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드-춤추는 바람

취미/음악 | 2015. 4. 25. 11:56
Posted by 메가퍼세크


심심해서 엔하위키를 눈팅하다가, '바드' 항목에서 동명의 인디밴드를 발견했다.


밴드 이름 한번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유튜브를 검색해 노래를 들어 보았고, 처음 눌러본 곡 '아이시절' 의 전주가 나오기 시작한 지 불과 5초도 안 되어 이 밴드가 내 취향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잔잔하면서도 활기찬, 마치 축제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액센트가 분명한 힘있는 연주.

거기에 더해진, 정말로 음유시인들이 노래할 법한 평화로우면서도 어딘지 아련한 가사.


곡에 따라 분위기는 꽤 다르고 연주곡도 꽤 있지만, 전체적인 악기들의 조화와 분위기 조성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 자체가 말도 안 될 만큼 내 취향의 스트라이크 존을 직격했다.


첫 곡을 들은 지 10분 만에 음원 사이트에서 모든 곡을 구입하고, 음악 플레이어에 넣어 랜덤 반복 재생으로 돌린 지 벌써 거진 이틀째. 앞으로 일주일 가량은 듣게 될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 외적인 요소로 고른 가수의 음악이 마음에 드는 것은 투어리스트에 이어 벌써 두 번째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제목 선정이나 앨범 구성 같은 쪽에서도 취향이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언제 콘서트라도 하면 꼭 보러 가야지.


바드(Bard) 2집 - Road To Road
음반
아티스트 : 바드(Bard)
출시 : 201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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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APEPE-二人の写真(두 사람의 사진)

취미/음악 | 2015. 4. 25. 11:52
Posted by 메가퍼세크

한 때 통기타 소리에 꽂혀서 연주할 만한 곡을 찾다가 발견한 그룹.

분위기도 좋고, 연주 실력도 좋고, 가사 한 줄 없이 연주로만 승부하는 그 담백함도 좋다. 


잔잔하면서도 확실한 높낮이와 포인트가 있는 멜로디는 마치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서 

데파페페 곡들을 들을 때는 다른 곡들에 비해 조금 더 한음 한음에 집중하게 된다.

연주자가 어떤 생각과 감성으로 현을 뜯고 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대부분의 노래가 다 좋지만 이 곡, '두 사람의 사진' 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내가 생각하던 '잔잔한 통기타 연주곡' 의 이상적인 이미지에 완벽하게 매치되어, 처음 듣는 순간 참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전주가 끝나고 시작되는 첫 마디 멜로디부터 아련하고 추억하는 듯한 정서가 진하게 담겨 있고, 너무 방방 뜨지도 축 처지지도 않으면서 가을 길을 산책하는 것처럼 이어지는 분위기. 가사가 없음에도 전체적인 멜로디의 완급 조절이나 높낮이가 정말로 말소리를 닮아서, 누군가가 모닥불 앞에서 조용히 추억을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교나 어려운 테크닉이 충분히 들어가 있음에도 곡의 분위기에 충분히 녹아들어, 과도하지 않은 맛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정말 세심하게 조절을 잘 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언젠가 기타를 배우게 된다면, 그 이유의 90% 이상은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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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시 리뷰

취미/영화 | 2015. 4. 24. 23:07
Posted by 메가퍼세크

모진 훈련으로 거장을 키워낼 것인가, 너그러운 교육으로 평범한 제자를 키워낼 것인가.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스승들의 골치를 썩이고, 지금도 썩이고 있는 질문일 것이다.


이 영화, '위플래쉬' 는 그 중 첫번째 극단을 선택한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연주자를 담금질하기 위하여 비인간적 경쟁과 체벌, 인격 모독까지 서슴치 않는 플래처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가 날 때까지 드럼을 치는 네이먼은 무서울 만큼 닮았고,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면서도 결국은 서로의 철학과 열정에 공감하여 펼치는 마지막 신의 열정적인 연주는 첫번째 극단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과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 이상적인 무대를 이루어내기 위하여 네이먼과 다른 학생들이 겪었던 잔인할 정도의 고통은, 관객이 플래처의 교육방침과 네이먼의 열정에 단순히 감동할 수 없게 만든다.


과연 채찍질을 통해 만들어진 한 명의 위대한 연주자는, 그 채찍에 맞아 다친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는 매우 복잡하고, 또한 중요하며,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플래처의 교육 방식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자의 자존심이나 인권, 명예와 같은 가치는 타인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핵심적인 가치들을 무참히 짓밟는 플래처의 교육은 결과에 상관없이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얼핏 보면 이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 그런 가혹한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극중의 네이먼도 부분적으로는 그렇고, 여러 운동선수들이 스스로 혹은 코치, 트레이너들을 통해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넣는 훈련을 추구한다는 것이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더 가까운 예로는, 야간자율학습에 자율적으로 참가하여 스스로를 공부하도록 하는 고등학생들도 있고.


물론 위의 사례들은 플래처 교수의 가혹한 수업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면서 높은 성과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때로는 자유를 빼앗긴 채로 얻은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플래처 교수의 방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 문제의 답은 간단하다. 플래처 교수의 교육 방침은 분명 잘못되었으나, 그 잘못은 가혹한 교육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플래처 교수가 자신의 팀에 들어오기로 한 한 모든 모든 학생에게 자신의 교육 방침과 스타일을 사전에 공지하고, 충분히 그에 공감한 학생들만으로 팀을 꾸렸다면 어땠을까? 극중 나타난 대부분의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그쳤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자신과 공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한, 소통의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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