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래 찾기

잡설 | 2014. 7. 19. 19:52
Posted by 메가퍼세크

어렸을 때, RPG2000으로 만들어진 어떤 게임의 BGM이 너무 좋았다.

게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주인공이 피리를 불어 주는 장면에서 그 BGM이 나왔는데, 그 BGM 하나를 들으려고 그 장면 바로 앞에서 세이브를 해 놓고 수십 번씩 로드해서 듣다가, 나중에는 검색을 통해 그 게임을 뜯어서 음악을 추출해낸 후 또 죽어라고 들었었다.(게임은 그냥 그럭저럭이었던 거 같다)


어제 저녁에 오랜만에 다시 듣고 싶어 그 음악을 검색해보려 했지만, 간단한 멜로디 라인과 RPG2000 게임이라는 힌트만 가지고 노래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대략 한 시간 정도 헛짓을 하다 직접 음을 찍어보기로 결심했다.


눈꼽만큼 다룰 줄 아는 기타프로를 잡고 한 시간 정도 끙끙대면서 기억에 있던 멜로디라인을 구현해냈고, 악기는 오카리나로 설정해 유튜브에 업로드.(그래봐야 조악한 미디음이긴 하지만)


자주 가던 게임 사이트 게시판에 동영상 링크를 걸어 질문글을 올리자, 답은 3분만에 나왔다.

영웅전설 5-바다의 함가 오프닝. 당시에도 매우 호평받던 노래라고 한다.

답변하신 분이 걸어 준 링크로 들어가니 확실히 맞는 멜로디였지만, 기억 속에 있던 것보다는 약간 다른 느낌.


그 미묘한 느낌을 설명하려고 댓글 몇 개를 할애하다가 그냥 포기했는데, 오늘 그 사이트에 다시 접속해 보니 그 밑 댓글로 링크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3분 13초부터)


링크에 들어가 보니 정확히 내가 들었던 그 음악이었다. 답변해 주신 분은 그 게임의 팬으로, 내 글을 보고 답변해 주기 위해 가입했다면서 링크 아래에 곡과 게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주셨다.


역시 명작에 대한 추억은 어디 가지 않는구나. 이런 멋진 멜로디를 만들어 낸 팔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댓글들을 보면 원래 BGM이 유명한 회사라 음반을 사면 게임이 덤으로 따라온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게다가 이 게임은 그 중에서도 레전드로, 제목부터가 '바다의 함가' 로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그런지 한층 더 퀄리티가 미쳤다고 한다. 각 챕터의 이름도 전주곡, 광상곡, 행진곡 등 악곡의 형식을 따 붙였을 정도.


수십 번쯤 무한반복으로 곡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문용 오카리나 가격을 검색하고 있었지만, 불 곳도 없고 불 시간도 없으며 가격도 비싸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순식간에 때려쳤다. 나중에 돈 왕창 벌면 방음 되는 방 하나 만들어서 악기 미친 듯이 다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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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레빗 3집, 투어리스트 2집 지름.

잡설 | 2014. 6. 26. 01:24
Posted by 메가퍼세크

오늘 종로 3가에서 일이 있어서, 끝나고 잠깐 짬을 내어 지하철 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반디 앤 루니스에 음반을 사러 갔다. 목표는 얼마 전 발매된 제이레빗 3집 앨범.


지금까지 음반이란 걸 한 번도 사 본 적이  없어서, 그리 넓지도 않은 음반 매장을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며 제이레빗 앨범을 찾기를 몇 분. 어쩐지 상당히 이질적인 앨범을 하나 발견했다.



가로와 세로의 폭부터 보통의 앨범과는 궤를 달리하고, 커버 재질도 앨범이라기보단 하드커버 책에 가까웠으며, 앨범 위에 묶인 베이지색 고무끈이 인상적이었던.


다른 앨범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비주얼을 자랑했던 이 앨범은, 딱 하나 남아있었다.

평소 이런 물건의 비주얼에 그렇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데, 하필이면 컨셉이 '책'


그것도 '소책자'


그것도 '하드커버 소책자'


내 취향의 정중앙에 돌직구를 꽂아넣는 심각하게 멋진 컨셉. 게다가 그 컨셉과 무한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파란색과 갈색 투 톤의 예술적인 자켓. 이 반칙급의 디자인을 갖춘 앨범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자동적으로 내 눈을 임의 해제 불가능한 오토포커스 모드로 전환시켰다.


아니 대체 어떤 그룹이 이런 기특한 앨범을 냈단 말인가 하는 감개무량함과 지름신께서 내 통장을 거덜내기 위해 이번에는 이런 형태로 내려오신 것인가 하는 착잡함이 어우러지며 앨범을 집었고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룹의 앨범을 사야 하는가 사지 말아야 하는 논제에 대해 무한한 내적 갈등을 일으키며 앨범의 뒷면을 보았다.




뒷면을 펼친 가장 주된 이유는 앨범의 트랙 제목들. "벚꽃 엔딩" 이라는 곡명을 보고 데스메탈을 떠올리지 않고, "착한 늑대와 나쁜 돼지새끼 3마리" 라는 곡명을 보고 잔잔한 발라드를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무릇 노래의 제목이라는 것은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가사를 함축하는 것. 전혀 모르는 그룹 앨범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는, 트랙 제목들을 보고 유추하는 게 그나마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뭐 그런 관계로, 트랙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1번 곡의 제목은 Arrival. 아래로 쭉 훑어보면 14번 트랙의 Departure과 대칭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발과 도착. 왜 순서가 바뀌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떤 줄거리를 이루는 앨범인 걸까? 15번 트랙의 in-flight를 보면, 비행기를 타고 출발과 도착을 한 모양이다. 어쩌면 도착해서 뭔가를 하고 다시 출발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나머지 곡들을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주제는 장소. 6,7,12,13번 트랙의 "요코하마에서", "월화수목원", "겨울 산장", "바다" 를 보면 수목원을 빼고는 여행지라는 분위기가 짙게 풍긴다. 자켓에 쓰여 있던 그룹 이름인 "투어리스트" 와 연계해 생각하면, 역시 여행을 컨셉으로 한 앨범이겠지. 바다와 겨울 산장이라는 이름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반 년 이상 장기간의 여행인 것 같다.


5번과 9번 트랙의 "설렘주의보", "나란한 걸음" 은 그냥 봐도 달달한 분위기의 연애이야기 곡.


여행이라는 컨셉과 다채로운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제목들은 곡의 다양성을, 제목부터 달달해 보이는 제목들은 그 다양함의 중심이 잔잔한 쪽으로 쏠려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기에, 대략 내 취향에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질렀다.


뭐, 사실은 앨범의 비주얼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에 곡이 완전히 똥만 들어있어도 사겠다는 생각이 잠시간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앨범에 신경을 쓰는 가수들이라면 그 섬세함으로 곡도 잘 만들었을 것이라는 믿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지름을 마친 후 원래 사려고 했던 제이레빗 3집도 같이 사들고, 집으로 와서 개봉.




<커버>

<뒷면>

<앨범 내부>

제이레빗 앨범의 느낌은 미니멀리즘. 커버와 뒷면, 앨범 내부 모두 단순하고 깔끔했다. 저 조각보같은 무늬가 뭔진 모르겠는데, CD에 새겨져 있는 모습은 멋있는 것 같다. 종이 틈에 끼어있는 가사집도, 깔끔한 디자인과 그림들로 딱 가사와 에필로그만 써서 6장 정도의 얇은 두께였다.



<가사집의 한 페이지>


가사집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하지만 분위기는 비슷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굳이 이 사진을 올린 건 제일 맘에 들어서... 가사들의 분위기는 앨범의 제목과 같이, 인생에 지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주가 되고 있었다. 확실히 제이레빗의 밝은 목소리에 참 잘 어울린다.




그리고 투어리스트 앨범 개봉.



<앨범의 내용물들>


예상대로, 애네 앨범은 음반보다 부록들의 두께가 더 두꺼웠다...


왼쪽의 책처럼 생긴 건 가사집. 여행 컨셉이 아니라 진짜로 여행을 다니면서 곡을 만들었는지 여러 장소들의 다채로운 사진과 매번 다른 포맷의 가사들, 여행에서의 팁 페이지까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저 거대한 책자에 에필로그가 한 페이지, 스폐셜 땡스가 두 페이지. 마지막 장에는 여행지들의 경로까지 적혀 있어 볼륨이 장난이 아니었다. 종이 재질도 튼튼한 걸 썼고.


위쪽에 보이는 건 미니 사이즈 세계지도;; 와 스티커(여행가방에 붙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에 보이는 분홍색 태그(화물에 부착하는 표지라고 한다. 처음 알았다)까지 여행이라는 테마에 걸맞는 물건들이 참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고무 끈으로 마감해야 될 만 하지...


인터넷을 조금 뒤져보니 이 앨범은 제작비가 너무 들어서 많은 수량을 못 찍고 한정판매하기로 했다고... 한 개만 남아 있었던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앨범의 내용물, 곡들은 어떤가 하면, 앨범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앨범에서 풍기는 세심한 정성들이 녹아 있는 부드러운 곡들이 주가 되고, 예상대로 조금 활발한 분위기의 곡들도 있지만 너무 시끄럽지 않고 듣기 좋은 정도인 것 같다. 특이한 맛도 있고. 보컬도 남녀 보컬 두 명인데 둘 다 잔잔하고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타입이다.


항상 내 음악 취향이 그리 넓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들어 보지도 않고 (음악 외적 이유로) 홧김에 질러버린 음반이 이 정도로 마음에 들다니. 참 신기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뭔가를 지를 때마다 항상 이 정도 만족도라면 정말 좋을 텐데.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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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보관소 | 2014. 6. 17. 21:15
Posted by 메가퍼세크

한 달쯤 전, 오랫동안 미뤄졌던 조혈모 세포 기증을 끝냈다.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해보고, 환자 취급도 받아보고, 휠체어도 타보고... 당분간은 겪어보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참 많이 겪었기에, 여기에 간략하게나마 그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작년 11월,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다.

내가 2010년 6월에 위탁했던 조혈모세포 샘플과 유전자 형이 일치하는 혈액암 환자가 있으니 확인 후 연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소릴까 하고 구글에 '조혈모세포 기증'을 검색해 보니, 골수 쪽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골수이식' 의 일종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백혈병 등 혈액암 계열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시술되는데, 환자의 혈액을 만드는 세포(조혈모세포)들을 방사선 등으로 모두 전멸시키고 건강한 사람의 것을 받아 대체하는 시술이라고.


일단은 장기기증의 일종인지라 몇만 분의 1의 확률로 유전자형이 맞는 사람끼리만 기증이 가능한데, 기증 자체는 조혈모세포를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주사를 몇 방 맞은 후 마취도 하지 않고 피를 뽑아서 수혈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받는 쪽에서 어떤 힘든 과정들을 거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는 쪽은 그냥 주사 몇 대 맞고 피 뽑으면 끝.


그런 내용을 보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무언가 '균형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기증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작 몸에 주삿바늘 몇 번 들락날락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그런 간단한 일에 다른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다니.


내가 만약 환자라면, 나에게 조혈모 세포를 기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고작 주사 몇 대, 입원 며칠이 귀찮아서 날 죽게 내버려둔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밀지 않을까. 결국 기증을 안하면 환자 한 명은 죽는 건데, 그건 사실상 내가 직접 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증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극도로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기증을 허락받고, 센터에 연락해 이미 인터넷에서 다 본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증 의사를 밝히기까지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반대를 엄청 하셨는데, 어찌 어찌 설득에 성공했다)


며칠 후에 문자로 발송된 기증 일정은 간단했다, 우선 조혈모 기증 센터를 방문해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간단한 검사를 한 후 상세한 일정을 확정한다. 그 후 기증 한 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고, 기증 삼 일 전부터 매일 병원에 찾아가 주사 몇 방씩을 맞고, 2~3일 약식으로 입원해서 피 뽑고 끝. 다만 기증 날짜는 환자 측 사정에 의해 연기되거나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 첫 순서가 시작된 건 기증 의사를 밝힌 지 대충 2주일 정도 지난 후. 구로 쪽에 위치한 조혈모 기증 센터에 방문해 약간 사촌 누나 같은 느낌이 났던 전담 코디(기증 담당자)님과 인사를 하고,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증 동의서를 쓴 후 간단한 유전자 검사를 했다.


(동의서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게, 환자는 기증이 확정되면 한 달 전부터 '전처치' 라는 과정을 통해 고농도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면역 체계를 전부 파괴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해진 기간에 기증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게 되기에 일정을 철저하게 잡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여자가 기증을 취소해 환자가 사망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런데 이제와서 유전자 검사라니. 이미 유전자 일치하는 거 확인하고 연락 준 거 아니었냐고 물어보니 내가 2010년에 맡겼던 혈액 샘플로는 조혈모세포 기증에 필요한 유전자형의 일부만 알아내 저장해 놓고, 그 일부가 일치하는 사람은 나머지 유전자형도 일치할 가능성이 80% 이상이기 때문에 연락 후 추가로 혈액을 뽑아 검사를 하는 거라고 했다.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쓰는 이유는 결국 그 추가 검사의 비용 문제. 이것도 예산 가지고 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관계로 간단히 채혈을 하는데 팔에 고무줄을 묶기 전부터 시퍼렇게 드러난 굵은 정맥, 주삿바늘을 꽂자마자 퓩 피가 나올 정도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고 코디님이 참 놀랐다. 이렇게 혈관이 튼튼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팔 쪽 혈관이 약해서 가슴에 꽂는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 혈관이면 그럴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태어나서 혈관 두께로 칭찬을 받아 본 건 처음이라서 좀 얼떨떨했는데, 그래도 이상한 데다 바늘을 꽂을 확률은 적어진다니 조금 안심했다.

 

그렇게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유전자형이 일치한다는 통보가 왔고, 두 달쯤 후에는 기증 일정이 나왔다. 서울대병원에서 2월 말 쯤에 건강검진을 하고 3월 말에 기증하는 계획. 뭐 그런가보다 하고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


그런데 건강검진 일주일 전 쯤에 연락이 와서 환자 사정으로 연기가 되더니, 병원과의 일정 조정이나 협회 측 사정으로 2~3번 더 바뀌고, 내 쪽에서 면접 일정 때문에 또 바꾸고. 자잘한 변경까지 합하면 약 5번 정도나 일정이 미뤄졌다.(코디님이 담당한 모든 기증 중 제일 많이 미뤄졌다고 했다)


심지어는 환자 측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아예 기증이 취소되었다는 말까지 들었다가, 한 일 주일 후에 환자 측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진행을 원한다고 다시 재개하는 일까지... 결론적으로 처음 연락을 받은 때부터 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기증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증 한 달 전, 공여자가 기증에 적합한 상태인지를 판별하는 건강 검진을 하고.

(그 즈음에 생활 리듬이 워낙 막장이라, 전날 밤에 잠을 못 자고 가서 혈압이라도 높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기증 일 주일 전부터 혈액 성분 관리를 위해 술과 기름진 음식을 자제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음식의 대부분은 지방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기증 3일 전부터 매일 병원에 찾아가, 그라신이라는 주사를 하루 3방씩 맞았다.


어깨에 맞는 피하주사인데, 골수 안에 들어있는 조혈모세포의 분열을 촉진? 아니면 그런 비슷한 작용을 해서 내 피 속에 조혈모세포의 농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결국 부스터라는 건데, 이 주사는 일생에 한 차례밖에 듣지 않아서 만약 다음부터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일이 생기면 얄짤없이 골수에서 직접 기증해야 한다고 했다. 뭐 면역이라도 생기나?


근데 정작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일반적으로 맞는 '근육주사' 가 아닌, '피하주사'라는 좀 특수한 종류의 주사라서 좀.. 많이 아팠다.


그래봤자 주산데 별 거 있겠어 하고 그냥 평소대로 맞았는데, 바늘이 피부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다른 주사와 비슷했지만 주사기를 누르는 순간부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특이한 고통이 엄습했다. 뭐 엄청나게 아프진 않았는데 맞은 쪽이 좀 뻐근하고, 차갑고, 따갑고, 주사바늘로부터 뭔가가 몸 속으로 퍼져 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그런 감각? 그래도 못 참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라서 어찌저찌 왼쪽에 2방, 오른쪽에 1방을 맞고, 알콜솜으로 피를 닦은 후 나왔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똑같이 찾아가서 똑같은 주사를 맞았는데, 이상하게도 둘째 날에는 거의 소리지를 정도로 아팠지만 셋째 날에는 일반 주사보다도 안 아프고 주사 자국조차도 금방 아물었다. 아마 간호사의 실력이 문제였던 건가?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세번째 간호사 같은 분한테만 맞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다만 주사의 통증과는 별개로, 그라신이라는 약물 자체의 사소한 부작용은 좀 있었다. 주로 관절 부위가 많이 쑤시고 심한 사람은 두통을 겪기도 한다는데 내가 겪은 건 오직 요통뿐. 평소에 자세가 별로 안 좋은 것도 있어서인지 하루 종일 앉아도 서도 누워도 허리가 마구 쑤셔댔다. 그래도 뭐 정말로 못 참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어차피 집에서 하루종일 책이나 붙잡고 있던 때라 사실 큰 불편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기증 절차가 시작되었다. 총 기증 일자는 3일간. 원래 기증 절차 자체는 몇 시간 정도면 끝나지만, 기증자 쪽과 받는 쪽의 일정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되는 섬세한 작업이라서 총 3일 동안 입원시킨다고 한다. 첫 날은 그냥 간단한 검사, 둘째 날에 기증, 그 후 추출된 세포량을 측정하고 충분하면 3일째 아침에 퇴원, 모자라면 추가 기증을 한 후 조금 더 늦은 시간에 퇴원. 딱 봐도 꽤 지루한 시간일 것 같아서, 집에 있던 책 한두 권과 친구에게 빌린 노트북을 챙겨갔다.


첫 날은 별 거 없었다. 오후 4시쯤 병원에 도착해 간단한 혈액검사를 하고, 입원 절차를 마친 후 병실로 입실. 주어진 병실은 1인실로, 냉장고, 옷장, 화장실, 책상, 침상이 있어 거의 기숙사 1인실 같은 느낌이었다. 책상 위에는 세면도구 세트와 수건, 과일, 과자까지. 어, 과자?


"기증 전까지 기름진 거 먹으면 안 된다면서 이런 과자 먹어도 돼요?"

"?? 삼겹살처럼 너무 기름진 거만 안 먹으면 된다고 헀는데요?"


...역시 사람 말은 제대로 들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기증 전에 '기증 1주일 전부터 술과 기름진 음식을 먹지 마세요' 라고 기억헀는데, 사실은 '기름진 음식을 너무 과도하게 먹지는 마세요, 술은 ㄴㄴ' 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 작은 착각의 결과, 기증 일 주일 전의 최후의 만찬 후부터 모든 식단에서 고기나 치즈를 극도로 배제하고, 야식이나 외식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모든 음식의 영양 성분표를 보고 지방량을 확인해 참 크래커 같은 맛대가리 없는 과자나 간식으로 조금씩 집어먹으며, 영화를 보러 가서도 팝콘 따위 못 먹고 롯데리아를 가서도 영양 성분표를 뚫어지게 쳐다본 끝에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새우버거와 그린 샐러드를 먹으며 쓸데없이 건강한 식단을 일 주일 동안 지속했던 내 노력은... 결국 모두 사서 고생이었던 셈이 되었다. 심지어 3일 동안 먹었던 병원밥도 하나같이 더럽게 맛없어서, 그 동안의 뻘짓을 3일 내내 후회했다. 


아무튼 병실에 입실해 병원복을 수령해 입고 하릴없이 누워 있다가, 그나마 양호했던 첫 날의 병원밥을 먹고(3일 중 유일하게 다 먹었다) 몇몇 자잘한 검사를 하고 그라신 맞고 잔 게 그날 한 일의 전부.


검사라고 해도 들어온 사람들은 학생 간호사라고 해서 실습온 간호대학 학생들? 쯤인 거 같았는데, 역시 진짜 간호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혈압과 맥박만 재고 끝.


다만 혈압은 그냥 보통의 혈압계로 쟀지만, 맥박은 의외로 손목을 짚고 시계를 보며 일 분 간 세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재서 조금 웃겼고, 간호사 분이 좀... 많이 예쁘셔서 맥박 안 빨라지려고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검사가 끝나고서는 자유시간, 평소대로 한 시 쯤에 자려고 했지만 다음 날 기증하려면 많이 빨리 일어나야 된다길래 그냥 열한 시쯤에 잤다. 가져간 책이나 영화는 볼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이틀째. 아침 여섯시쯤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혈액검사를 받고 잠깐 다시 자다가, 씻고 나와 밥을 먹고 침대에 앉아 있으니 남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무진장 두꺼운  '헌혈 바늘' 을 가지고.



<헌혈바늘>


...기억도 나지 않는 고등학교 때 단체 헌혈 이후로는 헌혈이라는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관계로, 저런 거대한 바늘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근데 저런 굵직한 걸 두 개나, 내 양 팔의 제일 튼실한 정맥 속에 꽂아야 된다고 한다...;(한 팔에 하나씩) 지금 생각해 보면 기증 절차 중 가장 공포스럽고 아팠을 때가 저 때였던 거 같다. 그것도 가장 어려운 주사 중의 하나라 보통 그 병동 최고의 숙련된 간호사가 하고, 그래도 잘못되면 여러 번 찌르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히 내 팔의 정맥은 간호사들과 코디님이 볼 때마다 칭찬할 정도로, 팔 위에 고무줄을 묶지 않아도 자동으로 두드러지는 훌륭한 벌크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 방에 푸욱 하고 성공. 간호사는 이 정도면 초짜 간호사한테 교보재로 써도 될 정도라고 농을 던졌다.


그렇게 내 혈관에 길쭉한 플라스틱 바늘이 들어와 있는 상태로, 뭔가 찝찝한 기분과 불안감을 느끼며(사실 아픔은 거의 없었지만) 기증실로 내려갈 때까지 팔을 쭉 펴고 병실 침대에 누워 있기를 한 십 분, 코디님이 들어오셨다.


이제 바로 내려가서 기증하겠구나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아직 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기증 시간은 한시간 정도 뒤지만 간호사들이 여러 일로 바빠서 바늘만 미리 꽂아놓은 거라고 했다. "아니 그럼 한 시간 동안 이 상태로 누워있으라구요?" "ㅇㅇ"


...별 수 있나, 이미 꽂은 거 뺄 수도 없고. 플라스틱 바늘이라 팔을 조금은 구부려도 된다고 했지만 구부릴 때마다 혈관 벽에 바늘이 닿는 감촉이 기분 나빠서, 그냥 쭈욱 편 채로 코디님이랑 이야기나 하면서 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한 9시 반 쯤 기증실에서 연락이 와서 바로 내려가 입실. 팔을 쭈욱 편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나고 짐을 챙기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기증실은 침대 두 개와 큼직한 기계 하나가 있는  작은 방. 기증을 담당하실 의사는 중년의 여의사님으로, 대충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하셨다. 역시 팔을 쭉 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 위에 눕자, 심전도 전극을 가슴 위에 붙이고 손가락에 산소 포화도 측정기? 라는 집게를 물리고, 내 팔에 꽂힌 바늘 두 개에 기계에서 뽑은 관을 연결했다. 하나는 Input, 하나는 Output.


그 기계는 아마 신장 투석에 쓰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내 오른팔에서 피를 뽑아 조혈모세포를 추출하고 나머지 성분을 왼팔로 다시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조혈모세포의 양은 대략 혈액 중 1/60 정도로, 필요한 양을 대충 계산해서 적당량 뽑는다. 내 경우에는 받는 쪽이 체중이 가벼운 여성분이고 공여자인 내가 체격이 큰 편이라, 필요한 양도 적고 많이 뽑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들었다.


오른팔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 지 한 2~3분 후 왼팔로 들어오는 차가운 느낌. 뭐 이미 꽂아 놓은 혈관이라 아프지도 않고 기증 자체는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진짜 문제는 엄청나게 긴 기증 시간. 보통 사람의 경우 15000cc정도를 뽑는다는데, 내 경우 체격도 있고 추가 기증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18000cc정도를 뽑기로 했다. 대충 내 몸에 있는 피의 3배 정도를 돌린다는 이야긴데,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경우 분당 60~70cc를 뽑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내 경우 잘 뽑혀서 처음부터 70cc로 뽑다가 나중엔 75로 뽑았다. 그래도 워낙 뽑는 양이 많다 보니 네 시간 남짓 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물론 팔에는 바늘이 꽂혀 있으니 거의 움직일 수도 없고, 자다가 뒤척거려서 바늘이 뽑히면 난리나니 잠도 가능하면 안 자는 게 좋고, 가끔 피가 뽑히다 말면 손도 쥐었다 펴 보고 자세도 바꿔봐야 하는 귀찮음까지... 심지어 중간에 화장실도 못 가서 만일의 상황에는 도구 (?) 를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피가 덜 나오기 시작하면 오른쪽 팔에 살짝 진동이 오면서 나가는 쪽에 아주 살짝 공기방울 같은 게 생기는데, 그게 기계에 도달하면 삐- 소리가 울렸다. 그러면 의사선생님이 와서 자세를 바꿔주고 계속. 묘하게도 잠깐 딴 거 하러 가시면 꼭 울리더라. 


팔을 뒤척이면 경보가 자주 울려서 웬만하면 그냥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는데, 완전히 똑같은 자세인데도 30분쯤 그대로 있으니 다시 울리는 경보. 그럼 침대의 높이를 조절하거나, 팔 위쪽에 받침대를 대거나 해서 다시 혈류량을 늘렸다. 뭐 처음에는 전혀 안 아팠지만 두세 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뭔가가 뽑혀 나가는 느낌이 살짝 강해지면서 약간의 통증도 있었다. 들어오는 쪽은 뭘 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 긴 기증 시간의 대부분은 통증이고 뭐고 없었고 내 혈류가 좋은지 피도 쭉쭉 잘 뽑혀져 나왔던 관계로, 지루함이 극에 달해 시간을 때우는 데 주력해야 했다. 가장 많이 했던 건 잡담과 음악 감상. 그 잡담의 반 이상은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절반은 코디님과 이야기했다.


코디님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사촌 누나 같은 분이었고, 의사선생님은 엄마 친구분 같은 느낌? 우연히도 나와 코디님, 의사선생님 모두 광주 사람이었고, 그래서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의사선생님은 어머니 연배답게 결혼 생활이나 고부갈등 같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특히 아들로서 고부갈등을 어떻게 중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신 것들이 참 많았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와 아내가 싸우면 아내 편을 들어 주어야 한다던가? 또 애 낳을 때의 고통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셨는데, 입담이 좋으셔서 참 시간이 잘 갔다. 


이번 기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특히 기억나는 건 아무래도 기증받는 게 '피를 만드는' 세포이다 보니 기증자와 환자의 혈액형이 다를 경우 환자는 점점 기증자의 혈액형으로 바뀌어 간다고 하셨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거부반응 때문에 약 같은 걸 좀 써야 되고 귀찮은데, 내 경우에는 환자와 혈액형도 똑같아서 그 부분도 엄청 편하다고 했다.


코디님과 한 잡담은 주로 음악이나 게임, 직업에 대한 이야기들. 내가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한참 심규선 노래를 좋아할 때라, 목록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만 무한으로 들었다) 음악 취향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어 좋은 가수들을 추천받았고, 코디님은 자기 직업이 매일 출근하면서 뭔가에 얽매이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사람들만 관리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좋다던가, 게임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고 하시면서 프로게이머들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만약 남자친구나 남편이 프로게이머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정말 싫을 거 같다. 차라리 돈 적당히 버는 직장인이 낫다.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하셨다.


그런 잡다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기증이 어느 새 4시간째에 접어들고, 기증의 대부분이 끝났을 무렵. 아무리 계속 자세를 바꿨다고 해도, 하도 오래 누워 있었고 오래 뽑아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고 오른팔에 빨려 나가는 느낌이 강해지며 점점 경보가 자주 울리기 시작했다. 자세를 바꿔도 별 소용이 없어 코디님이 어깨 쪽을 주물러 주셨다. 의외로 악력이 장난이 아니셨고 효과가 있어서 경보가 덜 울리기 시작했지만, 어째 피를 펌프질해가는 거 같은 느낌과 함께 어깨 쪽이 살짝 아프기 시작했다. 이 때가 한 15000cc~16000cc 무렵? 


역시 18000까지 뽑는 건 역시 무리일 거 같아 17000cc정도에서 멈추기로 하고, 어떻게든 끝날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갔다. 사실 2차 기증 하기 싫어서 18000까지 뽑고 싶었지만, 1000cc정도는 별 차이 안 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그냥 17000까지만 했다. 코디님의 끝을 알 수 없는 체력이 신기했는데, 대충 삼십 분 가량의 시간 동안 강력한 악력으로 팔과 어깨를 주무르시면서 거의 끝나 갈 때까지 티끌만큼도 약해짐이 없었다. 마지막 몇 분 정도는 여러 사정으로 주무르는 걸 멈췄는데, 의외로 아픈 건 안 주무를 때가 더 심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코디님의 체력이 막바지에 상당한 도움이 됐던 거 같다.


그렇게 1차 기증이 모두 끝난 건 두 시 경. 원래대로는 양쪽 팔에 꽂힌 바늘을 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2차 기증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지만, 양 팔에 바늘을 꽂은 채로 있는 게 너무 성가셔서 의사 선생님과 딜을 해서 오른쪽 팔의 바늘은 뽑아 버렸다. 2차 기증이 결정되면 다시 꽂아야 한다지만 그 쯤이야 뭐. 당장의 안식이 더 중요했다.


침대에 오를 때처럼 팔을 쭉 펴고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딛고 서니, 일시적으로 느껴지는 약간의 어지럼증. 기증 과정 중 투입되는 혈액 응고 방지제 때문에 칼슘이 조금 모자라져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뭐 그래도 그다지 신경쓸 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병원 분이 휠체어를 들고 와 병실까지 이송해 주셨다. 난생 처음 휠체어를 타 본 것도 그렇고, 환자복 입고 휠체어까지 타고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가니(팔에 바늘도 하나 꽂혀있고) 진짜 환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했다.(실제로 그 순간은 어엿한 환자였지만)


그래도 몸은 괜찮고 오른팔 바늘도 뽑았으니 좀 돌아다녀볼까 생각했는데 방에 와서 침대에 앉으니 갑자기 급피곤. 아무래도 네 시간 반이나 걸린 기증의 여파가 있기는 했나 보다. 그냥 왼팔을 최대한 펴고 누워서 그대로 폭풍수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대략 여섯 시 쯤.


잠깐 집에 전화하고 역시 맛대가리 없는 병원밥을 다 먹었을 즈음, 코디님한테 걸려 온 전화 한 통. 1차 때 뽑은 조혈모세포량을 검사해 보니 충분해서, 2차 기증을 안 해도 될 거 같다는 소식이었다.


발걸음도 가볍게 간호사분들께 가 바늘을 뽑아달라고 부탁하고, 잠시 뒤 방문한 간호사분(이분도 좀 예쁘셨다.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보였나?)이 왼쪽 팔 바늘을 뽑아주고 나니 진짜로 날아갈 거 같은 기분? 바늘 뽑힌 부분에 아주 살짝 느낌이 남아있는 거 외엔 온 몸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뭐 따지고 보면 변했던 것도 별로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검사 한두 번은 남았고 퇴원은 내일이라는 슬픈 진실. 밖에라도 나가볼까 했지만 오늘까지는 병원 안에 있어야 된다는 코디님 말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래도 나가려는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병원복 입고 나가기는 쪽팔리고 갈아입기는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있었다.


그래도 고작 저녁 여섯 시부터 아무 것도 안 하고 방 안에 있기는 영 심심해 어디 갈까 생각하다가, 빌려왔던 친구의 노트북을 들고 병원 안에 있던 스타벅스로 갔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한 후 노트북을 켜고 하릴없이 웹서핑을 하다가, 아무래도 내 인생에서 한 번 뿐일 이번 일을 그냥 넘기기에는 아쉽다 싶어 메모장을 켜고 입원 중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 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시간 구분 없이 기억나는 대로 한 줄씩 쭉쭉 써내려가자, 순식간에 수십 줄이 꽉 차고 시간도 쭉쭉 갔다. 물론 지금 쓰는 이 글도 그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어찌 보면 기획부터 실제로 써서 올리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 된다.


그렇게 시간을 적당히 때우다 보니 한두 시간이 금방 갔고, 방에 들어가 노트북에 담아온 셜록 1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맛없는 밥을 먹고, 퇴원 수속을 하고 마지막으로 코디님이 사주신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퇴원 수속 할 때 병원비가 194만원이나 나온 걸 보고 좀 놀랐다.(물론 재단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퇴원 며칠 후부터 쓰기 시작한 이 글을 타고난 게으름으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끌던 동안 집에는 감사패가 도착했고, 코디님의 전화를 통해 환자의 기증이 엄청 잘 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증 후의 건강 검진도 마쳤다. 물론 전혀 이상도 없고, 기증을 마치고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몸은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건강하다. 술을 잠시 못 마시는 게 아쉬웠지만, 건강검진 다음날 괜찮겠지 하고 친구와 마신 맥주는 여전히 맛있었고, 별 문제도 없어서 그냥 쭉 마셨다.(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심지어 기증날 저녁에 병원을 빠져나와 소주에 곱창을 먹으러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깡이 장난이 아닌 듯.)


어차피 환자를 직접 볼 수도 없고 이름도 뭣도 알 수 있는 건 없으니 생명을 구했다는 실감 같은 건 별로 안 나지만, 최소한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을 한 거겠지. 앞으로 살면서 많은 후회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기증을 후회할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 그 이후에도 종종 환자분의 소식을 들었는데, 상태가 점점 나아지다가 결국은 완치까지 되셨다고 한다. 이 일로 재단 측에서 감사패도 받았고, 그 후에도 매 년마다 조혈모재단에서 선물과 행사에 대한 공지를 보내고 있다. 뭐 어찌 보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나마 가끔씩이나마 기억할 수 있다는 건 각별한 기분이다. 이 글도 몇 년 동안이나 이 작은 블로그의 가장 큰 간판이 되어 많은 분들이 기증을 결심했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는데, 내 작은 경험이 이런 식으로 세상에 무언가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여러모로 참 신기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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