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종교라는 것에 참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 많았다고 해서 열성적으로 종교를 믿었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정 반대 방향으로.
아무리 봐도 뻔히 구라처럼 보이는 것을, 사람들이 어째서 열렬히 믿고 따를 수 있는지 참 신기했다.
궁금증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커져 책도 읽어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친구의 권유로 교회 수련회를 갔을 때에는 3일 동안 새벽 2시까지 그쪽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종교라는 게 이래서 저래서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라고 어릴 때부터 했던 생각과 지식들을 총동원해 물어보면 교회 쪽 사람들은 처음에는 논리로 맞대응하다가, 모든 논리가 논파되고 나면 믿음의 영역은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서 결국 그들만의 쉘터에 틀어박히곤 했다.
그때 내가 주장했던 주된 논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거나, 음성을 들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인간의 감각 또한 불완전한데 어떻게 당신이 깨달은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해서 계시를 내리는 것과, 인간과 비슷하게 불완전하지만 인간에게 계시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을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가?'
이 간단한 논리로 수많은 종교인들과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생산적인 대답을 주지 못했고, 그렇게 비슷한 삽질을 하며 궁금증에 몸서리치고 있다가 조금 다른 방향에서 실마리를 발견했다.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을 접했던 것이다.
그 책에서는 인간은 결국 유전자에 의해 조종되는 운반 기계이고,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이나 무의식적인 행동들은 단지 자연 선택의 시뮬레이션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단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유전자가 더 잘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는 문단을 볼 때에는, 머릿속이 깨끗이 비워지고 새로운 것이 밀어넣어지는 기분이었다.
책을 다 읽자 내 머릿속에는 '세상에 아무것도 의미는 없고, 모든 것은 단지 자연이라는 정밀한 기계의 흐름일 뿐이다' 라는 문장이 박혀 지속적으로 엄청난 허무감을 발산했고, 한 일주일 정도 극도의 우울증에 빠졌다.
세상의 현실이 이렇게 의미없고 허무한 눈 덮인 황무지 같은 곳이라면, 인간에게는 추위를 견뎌낼 옷이나 건물이 필요하지 않을까. 굳이 모든 사람이 이런 허무함과 우울증에 잠겨 있을 필요는 없다고 느꼈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심정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 자신의 심적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때부터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그만두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종교를 통해 돈, 시간, 약간의 합리성과 같은 어느 정도의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생 동안 얻게 되는 마음의 안식이라던가 잠재적 정신병원비라던가 우울증으로 허비할 시간들을 고려해 보면, 웬만한 경우 종교는 일생 동안 사람이 얻게 되는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적어도 내가 만난 교회 사람들은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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