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마망 라즈베리 타르트

취미/음식 | 2014. 11. 14. 23:24
Posted by 메가퍼세크

요새 차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티푸드' 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어서 평소 좋아하던 짜고 바삭한 과자를 샀다가 커피 맛을 소금에 빼앗기거나,

수입과자 특유의 코코넛맛, 바나나맛 등의 지뢰들을 멋모르고 샀다가 혀를 테러당하거나,

가성비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샀다가 피같은 돈을  과자 몇 쪼가리에 날려먹는다거나 하는 비극들을 참 많이도 겪었지만


그런 삽질들이 차차 경험치로 쌓여 조금씩이나마 티푸드에 대한 감을 잡아가고 있다.


그 첫 성과로서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것이, 이번에 소개할 본 마망 라즈베리 타르트.

bonne maman 이라는 프랑스의 회사에서 만든 과자인데, 원래 잼과 프리저브(원재료 형체가 더 남아 있는 잼) 등을 생산하는 회사인 것 같다.


프랑스어 번역기로 이름을 돌려 보니, 회사 이름은 아마 '좋은 엄마' 라는 뜻인 듯.


내가 살 때의 가격은 4800원이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5~6천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 것 같다.


<상자 디자인>

겉 상자에 그려진 이미지부터가 벌써 범상치 않다.


천원짜리 편의점 마가렛트 상자에도 쓰이는 체크무늬는 그렇다고 쳐도, 상품 이미지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꼬부랑 글씨만을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은 여백으로 남겨둔 디자인.


이전에 소개했던 로얄 브리티시 쇼트브레드의 디자인과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쇼트브레드의 디자인이 진중하고 보수적인 느낌이었다면, 타르트 상자는 조금 더 화려하고 유혹적이라는 느낌?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영국과 프랑스라는 과자 회사의 국적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참고:로얄 브리티시 쇼트브레드의 상자 디자인>


미묘한 위치에 자리잡은 점선을 따라 겉 상자를 뜯어 보면, 이제 내용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참 쓸데없는 사진인데, 점선을 따라 뜯은 모습도 멋있어서 그냥 찍어봤다. 이런 디자인에 실용적인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나름 고급과자로서 차별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보면 되겠지.


상자 안에 있는 타르트는 총 9개로, 트레이나 내부 용기 없이 비닐 한 겹으로만 낱개 포장되어 있다.


파손이 약간 걱정되기는 했지만, 타르트가 생각보다 튼튼해서 그런지 상태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근접 컷>


그리고 가까이에서 본 모습.


잘 파손되지 않으면서도 입에 넣으면 충분히 씹힐 만큼 절묘한 강도를 가진 타르트 껍질 안에, 원재료의 형태와 씨까지 충분히 관찰되는 라즈베리 프리저브가 꽤 두껍게 들어있다.


어떤 공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타르트 껍질과의 접착력도 괜찮은지, 이탈하거나 포장에 묻은 프리저브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맛은... 그냥 완벽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라즈베리의 새콤한 맛이 상당히 강한데, 적절히 조합된 단맛이 새콤함과 어우러져서 최고의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타르트 껍질도 전혀 거슬리지 않고 딱 알맞게 씹히면서 내용물의 맛을 받쳐주어서 먹는 내내 불만이 생길 만한 부분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먹을 때 부스러기도 거의 안 떨어진다)


과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의 완성도가 최고 수준에다, 커피나 차와의 조화도 좋아서 손님 대접이나, 선물로도 상당히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딱 하나 문제인 건 타르트 한 개당 최소한 500원이 넘는 가격인데... 매일 먹는 건 힘들더라도, 몇 개 사서 보관해 뒀다가 가끔씩 꺼내서 먹는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다. 


원체 고급 과자이기도 하고, 맛있다고 매일 먹다가 금방 질려버리는 것보다는 가끔씩 즐기는 작은 사치로 남겨놓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성분표>


성분 함량은 이렇다.

라즈베리 함량이 생각보다 낮아서 약간 아쉽지만, 첨가제가 거의 없고 영양성분도 준수하다.


유통 기한은 생각보다 긴 편으로, 제조일자부터 딱 1년. 여러 개 사서 보관해 놓기도 괜찮을 것 같다.

 

커피와 과자와 차

잡설 | 2014. 11. 13. 15:32
Posted by 메가퍼세크

요즘, 갑자기 티타임 비슷한 걸 가지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일정 없이 그때 그때 생겨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살다 보니 완전한 개판이 되어버린 생활 패턴에 조금이라도 규칙성을 줘 보려고, 편의점에서 카누 한 상자를 사다 매일 오후에 한 잔씩 마시기 시작한 게 발단.


많고 많은 커피믹스 중에 카누를 선택한 건 그저 상자가 멋있고, 어차피 매일 한 잔씩만 마실 테니 이왕이면 좋은 걸로 사자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막상 카페에서도 카페라떼만 줄창 마시던 몸에 진한 향과 쓴맛을 가진 아메리카노를 주입하니, 적응이 좀 힘든 감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 앞 수입과자 전문점에서 여러 가지 과자들을 구입,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하나 먹어 보며 커피와 맞는 과자들을 찾아갔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재미있는 과정이어서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하고 처음 '제대로 된' 홍차 전문점을 가봤는데, 정말 장난이 아닌 향과  맛의 하모니를 느껴 여기에도 꽂혀버렸고, 찻잎을 사려고 근처 마트를 뒤졌지만 찾지 못하고 꿩 대신 닭이라고 괜찮아 보이는 티백이라도 골라왔다.


커피에 맞춰 구입했던 과자들은 홍차와도 충분히 잘 맞아, 내키는 대로 아무 거나 조합해도 별 무리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간식 세트의 라인업이 완성되었으며, 원래의 의도대로 평소 일과에 괜찮은 휴식 시간 하나를 추가하는 데도 성공했다.


아무래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자금사정 때문에 커피나 과자나 차나 꽤 소박한 것들뿐이지만, 점점 여러 가지를 먹어보고 마셔보며 가끔 사치도 부려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과정이 되지 않을까.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컨텐츠를 한 가지 더 찾은 느낌이다.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으로 배송된 후드 집업의 사연  (1) 2015.01.09
커피를 마시다 문득 든 생각.  (0) 2014.11.25
어떤 노래 찾기  (1) 2014.07.19
제이레빗 3집, 투어리스트 2집 지름.  (2) 2014.06.26
블로그 시작.  (0) 2014.04.26
 

이번에 개봉한 '인터스텔라' 에는, 놀란 감독이 직접 설명하지 않거나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많은 물리학적 바탕 이론들이 숨겨져 있다.


물론 이런 과학적 바탕을 전혀 모른다고 해서 영화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배경적인 부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보면 조금 더 깊이 있는 영화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간단하게나마 영화에 관련된 물리학 지식들을 모아보았다.


이해가 쉽도록 모든 복잡한 내용과 수식들을 제거하고 직관적으로만 설명하다 보니 아무래도 내용의 일관성이나 깊이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조금 더 심도있는 상대성 이론 책들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하겠다.




1.차원


차원이란, 간단히 말해서 물체의 상태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지표(기준점을 제외하고)이다.


예컨대, 30cm 자 위에 아주 작은 벌레가 한 마리 올라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자 위에서 벌레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숫자가 필요할까? 물론 자의 눈금 하나만 알면 된다.


반면, 네모난 색종이 위에 올라가 있는 벌레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는 몇 개의 숫자가 필요할까? 여기에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ⅰ 색종이의 모서리 한 점(왼쪽 아래)부터 시작해서 가로와 세로로 눈금을 새기고, 벌레가 가로 방향으로 몇 센티미터, 세로 방향으로 몇 센티미터에 위치하는 지 나타낸다.(직교 좌표계) 


ⅱ 색종이의 왼쪽 아래 모서리 끝점에서 벌레까지 직선을 하나 긋고 그 직선과 색종이의 아랫변과의 각도, 직선의 길이(벌레와 모서리 끝점의 거리)를 나타낸다.(극좌표계)


두 가지 방법 모두, 두 개의 숫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예시에서 직선이나 색종이는 벌레가 있을 수 있는 '공간' 이라고 하고, 그 공간에서 벌레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숫자의 수를 '차원수' 라고 한다. 즉 직선은 1차원, 색종이는 2차원이다. 위의 설명을 확장하면 3차원 공간의 이미지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인가? 라고 묻는다면,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시간' 이라는 마지막 차원이 남았기 때문이다.


시간도 하나의 차원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위에 제시한 차원의 개념을 조금만 확장하면 된다.

색종이 위에 벌레 두 마리가 기어다닌다고 치자. 이 두 벌레가 자유롭게 기어다니다가 우연히 만났다면, 벌레의 위치를 나타내는 두 개의 숫자는 분명 일치할 것이다. 그런데 '만났다' 라는 건 뭘까? 결국 같은 '시간' 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현실 세계에서 물체에 대한 모든 정보를 나타내려면 위치에 대한 숫자들에 더해 시간이라는 숫자 하나가 더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을 위의 공간의 개념을 확장시켜 '시공간' 이라고 부른다.



2.시간 지연


시간이 공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차원이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재미있는 성질이 하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색종이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의 예시를 생각해 보자. 색종이의 왼쪽 아래 모서리에서 출발한 벌레가, 갑자기 어떤 방향을 정해 직선으로 계속 기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직선으로 기어간다' 는 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운동이고, 방향과 속도만 알면 손쉽게 나타낼 수 있다. 더 단순하게 하기 위해, 벌레가 기어가는 속도는 초당 10cm라고 먼저 가정하자.


이제 방향을 나타내야 하는데, 먼저 벌레가 색종이의 아랫변 방향으로 기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벌레가 기어갈 때 벌레의 위치를 나타내는 숫자 두 개는 어떻게 변할까?(2차원이므로) 당연하게도, 아랫변 방향으로는 초당 10cm로 이동하고, 세로 방향으로는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벌레가 아랫변에서 약간 벗어난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면?

아랫변 방향으로의 속도는 초당 10cm에서 약간 적어지고, 세로 방향으로의 속도가 조금 생길 것이다.


'속도'가,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도 비슷한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어떤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이 자동차는 시간 방향으로만 일정한 빠르기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동차가 갑자기 시속 100km로 달리기 시작한다면?

시간 방향으로만 움직이던 이 자동차는, 공간 방향으로의 속도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 방향으로의 빠르기와 공간 방향으로의 빠르기를 합한 것은 항상 일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자동차는 어쩔 수 없이 시간 방향으로는 조금 느리게 가야 하고, 결국 자동차에 실려 있던 시계는 더 느려지게 된다. 아~~~~~~주 약간.


그리고 그 자동차에 사람이 타고 있다면? 당연하게도 조금이나마 나이를 느리게 먹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동차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더욱 많이.


(물론 현실에서 자동차 좀 타고 다닌다고 나이를 늦게 먹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이런 현상이 충분히 느낄 만큼 일어나려면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왜 하필 빛의 속도인가 하면, 상대성 이론에서 물체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 속도가 빛의 속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 지연' 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 중에는 '쌍둥이 역설' 이라는 게 있다.


완전히 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가 있을 때, 둘 중 한 명이 우주선을 타고 매우 빠른 속도로 충분히 여행을 하고 오면 여행하고 돌아온 쪽의 시간이 더 늦게 흘러 쌍둥이의 나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시간이라는 게 사실 각자에게 다른 속도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점은, 어떤 공간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 효과를 느낄 수는 없다.


시간을 느끼는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도 결국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느려진 만큼 인식하는 속도도 느려져서 결국 스스로의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른다고 느끼게 된다. 갑자기 어떤 사람의 키가 2배로 커져도, 주변의 모든 것이 2배로 커지면 자신이 커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3.질량과 중력


2번까지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속하는 내용들을  (매우)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 항목에서는  약간 더 발전된 '일반 상대성 이론' 에 속하는 부분들을 조금만 살펴보겠다.


1번 항목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4차원이고, 시간과 공간이 합쳐서 '시공간'이라는 것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2번 항목에서 언급한 시간 지연 효과는, 이 시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지된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이 똑같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아도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은, 결국 시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관점이 변하지 않아도 시간 지연 효과가 일어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시공간을 억지로 잡아늘리는 것이다.


시공간을 늘린다니 무슨 소린지 감도 잘 안 잡히겠지만, 개념 자체는 간단하다. 평평한 고무판을 생각해 보자. 여기에 무거운 쇠공을 올려놓으면, 판은 움푹 패인다. '왜곡' 이 일어난 것이다. 시공간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왜곡된다. 그럼 시공간을 휘게 하는 쇠공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질량' 이다.


※어째서 하필 질량이 공간을 휘게 하는지에 대한 서술은 이 글의 수준을 벗어나므로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일단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중력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다. 앞의 쇠공의 비유에서, 쇠공으로 인해 휘어진 고무판 위에 구슬을 굴렸다고 생각해보자. 구슬은 고무판의 평평한 곳을 지날 때는 직선으로 굴러가겠지만, 쇠공 주변에 다다르면 쇠공(정확히는 쇠공이 만든 구덩이) 쪽으로 휘어져서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중력의 정체다.


그렇기에 무거운 질량이 있는 or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져 있을 것이고, 그 주변을 지나는 물체는 위에 언급한 시간 지연 현상과, 휘어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여러 신기한 현상들을 체감할 수 있다.



4.블랙홀과 웜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블랙홀과 웜홀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블랙홀에 대한 설명은 3번에서 바로 이어진다. 쇠공 주변을 지나가는 구슬의 경로가 휘어진다면, 가끔 너무 휘어져서 쇠공에 부딫히는 구슬도 있지 않을까?


간단히 예상할 수 있듯이, 구슬이 휘어지는 정도는 쇠공이 얼마나 무거운지, 구슬이 얼마나 무겁고 느리게 움직이는지, 구슬의 경로가 얼마나 쇠공과 먼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그 얼마나 가볍고 빠른 구슬을 옆으로 굴려도 전부 삼켜버리는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쇠공도 있지 않을까?


상대성 이론에서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빠른 구슬은 빛이다. 결국 빛이라는 구슬을 옆으로 굴려도 무조건 집어삼킬 만큼 무거운 쇠공(질량)이 있다면, 그 쇠공의 주변은 그 어떤 구슬(물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마의 구덩이, 모든 물체의 개미지옥이 될 것이다.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이 구덩이의 이름은 바로 '블랙홀' 이다.


블랙홀의 가공할 만한 질량은 주변의 시공간을 거의 찢어질 만큼 극도로 왜곡시키고, 한 번 들어간 물체는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 이라는 경계를 만든다. 이 경계 안으로 들어간 물체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기에, 블랙홀의 내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고도로 발전된 현대 물리학으로도 규명할 수 없는 이른바 '특이점' 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블랙홀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기에, 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의 알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라도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블랙홀은 사실 '검지 않다' 는 것도, 그런 물리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진 사실이다.


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데 어떻게 검지 않을 수 있는가? 라는 당연한 물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진공 청소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진공 청소기의 흡입구에 가까운 물건들은 모두 빨려 들어가지만, 흡입구에서 10cm만 떨어져도 흡입하는 힘은 훨씬 떨어지고, 30cm 정도 떨어지면 청소기의 영향력은 산들바람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도 사실은, 모든 물체를 빨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중력이라는 힘의 특성 때문에, 만약 태양이 지금 이 순간 질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블랙홀로 쪼그라든다고 해도 지구에 미치는 중력은 변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는, 주로 가스로 이루어진 가벼운 물질들이 블랙홀의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 이런 물질들은 너무 엄청난 속도로 돌기에 서로 마찰해서 열을 내고, 그 열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에 백열 전구처럼 강한 빛을 낸다. 멀리서 보면 이런 빛은 블랙홀에서 직접 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빛이 여러 방향으로 휘어지고 왜곡되어 특이한 형태를 띤다. 그 결과 일반적인 블랙홀은 그 이름과는 다르게 실제로 '검지 않다'


웜 홀은 '벌레구멍' 이라는 이름대로, 시공간에 뚫린 구멍을 말한다. 지금까지 지겹게도 우려먹은 고무판의 비유를 마지막으로 써먹도록 하자. 고무판이 너무 구부러지다 못해 아예 C자 모양으로 굽어버렸다고 생각하자, C자의 위쪽에서 아래쪽까지 이동하려면 왼쪽 벽을 따라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C자의 위쪽과 아래쪽 벽을 뚫어 통로로 이어버리면?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는 직선이라는 오래된 공리에 의해, 훨씬 빠른 이동이 가능해진다. C자의 왼쪽 벽을 따라 이동하는 데 빛의 속도로 1년이 걸렸는데, 웜 홀을 뚫으면 단 5초 만에 이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웜 홀의 활용도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위에서 구멍을 뚫은 고무판은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 이었기에, 구멍(웜 홀)을 통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넘나들 수 있다. 구멍의 한쪽 편은 2014년의 지구인데, 건너편은 4012년의 프록시마 센타우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연구가 이루어진 블랙홀에 비해 웜 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지지부진하기만 하지만, 그 놀라운 특성으로 인해 많은 SF장르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구상에서는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장 아무리 가까운 별도 광년 단위로 세어야 하는 우주에서, 거의 속도제한 없이 바로바로 이동할 수 있는 웜 홀의 존재는 치트키와 다를 바 없으니까. 인류가 언젠가 드넓은 우주를 삶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취미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어사이드 스쿼드 후기  (0) 2016.08.07
Flipped 감상.  (0) 2015.09.06
위플래시 리뷰  (0) 2015.04.24
킹스맨 리뷰(스포)  (0) 2015.03.10
'명량' 을 보고 실망하다(스포일러)  (0) 2014.08.06
 

블로그 이미지

메가퍼세크

왠지 모르게 말하고 싶어진 것들을 쌓아두는 곳.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9)
자아성찰 (14)
취미 (31)
경험 (4)
잡설 (14)
보관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