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입고 총쏘는 액션과 B급스러운 절단 연출 등은 이퀄리브리엄이 생각나는데, 거기에서 정장간지와 약간의 첨단장비를 더한 느낌?
스토리 자체도 뻔하디 뻔한 액션물의 과대망상증 최종보스, 무력파 중간보스, 찐따였다가 어떤 계기로 강해져서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 강력하고 현명한 멘토라는 아주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프레임을 따왔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같은 요리도 다른 사람이 만들면 맛이 달라지듯이, 그 프레임에 씌워진 살들은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영국식 정통 정장을 입고 첨단 장비를 곳곳에 숨긴 채 절제된 액션으로 적을 해치우는 등장인물들.
심지어 그들이 원탁의 기사들의 이름을 따온, 오래전부터 내려온 소수정예 첩보원이라니.
'신사', '기사', '스파이', '정장', '권총', '격투'
대부분의 사람들이 멋지다고 느끼는 '멋의 물감' 들을 잘 선별하고, 그들을 전형적인 스토리의 프레임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시켜 하나의 완성된 멋의 그림을 그렸다는 느낌이다.
물론 완성도나 영화의 전체적인 짜임새에서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왜 의족을 달고 있는지, 어떻게 격투를 그리도 잘 하는지 끝까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중간보스라던가. 주인공과의 경합 끝에 랜슬롯 자리를 차지하고도 인공위성 격추하고 전화 한 통 거는 단조로운 역할만 맡은 안습한 여자 기사. 그 어떤 의심도 없이 공짜 유심을 받아 자기 스마트폰에 꽂는 전 세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런 자잘한 단점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이 영화가 뿜어낸 멋과 임팩트가 충분했기 때문에.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액션과 멋이었고, 스토리와 설정, 완성도와 같은 요소들은 모두 그것을 위한 부가적인 도구로만 작용했다.(그리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폭죽 장면과 난데없는 스칸디나비아 공주의 섹드립. 액션과 멋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했던 약간의 시리어스함을 중화시키고, 아직도 이 영화의 성격에 대해 긴가민가했던 관객들에게 확실한 쐐기를 박는 좋은 도구였다. 맛을 살리려다 보니 너무 느끼해진 고기 요리에 뿌리는 몇 방울의 식초라고 할까?
이런 류의 영화를 원체 좋아하기도 했지만, 멋을 내는 데 쓴 재료들 자체도 개인적인 취향에 딱 들어맞아서 전체적인 감상은 퍼펙트. 속편이 나온다고 해도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면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물론 나만 느끼는 감상은 아니겠지만, 머릿속에 콜린 퍼스의 간지나는 정장 차림은 당분간 클래식 정장에 대한 지름신을 일으키게 될 것 같다.
표 예매가 열리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공연날이라니. 지갑에 넣어둔 표를 볼 때마다 느꼈던 설렘이,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기대감으로 바뀌어 공연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커져만 갔다.
기대에 부푼 나머지 너무 일찍 도착해 버린 공연 장소 근처에서 레몬티 한 잔을 마시고, 공연 십몇 분 전쯤 입장해 자리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시작. 핸드폰 전원을 꺼서 지갑과 함께 가방 속에 깊숙히 넣고, 관람하기 가장 편한 자세를 잡고 앉은 지 몇 분 후. 커튼이 열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루시아의 인상은 예상과는 많이 다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예상 그대로였다고 할까. 감성적이고 표현력 있는 가사와 곡들 때문에 조용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밝고 활발하며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
콘서트 처음에는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세 번째 곡이 끝나자 무대 뒤에 고이 벗어놓고, 무대 전체를 열심히 잰걸음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격정적인 몸짓을 선보이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곡 자체도 앨범에 수록된 것과는 많이 다르고, 라이브 버전으로 어레인지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던 기억이 난다.
조용히 서서 서정적인 무대를 펼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상당히 좋은 방향으로 빗나갔다고 해야 하나. 관객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다는 의지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콘서트 중간중간의 멘트에서도 관객에 대한 감사와 곡에 대한 설명, 자신이 곡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마지막 날 공연에 대한 보너스라며 미발표곡도 하나 공개했다.
(근데 다른 후기들 보니까 마지막 날에만 공개했다는 건 순 뻥이었음)
통기타 둘과 베이스, 드럼, 현악 4중주로 이루어진 밴드의 하모니도 좋았고, 특히 'I can't fly' 나 '데미안' 같은 노래를 할 때 바이올린이 부각되는 부분이 상당히 멋있었던 기억이 난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와 감성 가득찬 보컬, 시적인 가사는 곡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감상한다' 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고, 눈을 감고 음의 조화와 굴곡, 거기에 얹어지는 가사를 따라가다 보니 정말로 노래를 통해 가수가 표현하고 싶은 감성을 직접 전달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는지, 슬픈 노래를 부를 때는 특히 감성적인 여자분들 몇몇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공연 전체적인 준비, 가수의 자세, 퍼포먼스와 사운드 등.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정성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강한 공연이었고, 공연장을 나올 때는 그 준비만큼 많은 것을 실제로 얻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도 루시아의 공연이 있다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관람하게 될 것 같다.
마무리는, 루시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발견한 공연 기념 케익 사진.
오늘 공연에서는 검은 드레스를 입었지만, 맨발도 그렇고 특유의 느낌이 참 잘 표현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