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워 후기

취미/영화 | 2018. 4. 30. 23:57
Posted by 메가퍼세크

최고였다.


여태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것도 아니고, 그 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마블 스튜디오의 이번 작품은 충분히 오래도록 기억할 가치가 있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무게를 가진 영화도 아니고, 개봉 전부터 수많은 팬들의 관심과 주목을 한몸에 받아온 작품이 이 정도의 완성도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유명 히어로들을 마구 내보내고도 낮은 기대치와 그보다 더한 실망을 안겨줬던 저스티스 리그를 생각해 보면, 날로 커져만 가는 기대와 어려운 조건들 속에서도 이름값에 맞는 수준의 영화를 계속 뽑아내는 마블의 능력이 신기하기만 하다.


영화의 기획을 본 순간, 누구나 생각했을 만한 이 영화의 난점은 대략 세 가지.



1.수많은 히어로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2.그들이 맞서 싸울 빌런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연출할 것인가?


3.영화 두 개에 걸친 장대한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첫 번째 문제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축에 속한다. 10년의 세월 동안 쌓아온 20여 명의 다양한 히어로들을 배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두 번의 어벤저스와 시빌 워를 만들며 쌓인 노하우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어벤저스처럼 다양한 잡졸을 등장시켜 상대적으로 약한 영웅들이 활약할 기회를 주면서도, 충분히 강력한 빌런들과의 싸움을 통해 힘과 힘이 부딪히는 시빌 워의 쾌감 또한 놓치지 않았다. 더 발전한 것이 있다면 특히 강력한 히어로들인 헐크, 토르, 비전을 빠르게 무력화시켜 전체적인 파워 밸런스를 빠르게 맞춘 것과, 소수 빌런에 대한 다수 히어로들의 화려하고 개성적인 연계 공격 구도를 만들어낸 정도? 암살자들의 활약이 적은 것은 조금 아쉽지만, 전체적인 분량 배분은 사실상 완벽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두 번째 문제는... 초기의 마블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아킬레스건 중 하나였다. 멋진 영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밋밋하고, 억지로 넣은 것 같은 평면적인 빌런들.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했던 울트론이나 킬리언은 그나마 양반이고, 그냥 능력이 없던 말레키스나 똥폼만 잡던 위플래시, 로난처럼 의미조차 알 수 없는 막장도 꽤 많았었다. 그러던 것이 윈터 솔저를 시작으로 제모 남작과 벌쳐를 거치며 점점 빌런의 매력이 살아나고, 이번 작품의 타노스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이게 바로 멋진 빌런이다' 라고 말할 만한 최고의 매력과 카리스마, 개성이 폭발했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아스가르드의 피난선을 박살내고, 강력한 힘을 가진 토르와 로키 형제는 물론 여태껏 힘의 상징이었던 헐크를 정면으로 박살내버리는 압도적인 육체적 강함을 보여주고, 그러면서도 몇 번인가 가볍게라도 한방씩 먹는 모습을 통해 아주 손이 닿지 않는 존재는 아니라는 인상을 주며, 그러면서도 강인한 의지와 점점 늘어나는 스톤의 능력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묵묵히 관철해 나가는 카리스마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희생을 불사하지만 목표를 이룬 후에는 미련없이 사라지는 깔끔함까지. 이 정도면 여태 나왔던 매력적인 빌런들의 모든 매력을 합쳐 놓았다고 해도 무리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마블 영화 빌런 중 최초로 표면적으로라도 '신념'과 '공익'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 여태껏 자신의 이익이나 복수, 기껏해야 야망 정도였던 빌런들의 소박한 스케일을 넘어 '전 우주적 균형' 이라는 목표를 위해 한시도 멈추지 않는 모습이, 타노스에게 숭고함과 인간미라는 입체적인 매력을 부여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쇼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주가 인구과잉이라고 모든 행성의 인구를 반으로 줄인다는 발상 자체가 좀 단순무식하기는 한데.. 행성별로 적정인구에 맞춰 인구를 줄인다던가, 있는 사람은 냅두고 인구의 반을 불임으로 만든다던가 하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대안보다, 자기 행성에서 실현하지 못한 폭력적인 정책을 우주 전체에 적용하는 데 목을 매는 태도 자체가 타노스의 내적 동기를 부각시키는 데는 더 효과적이기는 하다.)


수양딸인 가모라를 대하는 태도 또한 주목할 만한데, 영화 초반부터 엄청난 수의 생명을 죽이면서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던 최종보스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초록색 딸의 땡깡을 받아주며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딸한테 꼼짝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고 할까? 어찌 보면 조금 작위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전까지 쉴틈 없이 몰아붙였던 타노스의 포스를 완화시켜 주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마지막 요소인 스토리라인의 배분은, 모든 난점 중 마블이 여태껏 직면해보지 못한 가장 큰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여태까지의 마블 영화들이 세계관을 공유한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모든 영화가 기승전결의 완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번처럼 반쪽짜리 스토리만을 담고 있는 작품을 개봉하는 모험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시작된 이후 완전히 처음이다. 게다가 평범한 영화도 아닌,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준비해 온 복선의 결정판. 만약 첫 영화가 예상외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다면 일 년 후에나 나올 어벤저스 4의 운명이야 뻔할 뻔자고,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두 번이나 날려버릴 수도 있는 판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리스크에 대해 고민한 결과인지, 어벤저스3의 스토리 배분은 충분히 뛰어나고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영웅들이 서로 만나 싸운다는 원초적인 재미를 상당 부분 충족시키면서도 모든 영웅을 만나게 하지는 않고, 캡틴과 아이언맨의 해묵은 갈등이나 아직 등장하지 않은 영웅들과 같은 여러 요소들을 다음 편을 위해 남겨둔다. 그에 더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려는 헐크나 닥터 스트레인지의 예언, 수많은 히어로들의 사망을 통해 다음 편의 스토리를 아주 대략적으로는 예측할 수 있지만 자세히는 알 수 없도록 절묘하게 조절했다.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은 알려주지만 흥미를 잃을 만큼은 알려주지 않는, 그 미묘한 선을 확실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부분에서는 시빌 워에서 관객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루소 형제의 역량이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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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면

잡설 | 2018. 3. 4. 22:25
Posted by 메가퍼세크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지능이라는 능력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넓어지고,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부분들에 대한 인공지능의 수행 능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 인류 최고의 바둑 기사가 인공지능 앞에서 무릎꿇는 것을 목도한 사람들이 미래의 인공지능이 정복할 영역들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뛰어난 능력의 로봇으로 인한 대규모의 일자리 소멸과 제 2의 러다이트 운동에서부터 자신보다 바둑도 못 두는 인간에게 반기를 든 로봇의 반란, 로봇을 통해 한층 더 효율적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테러 조직과 군대에 대한 우려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데 있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정작 그런 상상들 중 어떤 것이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고찰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잘 언급되지 않는 한 시나리오에 대해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스스로 이루어낸 성취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 외면적 가치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해낸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역이다. 작게는 한 인간의 삶에서, 크게는 사회나 국가에 걸친 거시적인 주제들을 다루기도 하는 이 영역은 모든 문화권과 지역과 시대에 걸쳐 언제나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간 지능의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정수이자 단순한 실용적 사고와 계산적 능력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냉정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예술이라는 영역은 다른 지능적 행동들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음악과 톨스토이의 소설은 이성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어떤 번뜩이는 것을 필요로 하는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창조성이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가장 단순한 관념은, 예컨대 오선지 몇백 줄에 음표를 채워넣을 수 있는 천문학적 가짓수를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논리에 기인한다. 인간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능성의 바다에서 듣거나 보기 좋은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논리에 입각하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능력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듣거나 보기 좋은" 이라는 조건이 이성적으로 계산해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해야 할 것은, 이 전제가 과연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아니"라는 답변의 설득력을 급속하게 올리고 있다. 당장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서 가장 좋은 수를 찾아낸 알파고의 사례가 가장 큰 반증이다. 딥 러닝의 알고리즘은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서 가장 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경우를 탐색하는 대신 몇 가지 가능성에서 시작해서 조금 더 그 기준을 잘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최적의 가능성에 해당하는 점들을 빠르게 찾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알고리즘들이 예술 영역에 적용되는 것도 결국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인간이 청각으로 느끼는 감각과 취향의 기준 함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오선지의 가능성 공간에서 딥 러닝을 수행하면 인간이 "듣기 좋은" 음악의 가능성의 점(=걸작)들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런 사태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즉 인공 지능의 예술적 능력이 인간을 초월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소수에게만 주어지고, 그렇기에 하나의 예술 작품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무난한 취향과 감각의 기준 함수를 만족하는 선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딥 러닝으로 자기 집에서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오직 한 사람만의 기준 함수에 맞추어 그 사람에게 가장 재미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걸작"의 의미는 어떻게 될까.


또한, 인공 지능의 창작 능력을 이용해 언제든 "보고 싶은" 스타일의 예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되었거나 작가의 절필로 더 이상 후속작을 볼 수 없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의 스타일을 모두 입력하고 다음 시리즈를 뽑아내면 된다. 예컨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코난 도일의 스타일을 완벽히 모방한 주문제작 홈즈 시리즈를 영원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고, 예술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겠다. 좋게 생각하면 누구나 자기 취향을 만족시키며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나쁘게 생각하면 모두가 자신만의 취향에 빠져 소통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인간이 생각하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아주 큰 변화를 겪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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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입문기.

취미/기타 | 2017. 12. 26. 22:03
Posted by 메가퍼세크

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꽤 된 것 같다.


처음으로 티백을 샀던 시점으로부터 계산하면 3년 남짓, 처음으로 찻잎을 산 때부터는 2년 정도. 차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 입장에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일 수 있겠지만, 정말로 문외한이었던 시절부터 생각하면 나름대로 제법 많은 단계들을 거쳐왔다고 생각한다. 그 소박한 과정과 행복들을 언젠가 잊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안타까움이 남아, 짧은 글로나마 기억을 정리해 보려 한다.


처음으로 홍차라는 음료의 매력을 알게 된 계기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홍대의 한 찻집. 커피를 주로 하는 일반적인 카페가 아니라, 정말로 차만을 주 메뉴로 내놓는 '찻집' 이었다. 그동안 대충 우려낸 립톤 티백밖에 몰랐던 입장에서는 온갖 찻잎의 이름과 특징들이 적힌 메뉴판만으로도 신기했는데, 사진에서나 볼 법한 하얀 찻주전자와 찻잔, 보온을 위한 천 덮개까지 딸려나오는 디테일함이 참 인상깊었다. 그 때 마셨던 차는 '웨딩 임페리얼'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찻잔에 따르자마자 확 풍기는 진한 향기와 은은한 맛, 곁들여 먹었던 스콘의 맛까지 그야말로 모든 게 완벽하게 만족스러웠다. '몇 잔이라도 끝없이 마시고 싶다' 는 생각에서부터 '그동안 왜 이런 걸 몰랐을까' 라는 후회, '앞으로 살면서 이런 걸 계속 마실 수 있다면, 인생이란 건 꽤 살 만한 게 아닐까' 라는 감정까지도 이끌어낼 정도로, 살면서 느꼈던 가장 깊고 진실한 만족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 짧은 만족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본격적인 찻잎은 생각보다 너무 양이 많았고, 몇 번 마시고 내팽개치는 애물단지가 될까 싶어 근처 마트에서 산 얼그레이 티백 한 통이 내가 스스로 구입한 첫 홍차였다. 비록 크게 비싼 티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느꼈던 만족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은 상당히 뿌듯했고, 나름대로 우리는 시간도 바꿔보고 어울리는 과자도 찾아가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새로운 취미에 익숙해졌다. 마침 그 즈음에 사는 곳도 바뀌고 취업 비슷한 것도 해서, 기념삼아 처음으로 진짜 잎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구입했던 브랜드, 트와이닝스.>


그저 처음에는 클래식한 게 좋겠지 싶어 트와이닝스라는 브랜드의 다즐링(왼쪽)을 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홍차의 강한 향에 매료된 초보자에게 다즐링의 향은 너무 은은했고, 언뜻 녹차와도 비슷한 그 느낌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산 지 한 달 남짓은 의욕적으로 마시다가 어느새 잊어버리고, 몇 달간 방치해두다가 밀크티 시도해본다고 좀 마시고, 홍차시럽 시도해본다고 또 손대고... 그러다 보니 결국 다 마시는 데 한 일 년은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찻잎 한 통을 비웠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하얀 본차이나 다구들과 함께 산 게 오른쪽의 레이디그레이. 트와이닝스의 대표적인 상품이고, 초심자에게 추천한다는 리뷰를 보고 덜컥 질렀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조금 연하고 녹차같은 느낌이 났던 다즐링에 비해, 레몬처럼 상큼한 향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쉽게 지루해지는 생물인 탓인지, 아무리 좋은 향이라도 매일같이 하나만 마시다 보면 물리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얼마 안 되는 인내심이 지름신의 유혹에 순식간에 패퇴하고 통장 잔고의 숫자 몇 개를 바꿔놓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수순과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자낫-노르망디 뽐므>(왼쪽)

<티센터 스톡홀름 블렌드>(오른쪽)

<꽁뜨와 프랑세 뒤 떼-떼 드 리베흐>(아래)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나가면 안 되겠지 싶어 세 통으로 제한을 걸고, 다양한 향을 맛보고 싶었으니 최대한 느낌이 다른 것으로,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쇼핑몰을 뒤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과정조차도 사실은 꽤 마음에 들었다고도 할까. 찻잎의 향과 느낌에 대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과 묘사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끝에 찾은 최적의 답이, 이 세 종류의 찻잎이었다.


먼저 사과를 뜻하는 '뽐므' 라는 이름이 붙은 첫번째 차는, 숯덩이같이 검은 색의 찻잎과 그에 걸맞은 강력한 떫은 맛, 뭔가 약재 냄새 같으면서도 곰곰히 짚어보면 사과의 느낌이 나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차들과 비슷한 시간을 우려도 월등히 떫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짧은 시간을 우리면 향이 충분히 우러나오지 않아, 초 단위의 정확한 시간 조절을 필요로 하는 상당히 고난이도의 잎이었다.


하지만 그런 높은 난이도와 성공했을 때의 중후하면서도 달작지근한 향은 열정에 불타는 초보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도전 과제가 되었고, 실수로 떫게 우려져도 커버할 수 있는 단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집어들게 되곤 하는 차였다.


두 번째, '티센터 스톡홀름 블렌드' 는 대중적으로 꽤 인기가 많은 것 같았는데, 올록볼록한 요철과 함께 세심하게 디자인된 차 용기도 그렇고, 홍차 특유의 따뜻한 느낌과 레이디그레이를 닮은 시트러스의 시원한 향,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이름 모를 보라색 느낌의 향으로 이루어진 완성도 높은 향의 스펙트럼, 그리고 다른 차보다 조금 더 우려도 그렇게 떫지 않은 부드러움을 가진 붙임성 있는 찻잎이었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가벼운 느낌으로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너무 가라앉은 마음을 조금 편하게 놓아주고 싶을 때, 그리고 홍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처음 대접하고 싶을 때 안성맞춤인, 보편적이고 편안한 느낌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마지막 차 '떼 드 리베흐' 는 프랑스어로 '겨울의 차' 라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따뜻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조금 밝은 갈색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가지고 있었다. 스톡홀름 블렌드와 같은 상큼한 느낌은 없지만 완만하게 풍겨져 오는 따뜻함과 그 사이사이 풍겨오는 고풍스럽고 깊은 향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세 종류의 차를 차례로 즐기는 경험은 어느덧 하루에 한 번씩 맡는 향과 목을 넘어가는 따뜻한 액체의 느낌에 익숙해지게 만들었고, 그렇게 형성된 나의 작은 의식은 이윽고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었다. 언젠가 무슨 이유로든 이런 느낌과 감정을 잃어버리고 다른 취미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해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개척한 이 작은 즐거움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한 조각으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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