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에 대한 생각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이른바 '뜨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실과 의견, 입장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입장을 찾는 것은 급류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과도 비슷하고,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해 표현한 생각도 나중에 사태가 정리되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것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번 사건에 대한 수많은 말들을 그저 지켜보고 있었지만 결국 사람 마음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여러 글들과 인터뷰, 영상, 댓글들을 보며 나름의 생각과 의견들이 쌓여가니, 어딘가에 갈무리라도 해 두고 싶은 마음에 여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
황교익이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는, 한국 천일염의 문제에 대해 다룬 기사에서였다. 별 생각 없이 쓰던 천일염이 사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를 불순물들이 포함되어 있는 위험한 조미료라는 주장을 폈는데, 그 근거로 염전 생산환경에서 쓰는 장판의 재질이나, 한국의 천일염 불순물 허용치 등을 들었다. 적어도 내가 찾아본 기사와 인터뷰들에서 황교익은 충분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으며, 과거에 자신이 천일염을 옹호했던 일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아는 지적 양심을 갖춘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런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비정상회담과 알쓸신잡, 수요미식회 등의 프로그램에서 황교익이 했던 말들을 보기 시작하면서다. 방송에서 나온 말들이야 으레 앞뒤 잘리고 돌아다니기 마련인지라 크게 신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거기에 나온 몇몇 말들의 수위가 꽤 높은 것 같아서 좀더 긴 버전의 발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한정식이 기생요릿집에서 유래한 최근의 문화라거나, 불고기의 이름이 야키니쿠에서 온 말이라거나 하는 많은 쟁점들은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고, 혹시 틀린 부분이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크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맛이라는 분야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명확히 문제였던 것은, 방송에서 언급하는 '사실' 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그 사실을 가지고 어떤 '가치'들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단정하는 황교익의 태도였다.
알쓸신잡에서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는 건 사람들의 인식에 의해 만들어진 착각이라면서 실제로 차이가 존재한다는 유시민을 '불쌍해 보인다', '맛있는 걸 안 먹고 자란 것 같다' 라며 조롱한다든가, 비정상회담에서 일본 요리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면서 중국과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비하한다든가, 쌈은 한국 음식을 맛없게 만들고 재료의 분별력을 없애는 방법 중 하나라든가 하는, 타인의 취향과 가치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폄하하는 그 발언들은 황교익이라는 사람에 대한 정나미를 완전히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황교익이라는 사람은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으로 보나, 실제 방송에서의 역할로 보나, 한 분야에서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전문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식을 탐구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일까? 의견이 많이 갈리겠지만, 나는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만 이야기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한 분야를 대표해 대중 앞에 나온 이상 대중은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고, 명확히 검증된 사실들 사이에 그 전문가의 가치 판단이나 왜곡된 해석이 포함되어도 그걸 걸러낼 능력이 없다. 이런 역학관계 속에서 자신이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대중에게 설파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닌 '선동가'와 '사기꾼' 이 되고,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의 자격을 잃는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달고, 어떤 음식이 '맛없는 음식' 라고 단정하는 것이 정확히 그런 행위다.
좀더 쉬운 이해를 위해 잠시 맛의 영역을 벗어나 보자. 어떤 음악 평론가가 방송에서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대해 '이런 음악은 가치가 없고, 이걸 듣는 사람들은 음악도 모르는 바보들이다' 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그 평론가가 대중음악을 거의 들어본 적도 없는 클래식 전문이라면? 그 후에 어떤 반응이 이어질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한 가지에 대해 객관적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타인의 주관적 경험의 영역에 끼어들 자격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 전문가의 권위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지키는 동안에만 유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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