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면

잡설 | 2018. 3. 4. 22:25
Posted by 메가퍼세크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지능이라는 능력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넓어지고,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들에 대한 인공지능의 수행 능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 인류 최고의 바둑 기사가 인공지능 앞에서 무릎꿇는 것을 목도한 사람들이 미래의 인공지능이 정복할 영역들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뛰어난 능력의 로봇으로 인한 대규모의 일자리 소멸과 제 2의 러다이트 운동에서부터 자신보다 바둑도 못 두는 인간에게 반기를 든 로봇의 반란, 로봇을 통해 한층 더 효율적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테러 조직과 군대에 대한 우려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데 있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정작 그런 상상들 중 어떤 것이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고찰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잘 언급되지 않는 한 시나리오에 대해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스스로 이루어낸 성취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 외면적 가치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해낸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역이다. 작게는 한 인간의 삶에서, 크게는 사회나 국가에 걸친 거시적인 주제들을 다루기도 하는 이 영역은 모든 문화권과 지역과 시대에 걸쳐 언제나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간 지능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정수이자 단순한 실용적 사고와 계산적 능력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냉정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예술이라는 영역은 다른 지능적 행동들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음악과 톨스토이의 소설은 이성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어떤 번뜩이는 것을 필요로 하는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창조성이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가장 단순한 관념은, 예컨대 오선지 몇백 줄에 음표를 채워넣을 수 있는 천문학적 가짓수를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논리에 기인한다. 인간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능성의 바다에서 듣거나 보기 좋은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논리에 입각하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능력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듣거나 보기 좋은" 이라는 조건이 이성적으로 계산해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해야 할 것은, 이 전제가 과연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아니"라는 답변의 설득력을 급속하게 올리고 있다. 당장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서 가장 좋은 수를 찾아낸 알파고의 사례가 가장 큰 반증이다. 딥 러닝의 알고리즘은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서 가장 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경우를 탐색하는 대신 몇 가지 가능성에서 시작해서 조금 더 그 기준을 잘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최적의 가능성에 해당하는 점들을 빠르게 찾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알고리즘들이 예술 영역에 적용되는 것도 결국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인간이 청각으로 느끼는 감각과 취향의 기준 함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오선지의 가능성 공간에서 딥 러닝을 수행하면 인간이 "듣기 좋은" 음악의 가능성의 점(=걸작)들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런 사태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즉 인공 지능의 예술적 능력이 인간을 초월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소수에게만 주어지고, 그렇기에 하나의 예술 작품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무난한 취향과 감각의 기준 함수를 만족하는 선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딥 러닝으로 자기 집에서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오직 한 사람만의 기준 함수에 맞추어 그 사람에게 가장 재미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걸작"의 의미는 어떻게 될까.


또한, 인공 지능의 창작 능력을 이용해 언제든 "보고 싶은" 스타일의 예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되었거나 작가의 절필로 더 이상 후속작을 볼 수 없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의 스타일을 모두 입력하고 다음 시리즈를 뽑아내면 된다. 예컨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코난 도일의 스타일을 완벽히 모방한 주문제작 홈즈 시리즈를 영원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고, 예술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겠다. 좋게 생각하면 누구나 자기 취향을 만족시키며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나쁘게 생각하면 모두가 자신만의 취향에 빠져 소통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인간이 생각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아주 큰 변화를 겪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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