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하여' 를 읽고

취미/책 | 2020. 8. 18. 18:14
Posted by 메가퍼세크

 

이것도 예전에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 봤던 책이다. 사진 기법이나 기술적인 면을 다룰 것 같은 제목과는 달리, 사진을 찍는 행위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다룬 책이다. 생소한 주제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골몰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많아 보람찼던 기억이 난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는 게 독서모임의 가장 큰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지.

 

이하 스포일러.

 

 

 

예전에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루이스 C.K 라는 코미디언의 스탠딩 코미디를 본 적이 있다. 딸의 학교에서 단체로 춤을 추는 행사를 보러 갔는데, 거기 있는 부모들이 모두 핸드폰으로 아이들의 춤을 찍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눈)을 놔두고 핸드폰 카메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이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공연을 했고, 정작 그렇게 찍어 올린 영상도 어차피 아무도 안 볼 SNS에 올라가 영혼 없는 칭찬이나 들을 게 뻔하다고 코미디언은 말했다. 웃기지만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영상을 끝까지 봤고, 한 며칠 동안 그 사람의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아마도 그게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사진이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대답하고자 하는 물음은 이렇게도 단순한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단순하고 포괄적인 질문일수록 제대로 된 답변을 하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는 '사진' 이라는 단어를 영화나 동영상 등과 엮어 '촬영하는 것' 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회의록이나 금융 기록, 증거사진과 같은 '기록물'로 보고, 누군가는 회화와 같은 '예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렇듯 다양한 정의와 관점이 공존하는 '사진' 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저자는 어떤 구도에서 담아냈을까.


책의 첫머리는 '찍는다는 것' 의 의미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진을 찍는 것은 연속된 시간 속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 중의 하나를 담아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현실에서 매 순간의 이미지는 그 다음 순간에 지나가는 새로운 이미지에 의해 즉시 덮어씌워지지만, 카메라에 포착된 순간 그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별도의 프레임 속에 고정되어 남는다.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는 피사체의 다양한 양태 중 일부분만을 골라 강조할 수 있고, 증명하고 싶은 것의 원형을 남길 수 있고,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나중에 회상하는 매개체로 사용될 수도 있다. 사진은 실제 있었던 장면을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는 사실성을 가지면서도 사진사의 마음에 드는 장면만을 남기는 해석적인 측면 또한 가지며,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 행위는 폭력적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진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미지의 복제물을 쏟아냄으로써 사람들은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실감을 느끼고, 경험과 현실에 대한 고양감을 느낀다는 말도 덧붙인다.


책의 다음 부분은 사진이 가지는 도덕적 의미에 대해 다룬다. 처음에는 무언가 아름답고 세련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던 사진은 이윽고 다양하고 동등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만인이 공유하는 인간의 조건이나 본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고, 이윽고 고통스럽고 추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사람들의 정신적 경험을 넓히는 목적을 위해 쓰였다. 단지 무언가를 강조하는 힘을 가졌을 뿐인 사진이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함으로써, 현실과 도덕의 경계를 드러내고 불편한 것을 꺼내놓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우리의 잡동사니가 예술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부스러기가 역사가 되어버렸다" 라는 말이 이런 시각에 대한 불편함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다음 두 장에서는 사진의 예술적 측면에 대해 다룬다. 단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추하거나 별볼일 없는 것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냈고, 어떤 식으로 기존에 없었던 것을 표현하고자 애썼고, 예술이라는 관념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집착하고 어떤 식으로 떨쳐내려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을 통해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표현할 가치가 있는 사물과 장면은 무엇인지, 표현상의 제약과 표준에 대한 집착을 통해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올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진작가들의 고민은 인상깊었지만, 회화나 기존 예술에 대한 비뚤어진 열등감의 발로로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사진을 통한 이미지의 범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씩 찍을 수 있는 사진과 영상 매체의 발달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보다 현실에 대한 이미지로 세상을 접한다. SNS에 올려둔 어제의 음식 사진을 통해 어제의 이미지와 마주하고, 오늘 찍은 자기 사진을 통해 스스로의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다.끝없이 복잡해지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현실의 단면적인 이미지의 총합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다시 이미지로 재생산하고 소비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하지만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얻은 이미지가 정말로 현실일까. 시간이 지나면 바래고 잊혀지는 기억 속의 이미지에 비해 사진 속의 과거는 언제나 생생하지만, 가끔은 그런 지나친 생생함이 물을 주지 않아도 항상 푸른 조화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과 동영상이 무엇보다 현실과 가깝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뭘까. 그 어떤 매체도 어떤 순간의 모든 느낌과 생각, 오감의 정보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이상, 사진을 통한 기록 또한 현실의 온전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 재생을 돕는 하나의 가공품일 뿐이다.

 

비록 사진을 통한 기억과 재생이 다른 매체에 비해 생생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런 부분적인 생생함이 현실이라는 복잡한 실체의 다른 측면들을 빛바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동영상에 담긴 생생한 기록보다는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가끔씩 떠오르는 경험과 기억들을 선호하는 편이라, '사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지만 고갈시키기도 한다' 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지나치게 선명한 색들로만 칠해진 그림이 눈을 피로하게 하는 것처럼, 범람하는 이미지 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 희미하고 잊혀지는 자연스러운 기억의 이미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사진 하나 없는 일기장에 짧은 글 몇 줄로 하루의 인상을 남겨둔다.

'취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소리에 대하여' 를 읽고  (0) 2020.08.18
세상물정의 물리학  (1) 2015.09.22
 

'개소리에 대하여' 를 읽고

취미/책 | 2020. 8. 18. 18:04
Posted by 메가퍼세크

 

평소 별 생각 없이 쓰는 개소리라는 단어에 대해, 철학적 차원에서 고찰한 특이한 책이다.

 

예전에 어떤 독서클럽에서 읽고 후기를 썼는데, 오랜만에 보니 괜찮아 보여서 여기에 보관해 둔다.

물론 평소처럼 스포일러 포함.

 

 

 

 

 

선동과 개소리의 위력

서점의 교양 코너에 있는 많은 책들의 도입부는 그 책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논의의 주제가 되는 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탐구하는 것은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며, 동시에 다루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인식을 이끌어내는 좋은 출발점이기도 하다.

목차가 필요없을 정도로 짧은 이 책의 전개도 그런 전형적인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분석의 대상이 되는 단어는 조금 독특하다. 개소리라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단어는 얼핏 진지한 이야기의 주제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책의 다면적이고 섬세한 분석은 우리가 이 단어를 사용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많은 개념들을 파헤쳐 드러낸다.

비슷한 단어와의 비교, bull과 shit이라는 두 단어의 역사적, 의미적 고찰과 실제적 사용례 분석 등을 통해 저자가 최종적으로 내리는 결론은, 개소리라는 단어가 '진리값을 신경쓰지 않는 주장'을 의미한다는 것. 자신이 아는 진실을 고의로 왜곡해서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주장을 꾸며내는 것은 개소리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개소리는 진실에 연연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거짓말보다 큰 진실의 적이라고 말한다.

개소리에 대한 이 책의 정의에 따르면, 그 개념에 가장 잘 들어맞고 비슷한 단어는 아마 '선동'이 아닐까. 남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의 주장으로, 진실의 여부보다 설득력을 기준으로 구성된 선동의 개념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개소리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멀게는 나치 독일에서부터 가깝게는 일베와 워마드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배타적인 집단들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신경쓰지 않는 이런 '선동적인' 개소리들이 힘을 발휘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준다는 점일 것이다. 히틀러는 1차 대전의 패배에 좌절한 독일인들에게 '우리는 잘 싸웠지만,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졌다' 는 말을 들려주어 인기를 얻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믿는 것이 자국과 자신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고, 개소리에서 자존감을 공급받는 순간부터 그 말을 부정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진실에 신경써야 한다는 제약이 없으므로, 개소리로 묶인 집단의 사람들은 더 편하고 거리낌없이 자신이 믿는 것을 부르짖을 수도 있다.

반면 진실을 추구하는 길은 험난하다. 거의 모든 지식의 영역에서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한 분야에서 정립된 가장 정확한 진실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그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한 소수의 학자들뿐인 경우가 많다. 결국 일반인이 가급적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려면 그 분야의 믿을만한 책이나 논문, 기사 등을 찾아보며 끊임없는 비판적 수용을 거쳐야 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마저도 회의주의에 따라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므로 과도하게 맹신하거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도 없다. 게다가 개소리를 믿을 때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이나 자존감 같은 것은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둘의 싸움에서 승패는 명확하다. 소수의 전문가와 지식인들이 철저하게 검증해 조금씩 내놓은 진실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 쉴새없이 늘어놓는 개소리에 파묻히기 마련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가짜 정보와 선동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어딘가에는 이 근본적인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해도, 수많은 개소리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반드시 있다' 고 하면 개소리가 될 테니, '있었으면 한다' 정도로 끝내는 게 좋겠다.

'취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에 대하여' 를 읽고  (0) 2020.08.18
세상물정의 물리학  (1) 2015.09.22
 

hatao&nami

취미/음악 | 2019. 8. 13. 20:19
Posted by 메가퍼세크

나는 새로운 음악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한때는 내 취향을 찾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한번 좋다고 느낀 음악은 기본적으로 몇 주일씩 듣고 어느 정도 질리면 예전에 꽂혔던 곡을 듣는 성향 탓에 어느새 꽂힌 음악들의 레퍼토리만으로 이 사이클을 한 바퀴 돌릴 수 있게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슬슬 새로운 곡을 모으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고, 취향도 꽤 확실해져서 듣던 곡만 돌려 들으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아직도 7080 음악을 찾는 것처럼, 어쩌면 나도 평생 동안 지금 좋아하는 음악들만을 반복해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 매일 반복하면서 같은 노래들을 수십 번씩 듣다 보면 가끔은 각 곡들에 처음 빠졌던 순간부터 마음에 드는 소절, 가사와 곡에 얽힌 경험들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그런 기억들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늘도 그런 기억의 모음집들을 더듬다가, 문득 떠올랐던 특히 강렬했던 기억을 하나 풀어놓으려 한다.

 

 

 

hatao&nami는 일본의 2인조.. 밴드?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하고, 합주단?이나 듀오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nami는 아이리쉬 하프와 피아노를, hatao는 다양한 종류의 관악기를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장르는 기본적으로는 아일랜드 음악이지만 북유럽 계열의 민속 음악도 연주하며, 일본 내에서의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것 같다. 공식 홈페이지도 일본어로만 되어 있고, 유튜브에서도 hatao의 개인 계정에서 가끔씩 공연 영상을 올리는 정도다. 

 

내가 이 밴드를 알게 된 건 평소 좋아하던 아일랜드 음악 밴드 '바드'와의 합동 공연 덕분이었는데, 예매할 때는 누군지도 몰랐지만 막상 찾아가 연주를 듣고서는 순식간에 빠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경쾌함과 서정성을 모두 갖춘 아일랜드 음악의 매력을 잘 살려 주는 아이리쉬 하프와 피아노의 선율도 좋았고, 다양한 종류의 관악기들에서 나오는 독특한 톤과 음색들, 보컬은 없지만 마치 이야기하는 듯한 멜로디가 어울려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말 예술적이었다. 

 

공연 중간중간 들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관악기를 맡고 있는 hatao 씨는 그야말로 일본의 장인 정신을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사람이었다. 젊을 때부터 관악기와 포크 음악에 빠져 십수 년 이상의 세월 동안 다양한 관악기들을 섭렵하고, 아일랜드와 북유럽을 오가며 각지의 악기와 연주 기법에 대해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공연 중에 사용했던 관악기만 대여섯 개가 넘었는데, 그중 하나는 북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구한 소나무 피리라면서 세계에 몇 없는 귀중한 악기라고 했다. 관악기에 대한 열정만큼 그의 연주는 시종일관 완벽하면서도 정열적이었고, 스피커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두터우면서도 섬세한 선율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진지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고, 멘트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숨길 수 없는 유쾌함과 해맑은 미소를 보면서 진심으로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분의 멋진 실력이 잘 드러났던 곡은 수없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Night flight라는 곡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도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의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조용함과 경쾌함이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굴곡이 멋지게 표현된 느낌.

 

(공식 채널에 좋은 음질의 영상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CD에서 추출한 음원을 업로드했다. 영상 설명에 공식 채널과 홈페이지를 링크했으니 참조)

 

하프와 피아노를 맡은 nami 씨도 그 못지않게 해맑고 유쾌하면서도 차분한 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첫인사부터 시작해서 시종일관 쾌활한 분위기로 멘트를 진행하다가도, 연주에 몰입할 때면 표정이 확 바뀌면서 곡의 리듬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연주 레퍼토리 중간에 Time flow라는 곡이 있었는데, 시작하기 전에 이 곡을 작곡할 때의 심정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나가고 나서 오랫동안 슬픔에 빠져 있다가, 문득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는 잊히겠지 하는 달관한 마음이 들어 작곡한 곡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실제로 음악을 들을 때도 6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감정들이 흐르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반에는 흐느끼는 듯하다가 방황하고, 무언가를 읊조리고, 체념하는 듯한 선율들. 분명 가사가 없음에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다 알 것 같은, 음악이 왜 만국 공통의 언어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곡이다.

 

 

 

그 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곡은 수없이 많지만,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다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싶어 일단 이쯤에서 접는다. 위의 두 곡이 마음에 드는 분들은 유튜브에 hatao nami를 검색해 보시기를. 이 글에서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멋진 듀오와,. 그들의 좋은 곡 두 개를 소개한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취미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꽂힌 노래.  (0) 2016.10.03
오필리아-루시아  (1) 2015.04.25
바드-춤추는 바람  (1) 2015.04.25
DEPAPEPE-二人の写真(두 사람의 사진)  (0) 2015.04.25
가을방학, 루시아 노래들.  (0) 2015.03.08
 

블로그 이미지

메가퍼세크

왠지 모르게 말하고 싶어진 것들을 쌓아두는 곳.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8)
자아성찰 (13)
취미 (31)
경험 (4)
잡설 (14)
보관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