' 라는 가정이다. 이 가정이 정말 맞는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을 차치하고 '차별에 대한 피해의식' 이라는 짧은 단어로 요약해보면, 문제의 본질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째서 여성들은 자신이 크게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물론 오직 성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차별도 존재하겠지만,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인터뷰에서 교수가 말한 것과 같은, '실재하지 않는 차별' 에 대한 혼동이다. 정말로 받고 있는 차별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지만, 차별이 아닌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엉뚱한 사람에 대한 폭력에 불과하니까. 어째서 많은 여성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차별에도 분노를 느낄까?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매우 어렵고, 사람마다 수많은 견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는 '능력의 차이에 대한 좌절감'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무언가를 더 잘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무력감,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성취를 금방 뛰어넘어버리는 그 누군가에 대한 좌절과 분노라는 감정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예시는 체력과 근력이다. 누구나 알듯이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는 체격부터가 크게 차이가 나고, 평균 근력을 따지면 60대가 넘은 할아버지도 20~30대 여자보다 월등히 강하며, 격투기의 영역에서는 아마추어 남자 선수가 프로 여자 선수를 이기는 경우도 흔할 정도다. 물론 여자도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강해질 수 있다지만, 160cm 정도의 보통 여자가 웬만큼 노력해 봐야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평범한 성인 남자를 이기려면 대체 얼마나 걸릴지. 결국 평범한 여자들은 매일 길에서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자신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고 생각해 보면 무서워서 밖을 걸어다닐 수나 있을까 싶고, 상당한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런 피해와 불안이 단지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 세상에는 보통 여자들과 체력이 비슷한 150cm의 왜소증 남자도 있고, 꽤 강한 남자들도 웬만해서는 이길 수 없는 190cm의 근육질 여성들도 있기 마련이다. 물론 비율적으로 상당한 차이는 나겠지만, 중요한 것은 똑같은 약함을 가졌더라도 150cm짜리 남자는 자신의 왜소함을 탓하지만, 160cm짜리 여자는 자신이 여자인 것을 탓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두 경우 모두 근본적인 문제는 단지 '강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는 것 뿐인데도. 바로 이런 종류의 착각이야말로 여성들이 느끼는 왜곡된 피해의식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체력과 근력처럼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은 좀 낫지만, 차이가 조금이라도 애매하거나 모호해진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철저한 논리와 합리성이 요구되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극도의 남초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프로그래머 자리가 나서 지원했다가 떨어진 남성은 자신의 실력밖에 탓할 게 없지만, 여자는 "내가 여자라서, 능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편견으로 떨어뜨린 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 의구심이 합리적인 범위의 검증만으로 끝난다면 참 좋겠지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특성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길과 인정하지 않는 길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근거가 부족해도 후자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근거 없는 선택을 한 사람들이 뭉쳐, 아무 차별이 없었던 곳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착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그런 왜곡된 의식을 가장 명확히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특정 분야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 쿼터제다. 정치, 치안, 군사 등의 분야에 여성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에 상관없이 상대적으로 낮은 허들로 여성을 일정 수 이상 뽑아야 된다는 제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제도야말로 "능력에 관계없이 성별만으로 혜택을 받는" 남녀차별의 정의에 아주 정확히 부합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도대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렇게 다른 남자와 여자라는 두 생물이 어떤 영역에서도 같은 능력과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그런 제도를 통해 충분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데서 나오는 손해는 대체 누가 책임지는 것일까? 범죄자를 잡을 능력이 떨어지는 경찰이나 전투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군인, 유권자를 대변하기는커녕 헛소리만 하는 여성 정치인들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차별을 없애기는커녕,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아주 확실하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거라는 데 돈을 걸 수도 있다.


결국 저번 글과 같은 논지로 돌아가는데,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이라는 목표를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적은, 존재 여부조차 모호한 차별을 맹목적으로 비판하게 만드는 피해의식과 그로 인한 분노라는 것이다. 남녀평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정말로 이루고 싶다면 우선 그것이 "능력에 따른 공정한 차별" 이라는 말과 동치라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오직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확실한 차별과 부조리들을 찾아 환부를 절개하는 의사처럼 정확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분노와 피해의식을 떠넘길 간편한 대상(남자)에 집중하는 순간, 본연의 목적은 멀리 사라지고 단지 분노와 비합리성에 찌든 광신자들의 집단만이 남을 뿐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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