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들의 시대'-노트르담 드 파리

카테고리 없음 | 2015. 1. 22. 05:19
Posted by 메가퍼세크

고등학교 때, 매 학기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식 날까지 애매한 시간이 남았다.

진도는 끝났는데 수업일수를 뺄 수는 없는 터라 선생님들마다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때웠는데, 좀 괴짜였던 음악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음악에 관련된 영화를 틀어 주셨다.


기억나는 이름은 shine, once, 노트르담 드 파리, 그리고 베토벤에 대한 어떤 영화.

대부분 길이도 상당히 길고, 스스로는 찾아보지도 않을 만큼 생소한 작품들이었는데 기묘하게도 대부분이 내 취향에 맞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게 봤던 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심각한 인상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나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노래를 불러대는데,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어로 부르는 노래가 하나같이 엄청나게 멋있었고,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 아래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도 전혀 어색하거나 오글거리지 않으며 오히려 웅장하며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극의 초반부에 시인이 혼자 나와 약간 느끼한 목소리로 부르는 곡에 완전히 꽂혀서, 단 한 번 들었을 뿐임에도 멜로디와 목소리가 뇌리에 박혀 거진 일 년간이나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나중에 극을 다시 보며 알게 된 곡의 이름은 'Le Temps des Cathédrales'. 

우리말 번역은 '대성당들의 시대' 라고 한다.

(원제는 '대성당의 시대' 라는 뜻이지만, 발음을 위해 고친 이름이라고)





그리고 더 나중에, 한창 음악에 빠져 좋은 곡들을 모으다가 이 곡의 한국어 버전 번안곡도 발견했다.




원곡이 너무 심각하게 좋기도 했고 번안곡의 한계도 있어서 완전히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원곡의 포스와 분위기를 상당 부분 잘 살려냈으며, 가사를 직접 우리말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이 곡에도 한동안 엄청나게 빠졌었다. 원래 곡 하나에 빠지면 최소한 백 번이 넘게 들어대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 두 곡에는 가장 오랜 기간동안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시적인 가사에 물 흐르듯 이어지는 멜로디,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곡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내 취향이고 특히 원곡은 그 요소들을 경외감마저 느껴질 만큼 완벽히 소화해내서 듣고만 있어도 '정말 예술이다' 라는 느낌을 지금도 받는다. 그러고 보면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번안곡을 직접 불러보려고 했다가 실패하고부터였던가. 참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의미깊은 노래다.


그리고, 이 노래를 다시 떠올려 글을 올리게 만든 아이유의 영어버전 커버.





발음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뭐 다 좋은데, 내 취향에는 조금 안 맞는 것 같다.

대체적인 평가가 좋은 걸 보면, 역시 아직은 내 안에 있는 원곡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듯.


 

북한으로 배송된 후드 집업의 사연

잡설 | 2015. 1. 9. 00:15
Posted by 메가퍼세크

12월 초, 평소처럼 인터넷을 돌다가 어딘가에서 제법 괜찮아 보이는 후드 집업 하나를 발견했다.






(출처: http://www.shermancarter.com/products/two-tone-zipper-cardigan-hooded-double-pockets-long-sleeve-cotton-men-sweatshirt)


어새신 크리드라는 게임 느낌의 자켓이라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괜찮은 후드 집업이 필요했기에 별 생각 없이 확 질러버렸다.


Free Shipping인 대신 배송이 오래 걸린다길래 그냥 잊어버리고 2~3주일 있으면 알아서 오겠거니 했는데, 어째 시킨 지 몇 주일이 지나도 배송확인 이메일 이후에 새로 오는 게 하나도 없어...


뭔가 불안해서 후드 집업을 구입한 홈페이지에 들어가 상품 번호를 쳐넣고 배송 추적을 했더니, 난생 처음 보는 결과가 나왔다.






중국어도 모르고 한자도 젬병이라 대부분의 정보는 쓰잘 데 없었지만, 대문짝만하게 쓰여진 North Korea 와 배송 이력에 쓰여진 조선, KP 까지는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용했던 해외 배송 택배들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KR이라는 코드가 적혀 있었는데, KP는 또 뭘까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 봤다.





...그렇다고 합니다.


내 소중한 택배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소리였다.


세상에 북한에도 택배 수취하는 곳이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에서 시작해서, 내 택배를 가로채 가 버리면 어떡하지? 자본주의 느낌이 충만해서 어차피 못 입고 다니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나름 따뜻해 보이니 원래 용도처럼 집 근처에서 입고 다니려나? 애초에 북한에 내 사이즈에 맞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하는 쓰잘데기 없는 생각까지 도달하고 나니, 슬슬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인터넷을 뒤져 보니 이런 배송 오류 자체는 가끔 일어나는 일인 듯 했다. 외국에서는 딱히 우리 나라에 관심이 없고, 북한이 여러 가지로 국제 사회에서 유명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 오배송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발송지가 우리 나라 코 앞인 중국인 데다 주소도 South Korea로 제대로 입력했는데도 이 따위 상황이란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이 이상한 상황을 하루빨리 해결하고 후드 집업을 받기 위해, 구매처에 문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기업인 거 같지만 어차피 중국어는 알지도 못하니 영어로, 영어도 프리토킹 따위는 꿈도 못 꾸는 저질 중의 저질이니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은 메일 문의로. 어학 실력 때문에 문의 방법이 정해진다는 것도 참 슬픈 일이다.


그 후부터는 안 되는 영어 실력을 쥐어짜낸 고객 센터와의 사투의 연속.





: 12/12일에 너네 사이트에서 후드 재킷을 주문했고, 내 구매 정보는 이렇다.

근데 17track에서 배송 체크해보니까 내 택배가 북한으로 가고 있네?

가능한 빨리 체크하고 조치좀.


센터:? 니 택배는 아직 배달중이고, 정해진 배송 기간이 아직 안 지났음. 그 택배가 다른 나라에 잠시 배송 중 상태로 머물다가, 너네 나라로 갈 수도 있음.


: 아니 시발. 내가 중국 우정 많이 써봤다고.

근데 난 지금까지 배송 과정 중에 "Destination Country" 가 노스 코리아인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배송 중에 잠깐 노스 코리아를 거쳐가는 거면 적어도 저건 싸우스 코리아로 돼 있어야 되는 거 아님?

(첨부 파일로 배송조회 결과를 첨부함)


센터:?? 니 택배는 아직 배달중이고, 2주 안에 배달될 것임. 2주 지나서도 안 도착하면 우리한테 연락해. 그럼 우리가 재배송하거나 환불해줌.


(며칠 후): 12/22일부터 내 택배가 계속 북한에 짱박혀있는 걸로 보이는데.

너네가 전에 지껄인 대로 2주 지났으니 내 택배를 빨리 재발송해줘.


그리고 내가 알아본 바로는 택배 회사가 노스 코리아랑 사우스 코리아를 잘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대충 그런 경우인 거 같으니까 전화 좀 해보는 게 좋을 거 같다.


센터: 그렇군! 우리가 실수로 사우스 코리아 대신 노스 코리아로 보냈구나. 추가 비용 없이 제대로 된 주소로 재배송 해 주겠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당신 주소는 이건데 확인하고 맞으면 답장좀.


: ㅇㅇ 맞음


센터: 당신한테 보낼 택배 이미 새로 싸놨고 배송 번호 받으려고 대기중임. 이거 배송 정보 뜨면 바로 다시 메일 보내겠다.


일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대충 이런 흐름으로, 배송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그저께 아침. 고객 센터는 그럭저럭 대답도 빠르고 나름대로 친절한 것 같은데, 내 괴멸적인 영어 실력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잡아먹은 것 같다. 혹시 나와 비슷한 문제로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있다면, 고객 센터에 문의할 때 "택배 회사가 북한과 남한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는 사실을 고객 센터에 납득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게 좋을 듯.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분단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00히트 달성  (0) 2015.02.09
글쓰기의 어려움  (0) 2015.01.27
커피를 마시다 문득 든 생각.  (0) 2014.11.25
커피와 과자와 차  (0) 2014.11.13
어떤 노래 찾기  (1) 2014.07.19
 

국산 과자들의 끝을 알 수 없는 창렬함에 질려 끝없이 넓은 수입과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지도 어느새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블로그 초기에 올린 커클랜드 감자칩 글의 게시일이 4월 30일이니, 최소한으로만 잡아도 이미 일곱 달이 한참 넘은 셈이다. 그 동안 거쳐온 과자들의 수는 수없이 많지만 아무래도 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진 탓인지, 내가 까다로운 것인지, 제대로 발굴해낸 좋은 과자는 아직 한 손의 손가락으로 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하나인, 저번에 글을 올렸던 본 마망 라즈베리 타르트(링크)를 사러 근처 수입과자 전문점에 갔는데 문득 같은 브랜드(본 마망)의 다른 맛 과자들이 눈에 띄었고, 초콜릿&캬라멜 맛과 레몬맛 중에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너무 달지 않을 것 같은 레몬 맛을 먼저 선택해, 맛보기로 했다. 마침 그 가게에 있던 다른 브랜드의 타르트에도 비슷한 맛일 거 같은 노란색 종류가 있기에, 비교 분석을 위해 같이 구입.


그런 관계로, 이번 포스트에서는 두 개의 과자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절대로 사지 말아야 할 수입과자의 좋은 예로.


먼저 본 마망 레몬 타르트.




<상자 디자인>


상자 디자인은 별 차이없다. 레몬의 색깔이 좀 덜 자극적이긴 한가?

막상 맛을 보고 디자인을 다시 보면, 저 파이 그림도 쓰레기로 보인다



<근접 샷>


이 타르트의 맛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나 먹어 보았을 '사탕'의 맛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레몬 맛의, 너무 딱딱하지 않은, 평범한 사탕.


그 사탕을, 따뜻하고 습기 많은 곳에 세 달 정도 묵힌다.

충분히 말랑말랑하고 약간 상한 것 같은 냄새가 나면, 그걸 눌러서 얇게 편다.

타르트 반죽 위에 바른다.

굽는다.


...;


진짜다. 저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라즈베리 타르트는 새콤달콤한 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면, 이 타르트는 약간의 신 맛과 꽤 강한 단맛이 상당한 끈적함과 레몬인지 유자인지 모를 이상한 향 안에서 합쳐져 최악의 콤비를 이루는 느낌?


라즈베리 타르트에서 타르트의 맛을 감싸주었던 껍질의 존재도 여기에서는 이상한 맛을 증폭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타르트 껍질 자체에 있는 약간의 단맛이 레몬향과 완벽하게 안 맞기도 하고.


<성분표>


성분표도 뭔가 이상하다.

라즈베리 퓨레 4.8%, 라즈베리 퓨레 농축액 3.2%, 천연라즈베리향 1.9%가 들어있었던 라즈베리 파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레몬 관련 성분과 먹는 내내 들어갔는지도 몰랐던 아몬드분말 따위가 표시되어 있다.


어쩌면 이 회사도 레몬맛이 타르트에 잘 안 어울린다는 걸 깨닫고 조금만 넣은 거 같기도 한데, 그럴 거면 출시를 안 하면 된다는 생각을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이걸 구입한 가게에 가 보니, 타르트 3종 중에 라즈베리만 다 팔리고 초콜릿&캬라멜은 반쯤 남았는데 레몬은 처음 들여놓은 그대로더라.


혹시나 해서 타르트를 줘 본 룸메이트도 얼굴을 찌푸리는 걸 보면, 이 개똥같은 맛은 단지 내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은 폴트 살구 타르트


단지 비교분석을 위해 산, 좀더 싼 타르트다.(정확한 가격은 기억 안 남)




<상자 디자인>


보다시피, 종이 케이스가 아니라 빠다코코낫처럼 과자와 밀착해서 감싸는 포장 형태다. 대충 만져만 봐도 안에 과자가 가득 차 있는 걸 알 수 있다.위의 타르트와 같은 프랑스 제품이라 그런지 포장 디자인도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아무래도 동그란 모양이다 보니 포장 안에 빈틈없이 밀착될 수가 없어, 골판지 형태의 트레이와 덮개로 속포장이 되어있다. 속포장이라고 해도 여유공간이 거의 생기지 않는 구조라 과자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건 좋지만, 개별포장이 아니어서 개봉 후 남은 과자를 보관할 때 조금 신경을 써야 하는 불편함은 있다.



과자의 모습은 포장지와 비슷하다.


맛은... 뭐 위에서 언급한 폐기물급의 타르트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다지 좋다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타르트 껍질에 해당하는 부분과 잼의 밸런스가 전혀 안 맞는다는 것. 사진은 위에서 찍어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과자가 생각보다 두꺼운 편인데,  잼이 없는 가장자리 부분의 부피가 너무 큰데다 자체의 맛이 강한 쿠키 재질이라 맛의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다. 한 입 베어물면 입에 들어온 내용물의 반 이상은 쿠키라, 이게 타르트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한 노력인지, 보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타협인지는 몰라도 잼도 상당히 끈적거리고 단단한 편인데, 국내 과자 중에서는 후렌치 파이의 딸기잼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단단하다. 근데 그래 봤자 쿠키가 너무 두꺼워서... 잼의 맛 자체도 그렇게 좋지 않다. 위의 레몬 타르트만큼은 아니지만 그냥 단맛이 다 덮어버린 느낌?


다만 이 제품 자체의 퀄리티는 별로일지라도, 타르트 껍질 부분의 맛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니 안쪽의 잼을 다른 종류로 대체한 제품은 괜찮을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어느 정도 포텐셜은 있는 그런?



<성분표>


살구 코팅이 34%나 되고, 그 중 살구퓨레가 15%라는 건 퓨레의 양은 5% 약간 넘는 정도. 의외로 재료의 품질은 충실하다. 첨가제가 몇 종류 들어 있기는 하지만, 크게 염려되는 양은 아니고 유통기한도 포장이 단순한 것치곤 괜찮은 편이다.


그래도 이 제품 살구맛은 사지 말자... 다른 걸 사보는 건 몰라도.

 

블로그 이미지

메가퍼세크

왠지 모르게 말하고 싶어진 것들을 쌓아두는 곳.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8)
자아성찰 (13)
취미 (31)
경험 (4)
잡설 (14)
보관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