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하여' 를 읽고
이것도 예전에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 봤던 책이다. 사진 기법이나 기술적인 면을 다룰 것 같은 제목과는 달리, 사진을 찍는 행위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다룬 책이다. 생소한 주제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골몰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많아 보람찼던 기억이 난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는 게 독서모임의 가장 큰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닐지.
이하 스포일러.
예전에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루이스 C.K 라는 코미디언의 스탠딩 코미디를 본 적이 있다. 딸의 학교에서 단체로 춤을 추는 행사를 보러 갔는데, 거기 있는 부모들이 모두 핸드폰으로 아이들의 춤을 찍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눈)을 놔두고 핸드폰 카메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이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공연을 했고, 정작 그렇게 찍어 올린 영상도 어차피 아무도 안 볼 SNS에 올라가 영혼 없는 칭찬이나 들을 게 뻔하다고 코미디언은 말했다. 웃기지만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영상을 끝까지 봤고, 한 며칠 동안 그 사람의 말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아마도 그게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사진이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대답하고자 하는 물음은 이렇게도 단순한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단순하고 포괄적인 질문일수록 제대로 된 답변을 하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는 '사진' 이라는 단어를 영화나 동영상 등과 엮어 '촬영하는 것' 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회의록이나 금융 기록, 증거사진과 같은 '기록물'로 보고, 누군가는 회화와 같은 '예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렇듯 다양한 정의와 관점이 공존하는 '사진' 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저자는 어떤 구도에서 담아냈을까.
책의 첫머리는 '찍는다는 것' 의 의미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진을 찍는 것은 연속된 시간 속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 중의 하나를 담아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현실에서 매 순간의 이미지는 그 다음 순간에 지나가는 새로운 이미지에 의해 즉시 덮어씌워지지만, 카메라에 포착된 순간 그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별도의 프레임 속에 고정되어 남는다.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는 피사체의 다양한 양태 중 일부분만을 골라 강조할 수 있고, 증명하고 싶은 것의 원형을 남길 수 있고,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나중에 회상하는 매개체로 사용될 수도 있다. 사진은 실제 있었던 장면을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는 사실성을 가지면서도 사진사의 마음에 드는 장면만을 남기는 해석적인 측면 또한 가지며,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 행위는 폭력적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진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미지의 복제물을 쏟아냄으로써 사람들은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실감을 느끼고, 경험과 현실에 대한 고양감을 느낀다는 말도 덧붙인다.
책의 다음 부분은 사진이 가지는 도덕적 의미에 대해 다룬다. 처음에는 무언가 아름답고 세련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던 사진은 이윽고 다양하고 동등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만인이 공유하는 인간의 조건이나 본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고, 이윽고 고통스럽고 추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사람들의 정신적 경험을 넓히는 목적을 위해 쓰였다. 단지 무언가를 강조하는 힘을 가졌을 뿐인 사진이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함으로써, 현실과 도덕의 경계를 드러내고 불편한 것을 꺼내놓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우리의 잡동사니가 예술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부스러기가 역사가 되어버렸다" 라는 말이 이런 시각에 대한 불편함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다음 두 장에서는 사진의 예술적 측면에 대해 다룬다. 단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추하거나 별볼일 없는 것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냈고, 어떤 식으로 기존에 없었던 것을 표현하고자 애썼고, 예술이라는 관념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집착하고 어떤 식으로 떨쳐내려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을 통해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표현할 가치가 있는 사물과 장면은 무엇인지, 표현상의 제약과 표준에 대한 집착을 통해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올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진작가들의 고민은 인상깊었지만, 회화나 기존 예술에 대한 비뚤어진 열등감의 발로로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사진을 통한 이미지의 범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씩 찍을 수 있는 사진과 영상 매체의 발달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보다 현실에 대한 이미지로 세상을 접한다. SNS에 올려둔 어제의 음식 사진을 통해 어제의 이미지와 마주하고, 오늘 찍은 자기 사진을 통해 스스로의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다.끝없이 복잡해지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현실의 단면적인 이미지의 총합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다시 이미지로 재생산하고 소비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하지만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얻은 이미지가 정말로 현실일까. 시간이 지나면 바래고 잊혀지는 기억 속의 이미지에 비해 사진 속의 과거는 언제나 생생하지만, 가끔은 그런 지나친 생생함이 물을 주지 않아도 항상 푸른 조화와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과 동영상이 무엇보다 현실과 가깝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뭘까. 그 어떤 매체도 어떤 순간의 모든 느낌과 생각, 오감의 정보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이상, 사진을 통한 기록 또한 현실의 온전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 재생을 돕는 하나의 가공품일 뿐이다.
비록 사진을 통한 기억과 재생이 다른 매체에 비해 생생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런 부분적인 생생함이 현실이라는 복잡한 실체의 다른 측면들을 빛바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사진과 동영상에 담긴 생생한 기록보다는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가끔씩 떠오르는 경험과 기억들을 선호하는 편이라, '사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지만 고갈시키기도 한다' 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지나치게 선명한 색들로만 칠해진 그림이 눈을 피로하게 하는 것처럼, 범람하는 이미지 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 희미하고 잊혀지는 자연스러운 기억의 이미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사진 하나 없는 일기장에 짧은 글 몇 줄로 하루의 인상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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