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소'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1.29 | 마음을 울리는 가사 한 소절
  2. 2015.06.28 |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문장들. 3
  3. 2014.06.17 |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31
  4. 2014.05.04 | 보컬트레이닝. 4

마음을 울리는 가사 한 소절

보관소 | 2016. 1. 29. 22:54
Posted by 메가퍼세크

'꽂히다' 라는 표현이 있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선을 넘어, 하루종일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는 상태. 말 그대로 모든 생각과 감정이 그것에 '꽂혀'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음식의 맛에 꽂혔을 때는 돈과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그 음식을 먹어대고, 책에 꽂히면 그 책의 모든 내용을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보고, 게임에 꽂히면 그 게임의 모든 것을 통달할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 어떻게 보면 모든 열정과 몰입의 상태를 포괄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특히 무언가에 꽂히기 쉬운 기질을 타고났는지 오렌지 주스에서부터 게임이나 영화, 그림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것에 꽂히고 빠져나오고를 끝도 없이 반복해 왔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별 것 아닌 가사 한 소절과 몇 초간의 멜로디에 꽂혀, 일 주일이 넘게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그 곡만 들었던 적이 몇 번이었는지. 이 포스팅에서는 그렇듯 강렬하게 꽂혔던 곡들의 기억을 모아 갈무리해 두려고 한다.


바드-아이시절

 

 내 아이시절 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을

 사라지게 하고 세상의 모두를

 행복하게 할 거라 믿었네



이적-고독의 의미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하기엔 난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 온 것 같네요

 허나 아무것도 몰라요 난

 그대라는 사람에 관해

 어떡해야 그대에 다다를 수 있는지 



루시아-아플래


 오늘은 너를 사랑하고 아플래

그냥 이 노래를 다 부르고 슬플래

눈을 감아도 네 얼굴이 보이는 걸 어쩌겠니

그냥 오늘은, 오늘만은 사랑하고 아플래



루시아-강


내 평생 그토록 아름다운 환상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조금은 체념하오


붙잡을 새 없이 떠나 보낸 사람을

아직 내게 이토록 강하게 묶어주는

단 하나의 끈이 오직 슬픔이라면

나는 차마 이조차 놓치지 못하겠소


그 어떤 시나 노래로 설명할 길 없고

찢겨져 나간 자리를 메꿀 수가 없소

어느새 그대는 나의 다른 이름이며

뒤집어 쓴 이 허울로 하루를 사오



루시아-오필리아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너는 나를 다 믿었죠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끌어안고

 다신 놓지 않을 거에요 내 미련함을 욕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에요



루시아-그대가 웃는데


 그대가 웃는데 내가 행복하기에

 그제야 내 사람인 걸 알았소


 그대가 우는데 내가 무너지기에

 그제야 내 사람인 걸 알았소



루시아-외로워 본


 누가 말했던가 사람은 누구나 바다 위의 섬처럼

 외로운 운명을 쥐고 태어난다고



루시아-표정


 나는 절대 너를 판단하지 않아

 세상의 잣대로 재지 않아

 내가 아는 너의 모습 그대로 믿어



루시아-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칼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칼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 싫은 건 아닌 건지

 너의 곁에 어울리는 사람 정말 내가 맞는지



루시아-WHO


 항상 누군가가 되려 했던 나는

 이제 나 자신으로서 행복해지려고 해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 애썼던 나는

 이제 나 자신부터 날 사랑해 주려고 해


 너 자신에게 좋은 것을 줘

 독약과 칼날은 내밀지 말고

 남과 비교하고, 자신을 의심하지 말아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어

 네 삶의 시계를 찾아

 그러면 돼, 거기 맡기면 돼



김준수-꼭 어제


 내가 할 수 있는 약속은

 초라한 나의 진심은

 겨우 이런 것뿐이야

 그대와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흰머리조차도 그댄 멋질 테니까


 나를 전부 다 줬지만 아깝지 않았다

 말하지 못한 게 난 가슴 아파

 그대와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이 삶을 다 써도 우리에겐 짧을 테니



김동률-오래된 노래


 오래된 테잎 속에 그때의 내가

 참 부러워서 그리워서

 울다가 웃다가 그저 하염없이

 이 노랠 듣고만 있게 돼 바보처럼


김동률-내 마음은


 혼자 있는 게 편하게 됐어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피곤해졌어

 이러다 나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까

 걱정되다 체념하다 또 너를 생각해



김동률-동행


 네 앞에 놓여진 세상의 짐을 대신 다 짊어질 수 없을 지는 몰라도

 둘이서 함께라면 나눌 수가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김동률-내 사람


 지친 하루에 숨이 턱 막혀올 때

한 사람은 내 옆에 있다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어서

그냥 씩 웃고 말아도 되는 참 편안한 사람


가진 것이 없어도 날 가득 채워주는

이 사람으로 다 된 것 같은

날 쓸모있게 만들고 더욱 착해지게 만드는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 주고 싶은 내 사람



김동률-청춘


 우린 결국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푸르던 그 때 그 시절 추억이 되었지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아직 뜨거운 가슴이 뛰고 다를 게 없는데 

 뭐가 이리 어려운 걸까



김동률-노래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니 이제야

 나를 마주보게 되었네



이소라-Track 9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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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문장들.

보관소 | 2015. 6. 28. 03:29
Posted by 메가퍼세크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있다.


보통 '명언'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 글의 원본이 저장된 메모장 파일의 이름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명언이라는 단어가 그 문장들의 성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적합한 명칭도 떠오르지 않아, 글의 제목이 장황해진 것은 좀 아쉽다.


길이도 제각각이고 원문도 없고, 출처가 확실한 것도 확실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유일한 공통점은 처음 문장을 보았을 때 무언가의 '충격'을 느꼈다는 것. 그 충격의 세기가 충분히 강해,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은 문장들을 여기에 모아 보았다.


1.우주와 세계관



"이쯤에서 한번 물어보자.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우리 주변의 만물과 우리가 겪는 모든 과정들을 엿새 만에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모두가 스스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놀라운가? 후자라고 해도 충분히 멋지고 압도적이지 않은가?"

-출처 미상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무대에 선다는 명제가 철두철미 거듭되어 사실과 어긋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논쟁의 대세는 결정적으로 하나의 입장으로 기울어졌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입장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다.>

"아마도 다른 세계의 생명이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이 없을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우리가 겸허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칼 세이건


'당신', 당신의 기쁨과 슬픔, 당신의 기억과 야망, 당신의 개인적인 정체성과 자유의지란 단지 신경세포의 무수한 집합과, 그 세포들이 결합한 분자들의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프랜시스 크릭



"우주의 거의 모든 수소 원자는 빅 뱅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 몸은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물의 대부분은 수소입니다. 즉 여러분의 몸을 만든 것은 어머니도, 단군할아버지도, 예수도 아닌, 백 수십억 년 전에 일어난 단 하나의 폭발입니다."

-KBS '인문강단 락' 에서, 이석영 교수


-그러나 모든 것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다. 도대체 그 누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신전 안에 있는 이 발광체를 다른 곳으로, 또는 모든 것을 비출 수 있는 지금 이 장소보다 더 나은 장소로 옮기려 하겠는가... 따라서 실제로는 태양이 왕좌에 앉아 자신의 주변을 회전하는 천체를 조종한다.


-코페르니쿠스,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포상하고 징벌한다든지, 우리와 이해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닌다는 신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I cannot conceive of a God who rewards and punishes his creatures, or has a will of the type of which we are conscious in ourselves.

-아인슈타인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우리가 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이라는 본명이 부르기 지나치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 가이너 카쉬냅(드래곤 라자)



신봉자가 회의론자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은 

술취한 자가 취하지 않은 자보다 행복하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버나드 쇼


물론 이러한 '궁극의 이론' 을 알게 된다고 해서 물리학자들의 할 일이 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알파벳들을 제대로 알게 되면 이제 '자연의 시' 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시'를 쓸 일이다. 아래로 내려가 드디어 우리가 단단한 땅 위에 섰다면, 이제는 눈을 들어 저 하늘로 오를 일이다. 통계물리학은 바로 그 사다리다. 물론 사다리의 길이가 무한대라 문제이기는 하다.


-김범준, '세상물정의 물리학' 중에서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에서.


2.의지



"Dream the impossible"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Do the impossible love"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Fight with unwinnable enemy"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Resist the unresistable pain"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Catch the uncatchable in the sky."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돈키호테를 각색한 뮤지컬의 곡, '이룰 수 없는 꿈' 의 가사 중에서.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맞춘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집요하게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버나드 쇼


"... 그리고 그 열정이 지속되는 한 끝까지 그 일에 충실하십시오. 그 열정에 지식을 공급하십시오. 그래야만 마음이 더 자랍니다. "


-에드워드 윌슨



3. 깨달음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As for me, all I know is that I know nothing.

-소크라테스


네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공자


"그때 그러지 말걸"
우리는 이 말이
"지금 이러지 말자"와
같은 말이라는 것을 종종 잊습니다.

-출처 미상


개에게 물린 상처는 개를 죽인다고 아물지 않는다.
Killing the dog does not cure the bite.


-링컨



자신의 부족한 점을 더 많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이는 더 존경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버나드 쇼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버나드 쇼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카토



만일 미래 사회가 조그만 플라스틱 원반을 모으는 대가로 사랑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오래지 않아 그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으로 인해 열렬한 갈망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할 것이다.


-알랭 드 보통, <불안> 본문 중에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 영겁에 걸친 세월을 죽은 채로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일말의 고통도 준 적이 없다.


-마크 트웨인



진실에게 있어 더 위험천만한 것은 거짓이 아니라 바로 확신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사실이란 없다. 오로지 해석만이 존재할 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후회할 거라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라면 결코 후회하지 마라.


-무라카미 하루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읽는 책만 읽는다면, 넌 오직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지라는 것은 현대에 있어서 최고의 사치인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사람이 뭔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A thing is not necessarily true because a man dies for it


-오스카 와일드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건네주면 그는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Man is least himself when he talks in his own person. 

Give him a mask. and he will tell you the truth.


-오스카 와일드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져도 똑같이 향기로울 것이 아닌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4.센스



인간의 멍청함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Never underestimate the power of human stupidity.


-로버트 A.하인라인



여자의 아름다움과 남자의 얼빠짐 사이의 연관은 일상생활에서 관찰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인과적 전후관계들 중의 하나이다.


-출처 없음



"한 여자가 20년이나 걸려 성인으로 만들어놓은 아들을 다른 여자가 불과 20분 만에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출처 미상

신사란 의도하지 않고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a gentleman is one who never hurts anyone's feelings unintentionally

-오스카 와일드



4.독설과 비판, 비꼬기



"내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역설적이고 전복적으로 보이는 어떤 원칙에 대해, 나는 독자들의 진지한 고려를 제안하는 바이다. 문제의 그 원칙이란 다음과 같다. 즉 어떤 명제가 진실임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경우, 그 명제를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이다. 나는 물론 만약 그런 견해가 일반화된다고 하면, 우리의 사회 생활과 정치 체제 모두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밖에는 없으리라는 점을 시인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사회와 정치 이 두가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런 결점이 없으므로, 결국 이 원칙은 거기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애국자: 자신이 무슨 소릴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Patriot: the person who can holler the loudest without knowing what he is hollering about.

-마크 트웨인


역사는 온전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할 과목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건을 시간 순으로 쭉 나열해 놓고 역사를 배우라니, 가당키나 한 얘긴가?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런던에 대해 배우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버나드 쇼


애국심이란 단지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는 신념이다

-버나드 쇼


5.기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함이 성취된다.
semble que la perfection soit atteinte non quand il n'y a plus rien à ajouter, mais quand il n'y a plus rien à retrancher.

-생텍쥐페리


무엇을 할 지 아는 상태에서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교수님


"황금기는 황금에 휘둘리지 않는 시기다."

-프랑스 68혁명



단언컨데, '오글거리다'라는 표현은 세상에서 가장 희망없고 잔인하며 메마른 단어입니다. 낭만은 이 별거 아닌 듯 한 단어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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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보관소 | 2014. 6. 17. 21:15
Posted by 메가퍼세크

한 달쯤 전, 오랫동안 미뤄졌던 조혈모 세포 기증을 끝냈다.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해보고, 환자 취급도 받아보고, 휠체어도 타보고... 당분간은 겪어보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참 많이 겪었기에, 여기에 간략하게나마 그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작년 11월,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다.

내가 2010년 6월에 위탁했던 조혈모세포 샘플과 유전자 형이 일치하는 혈액암 환자가 있으니 확인 후 연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소릴까 하고 구글에 '조혈모세포 기증'을 검색해 보니, 골수 쪽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골수이식' 의 일종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백혈병 등 혈액암 계열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시술되는데, 환자의 혈액을 만드는 세포(조혈모세포)들을 방사선 등으로 모두 전멸시키고 건강한 사람의 것을 받아 대체하는 시술이라고.


일단은 장기기증의 일종인지라 몇만 분의 1의 확률로 유전자형이 맞는 사람끼리만 기증이 가능한데, 기증 자체는 조혈모세포를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주사를 몇 방 맞은 후 마취도 하지 않고 피를 뽑아서 수혈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받는 쪽에서 어떤 힘든 과정들을 거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는 쪽은 그냥 주사 몇 대 맞고 피 뽑으면 끝.


그런 내용을 보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무언가 '균형이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기증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작 몸에 주삿바늘 몇 번 들락날락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그런 간단한 일에 다른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다니.


내가 만약 환자라면, 나에게 조혈모 세포를 기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고작 주사 몇 대, 입원 며칠이 귀찮아서 날 죽게 내버려둔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밀지 않을까. 결국 기증을 안하면 환자 한 명은 죽는 건데, 그건 사실상 내가 직접 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증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극도로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기증을 허락받고, 센터에 연락해 이미 인터넷에서 다 본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증 의사를 밝히기까지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반대를 엄청 하셨는데, 어찌 어찌 설득에 성공했다)


며칠 후에 문자로 발송된 기증 일정은 간단했다, 우선 조혈모 기증 센터를 방문해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간단한 검사를 한 후 상세한 일정을 확정한다. 그 후 기증 한 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고, 기증 삼 일 전부터 매일 병원에 찾아가 주사 몇 방씩을 맞고, 2~3일 약식으로 입원해서 피 뽑고 끝. 다만 기증 날짜는 환자 측 사정에 의해 연기되거나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 첫 순서가 시작된 건 기증 의사를 밝힌 지 대충 2주일 정도 지난 후. 구로 쪽에 위치한 조혈모 기증 센터에 방문해 약간 사촌 누나 같은 느낌이 났던 전담 코디(기증 담당자)님과 인사를 하고,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증 동의서를 쓴 후 간단한 유전자 검사를 했다.


(동의서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게, 환자는 기증이 확정되면 한 달 전부터 '전처치' 라는 과정을 통해 고농도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면역 체계를 전부 파괴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해진 기간에 기증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게 되기에 일정을 철저하게 잡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여자가 기증을 취소해 환자가 사망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런데 이제와서 유전자 검사라니. 이미 유전자 일치하는 거 확인하고 연락 준 거 아니었냐고 물어보니 내가 2010년에 맡겼던 혈액 샘플로는 조혈모세포 기증에 필요한 유전자형의 일부만 알아내 저장해 놓고, 그 일부가 일치하는 사람은 나머지 유전자형도 일치할 가능성이 80% 이상이기 때문에 연락 후 추가로 혈액을 뽑아 검사를 하는 거라고 했다.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쓰는 이유는 결국 그 추가 검사의 비용 문제. 이것도 예산 가지고 하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관계로 간단히 채혈을 하는데 팔에 고무줄을 묶기 전부터 시퍼렇게 드러난 굵은 정맥, 주삿바늘을 꽂자마자 퓩 피가 나올 정도의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고 코디님이 참 놀랐다. 이렇게 혈관이 튼튼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팔 쪽 혈관이 약해서 가슴에 꽂는 사람도 있는데, 나 정도 혈관이면 그럴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태어나서 혈관 두께로 칭찬을 받아 본 건 처음이라서 좀 얼떨떨했는데, 그래도 이상한 데다 바늘을 꽂을 확률은 적어진다니 조금 안심했다.

 

그렇게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유전자형이 일치한다는 통보가 왔고, 두 달쯤 후에는 기증 일정이 나왔다. 서울대병원에서 2월 말 쯤에 건강검진을 하고 3월 말에 기증하는 계획. 뭐 그런가보다 하고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


그런데 건강검진 일주일 전 쯤에 연락이 와서 환자 사정으로 연기가 되더니, 병원과의 일정 조정이나 협회 측 사정으로 2~3번 더 바뀌고, 내 쪽에서 면접 일정 때문에 또 바꾸고. 자잘한 변경까지 합하면 약 5번 정도나 일정이 미뤄졌다.(코디님이 담당한 모든 기증 중 제일 많이 미뤄졌다고 했다)


심지어는 환자 측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아예 기증이 취소되었다는 말까지 들었다가, 한 일 주일 후에 환자 측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진행을 원한다고 다시 재개하는 일까지... 결론적으로 처음 연락을 받은 때부터 6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기증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증 한 달 전, 공여자가 기증에 적합한 상태인지를 판별하는 건강 검진을 하고.

(그 즈음에 생활 리듬이 워낙 막장이라, 전날 밤에 잠을 못 자고 가서 혈압이라도 높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기증 일 주일 전부터 혈액 성분 관리를 위해 술과 기름진 음식을 자제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맛있는 음식의 대부분은 지방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기증 3일 전부터 매일 병원에 찾아가, 그라신이라는 주사를 하루 3방씩 맞았다.


어깨에 맞는 피하주사인데, 골수 안에 들어있는 조혈모세포의 분열을 촉진? 아니면 그런 비슷한 작용을 해서 내 피 속에 조혈모세포의 농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결국 부스터라는 건데, 이 주사는 일생에 한 차례밖에 듣지 않아서 만약 다음부터 조혈모세포 기증을 할 일이 생기면 얄짤없이 골수에서 직접 기증해야 한다고 했다. 뭐 면역이라도 생기나?


근데 정작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일반적으로 맞는 '근육주사' 가 아닌, '피하주사'라는 좀 특수한 종류의 주사라서 좀.. 많이 아팠다.


그래봤자 주산데 별 거 있겠어 하고 그냥 평소대로 맞았는데, 바늘이 피부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다른 주사와 비슷했지만 주사기를 누르는 순간부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특이한 고통이 엄습했다. 뭐 엄청나게 아프진 않았는데 맞은 쪽이 좀 뻐근하고, 차갑고, 따갑고, 주사바늘로부터 뭔가가 몸 속으로 퍼져 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그런 감각? 그래도 못 참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라서 어찌저찌 왼쪽에 2방, 오른쪽에 1방을 맞고, 알콜솜으로 피를 닦은 후 나왔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똑같이 찾아가서 똑같은 주사를 맞았는데, 이상하게도 둘째 날에는 거의 소리지를 정도로 아팠지만 셋째 날에는 일반 주사보다도 안 아프고 주사 자국조차도 금방 아물었다. 아마 간호사의 실력이 문제였던 건가?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세번째 간호사 같은 분한테만 맞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다만 주사의 통증과는 별개로, 그라신이라는 약물 자체의 사소한 부작용은 좀 있었다. 주로 관절 부위가 많이 쑤시고 심한 사람은 두통을 겪기도 한다는데 내가 겪은 건 오직 요통뿐. 평소에 자세가 별로 안 좋은 것도 있어서인지 하루 종일 앉아도 서도 누워도 허리가 마구 쑤셔댔다. 그래도 뭐 정말로 못 참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어차피 집에서 하루종일 책이나 붙잡고 있던 때라 사실 큰 불편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본격적인 기증 절차가 시작되었다. 총 기증 일자는 3일간. 원래 기증 절차 자체는 몇 시간 정도면 끝나지만, 기증자 쪽과 받는 쪽의 일정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되는 섬세한 작업이라서 총 3일 동안 입원시킨다고 한다. 첫 날은 그냥 간단한 검사, 둘째 날에 기증, 그 후 추출된 세포량을 측정하고 충분하면 3일째 아침에 퇴원, 모자라면 추가 기증을 한 후 조금 더 늦은 시간에 퇴원. 딱 봐도 꽤 지루한 시간일 것 같아서, 집에 있던 책 한두 권과 친구에게 빌린 노트북을 챙겨갔다.


첫 날은 별 거 없었다. 오후 4시쯤 병원에 도착해 간단한 혈액검사를 하고, 입원 절차를 마친 후 병실로 입실. 주어진 병실은 1인실로, 냉장고, 옷장, 화장실, 책상, 침상이 있어 거의 기숙사 1인실 같은 느낌이었다. 책상 위에는 세면도구 세트와 수건, 과일, 과자까지. 어, 과자?


"기증 전까지 기름진 거 먹으면 안 된다면서 이런 과자 먹어도 돼요?"

"?? 삼겹살처럼 너무 기름진 거만 안 먹으면 된다고 헀는데요?"


...역시 사람 말은 제대로 들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기증 전에 '기증 1주일 전부터 술과 기름진 음식을 먹지 마세요' 라고 기억헀는데, 사실은 '기름진 음식을 너무 과도하게 먹지는 마세요, 술은 ㄴㄴ' 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그 작은 착각의 결과, 기증 일 주일 전의 최후의 만찬 후부터 모든 식단에서 고기나 치즈를 극도로 배제하고, 야식이나 외식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모든 음식의 영양 성분표를 보고 지방량을 확인해 참 크래커 같은 맛대가리 없는 과자나 간식으로 조금씩 집어먹으며, 영화를 보러 가서도 팝콘 따위 못 먹고 롯데리아를 가서도 영양 성분표를 뚫어지게 쳐다본 끝에 생전 먹어본 적도 없는 새우버거와 그린 샐러드를 먹으며 쓸데없이 건강한 식단을 일 주일 동안 지속했던 내 노력은... 결국 모두 사서 고생이었던 셈이 되었다. 심지어 3일 동안 먹었던 병원밥도 하나같이 더럽게 맛없어서, 그 동안의 뻘짓을 3일 내내 후회했다. 


아무튼 병실에 입실해 병원복을 수령해 입고 하릴없이 누워 있다가, 그나마 양호했던 첫 날의 병원밥을 먹고(3일 중 유일하게 다 먹었다) 몇몇 자잘한 검사를 하고 그라신 맞고 잔 게 그날 한 일의 전부.


검사라고 해도 들어온 사람들은 학생 간호사라고 해서 실습온 간호대학 학생들? 쯤인 거 같았는데, 역시 진짜 간호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혈압과 맥박만 재고 끝.


다만 혈압은 그냥 보통의 혈압계로 쟀지만, 맥박은 의외로 손목을 짚고 시계를 보며 일 분 간 세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재서 조금 웃겼고, 간호사 분이 좀... 많이 예쁘셔서 맥박 안 빨라지려고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검사가 끝나고서는 자유시간, 평소대로 한 시 쯤에 자려고 했지만 다음 날 기증하려면 많이 빨리 일어나야 된다길래 그냥 열한 시쯤에 잤다. 가져간 책이나 영화는 볼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이틀째. 아침 여섯시쯤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혈액검사를 받고 잠깐 다시 자다가, 씻고 나와 밥을 먹고 침대에 앉아 있으니 남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무진장 두꺼운  '헌혈 바늘' 을 가지고.



<헌혈바늘>


...기억도 나지 않는 고등학교 때 단체 헌혈 이후로는 헌혈이라는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관계로, 저런 거대한 바늘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근데 저런 굵직한 걸 두 개나, 내 양 팔의 제일 튼실한 정맥 속에 꽂아야 된다고 한다...;(한 팔에 하나씩) 지금 생각해 보면 기증 절차 중 가장 공포스럽고 아팠을 때가 저 때였던 거 같다. 그것도 가장 어려운 주사 중의 하나라 보통 그 병동 최고의 숙련된 간호사가 하고, 그래도 잘못되면 여러 번 찌르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히 내 팔의 정맥은 간호사들과 코디님이 볼 때마다 칭찬할 정도로, 팔 위에 고무줄을 묶지 않아도 자동으로 두드러지는 훌륭한 벌크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 방에 푸욱 하고 성공. 간호사는 이 정도면 초짜 간호사한테 교보재로 써도 될 정도라고 농을 던졌다.


그렇게 내 혈관에 길쭉한 플라스틱 바늘이 들어와 있는 상태로, 뭔가 찝찝한 기분과 불안감을 느끼며(사실 아픔은 거의 없었지만) 기증실로 내려갈 때까지 팔을 쭉 펴고 병실 침대에 누워 있기를 한 십 분, 코디님이 들어오셨다.


이제 바로 내려가서 기증하겠구나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아직 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기증 시간은 한시간 정도 뒤지만 간호사들이 여러 일로 바빠서 바늘만 미리 꽂아놓은 거라고 했다. "아니 그럼 한 시간 동안 이 상태로 누워있으라구요?" "ㅇㅇ"


...별 수 있나, 이미 꽂은 거 뺄 수도 없고. 플라스틱 바늘이라 팔을 조금은 구부려도 된다고 했지만 구부릴 때마다 혈관 벽에 바늘이 닿는 감촉이 기분 나빠서, 그냥 쭈욱 편 채로 코디님이랑 이야기나 하면서 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한 9시 반 쯤 기증실에서 연락이 와서 바로 내려가 입실. 팔을 쭈욱 편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나고 짐을 챙기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기증실은 침대 두 개와 큼직한 기계 하나가 있는  작은 방. 기증을 담당하실 의사는 중년의 여의사님으로, 대충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하셨다. 역시 팔을 쭉 펴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 위에 눕자, 심전도 전극을 가슴 위에 붙이고 손가락에 산소 포화도 측정기? 라는 집게를 물리고, 내 팔에 꽂힌 바늘 두 개에 기계에서 뽑은 관을 연결했다. 하나는 Input, 하나는 Output.


그 기계는 아마 신장 투석에 쓰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내 오른팔에서 피를 뽑아 조혈모세포를 추출하고 나머지 성분을 왼팔로 다시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조혈모세포의 양은 대략 혈액 중 1/60 정도로, 필요한 양을 대충 계산해서 적당량 뽑는다. 내 경우에는 받는 쪽이 체중이 가벼운 여성분이고 공여자인 내가 체격이 큰 편이라, 필요한 양도 적고 많이 뽑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들었다.


오른팔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 지 한 2~3분 후 왼팔로 들어오는 차가운 느낌. 뭐 이미 꽂아 놓은 혈관이라 아프지도 않고 기증 자체는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진짜 문제는 엄청나게 긴 기증 시간. 보통 사람의 경우 15000cc정도를 뽑는다는데, 내 경우 체격도 있고 추가 기증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18000cc정도를 뽑기로 했다. 대충 내 몸에 있는 피의 3배 정도를 돌린다는 이야긴데,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경우 분당 60~70cc를 뽑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내 경우 잘 뽑혀서 처음부터 70cc로 뽑다가 나중엔 75로 뽑았다. 그래도 워낙 뽑는 양이 많다 보니 네 시간 남짓 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물론 팔에는 바늘이 꽂혀 있으니 거의 움직일 수도 없고, 자다가 뒤척거려서 바늘이 뽑히면 난리나니 잠도 가능하면 안 자는 게 좋고, 가끔 피가 뽑히다 말면 손도 쥐었다 펴 보고 자세도 바꿔봐야 하는 귀찮음까지... 심지어 중간에 화장실도 못 가서 만일의 상황에는 도구 (?) 를 써야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피가 덜 나오기 시작하면 오른쪽 팔에 살짝 진동이 오면서 나가는 쪽에 아주 살짝 공기방울 같은 게 생기는데, 그게 기계에 도달하면 삐- 소리가 울렸다. 그러면 의사선생님이 와서 자세를 바꿔주고 계속. 묘하게도 잠깐 딴 거 하러 가시면 꼭 울리더라. 


팔을 뒤척이면 경보가 자주 울려서 웬만하면 그냥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는데, 완전히 똑같은 자세인데도 30분쯤 그대로 있으니 다시 울리는 경보. 그럼 침대의 높이를 조절하거나, 팔 위쪽에 받침대를 대거나 해서 다시 혈류량을 늘렸다. 뭐 처음에는 전혀 안 아팠지만 두세 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니까 뭔가가 뽑혀 나가는 느낌이 살짝 강해지면서 약간의 통증도 있었다. 들어오는 쪽은 뭘 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 긴 기증 시간의 대부분은 통증이고 뭐고 없었고 내 혈류가 좋은지 피도 쭉쭉 잘 뽑혀져 나왔던 관계로, 지루함이 극에 달해 시간을 때우는 데 주력해야 했다. 가장 많이 했던 건 잡담과 음악 감상. 그 잡담의 반 이상은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절반은 코디님과 이야기했다.


코디님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사촌 누나 같은 분이었고, 의사선생님은 엄마 친구분 같은 느낌? 우연히도 나와 코디님, 의사선생님 모두 광주 사람이었고, 그래서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의사선생님은 어머니 연배답게 결혼 생활이나 고부갈등 같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특히 아들로서 고부갈등을 어떻게 중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신 것들이 참 많았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와 아내가 싸우면 아내 편을 들어 주어야 한다던가? 또 애 낳을 때의 고통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셨는데, 입담이 좋으셔서 참 시간이 잘 갔다. 


이번 기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특히 기억나는 건 아무래도 기증받는 게 '피를 만드는' 세포이다 보니 기증자와 환자의 혈액형이 다를 경우 환자는 점점 기증자의 혈액형으로 바뀌어 간다고 하셨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거부반응 때문에 약 같은 걸 좀 써야 되고 귀찮은데, 내 경우에는 환자와 혈액형도 똑같아서 그 부분도 엄청 편하다고 했다.


코디님과 한 잡담은 주로 음악이나 게임, 직업에 대한 이야기들. 내가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한참 심규선 노래를 좋아할 때라, 목록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만 무한으로 들었다) 음악 취향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어 좋은 가수들을 추천받았고, 코디님은 자기 직업이 매일 출근하면서 뭔가에 얽매이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사람들만 관리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좋다던가, 게임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고 하시면서 프로게이머들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만약 남자친구나 남편이 프로게이머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정말 싫을 거 같다. 차라리 돈 적당히 버는 직장인이 낫다.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하셨다.


그런 잡다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기증이 어느 새 4시간째에 접어들고, 기증의 대부분이 끝났을 무렵. 아무리 계속 자세를 바꿨다고 해도, 하도 오래 누워 있었고 오래 뽑아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고 오른팔에 빨려 나가는 느낌이 강해지며 점점 경보가 자주 울리기 시작했다. 자세를 바꿔도 별 소용이 없어 코디님이 어깨 쪽을 주물러 주셨다. 의외로 악력이 장난이 아니셨고 효과가 있어서 경보가 덜 울리기 시작했지만, 어째 피를 펌프질해가는 거 같은 느낌과 함께 어깨 쪽이 살짝 아프기 시작했다. 이 때가 한 15000cc~16000cc 무렵? 


역시 18000까지 뽑는 건 역시 무리일 거 같아 17000cc정도에서 멈추기로 하고, 어떻게든 끝날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갔다. 사실 2차 기증 하기 싫어서 18000까지 뽑고 싶었지만, 1000cc정도는 별 차이 안 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그냥 17000까지만 했다. 코디님의 끝을 알 수 없는 체력이 신기했는데, 대충 삼십 분 가량의 시간 동안 강력한 악력으로 팔과 어깨를 주무르시면서 거의 끝나 갈 때까지 티끌만큼도 약해짐이 없었다. 마지막 몇 분 정도는 여러 사정으로 주무르는 걸 멈췄는데, 의외로 아픈 건 안 주무를 때가 더 심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코디님의 체력이 막바지에 상당한 도움이 됐던 거 같다.


그렇게 1차 기증이 모두 끝난 건 두 시 경. 원래대로는 양쪽 팔에 꽂힌 바늘을 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2차 기증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지만, 양 팔에 바늘을 꽂은 채로 있는 게 너무 성가셔서 의사 선생님과 딜을 해서 오른쪽 팔의 바늘은 뽑아 버렸다. 2차 기증이 결정되면 다시 꽂아야 한다지만 그 쯤이야 뭐. 당장의 안식이 더 중요했다.


침대에 오를 때처럼 팔을 쭉 펴고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딛고 서니, 일시적으로 느껴지는 약간의 어지럼증. 기증 과정 중 투입되는 혈액 응고 방지제 때문에 칼슘이 조금 모자라져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뭐 그래도 그다지 신경쓸 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병원 분이 휠체어를 들고 와 병실까지 이송해 주셨다. 난생 처음 휠체어를 타 본 것도 그렇고, 환자복 입고 휠체어까지 타고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가니(팔에 바늘도 하나 꽂혀있고) 진짜 환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참 묘했다.(실제로 그 순간은 어엿한 환자였지만)


그래도 몸은 괜찮고 오른팔 바늘도 뽑았으니 좀 돌아다녀볼까 생각했는데 방에 와서 침대에 앉으니 갑자기 급피곤. 아무래도 네 시간 반이나 걸린 기증의 여파가 있기는 했나 보다. 그냥 왼팔을 최대한 펴고 누워서 그대로 폭풍수면을 취하고 일어나니 대략 여섯 시 쯤.


잠깐 집에 전화하고 역시 맛대가리 없는 병원밥을 다 먹었을 즈음, 코디님한테 걸려 온 전화 한 통. 1차 때 뽑은 조혈모세포량을 검사해 보니 충분해서, 2차 기증을 안 해도 될 거 같다는 소식이었다.


발걸음도 가볍게 간호사분들께 가 바늘을 뽑아달라고 부탁하고, 잠시 뒤 방문한 간호사분(이분도 좀 예쁘셨다.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보였나?)이 왼쪽 팔 바늘을 뽑아주고 나니 진짜로 날아갈 거 같은 기분? 바늘 뽑힌 부분에 아주 살짝 느낌이 남아있는 거 외엔 온 몸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뭐 따지고 보면 변했던 것도 별로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검사 한두 번은 남았고 퇴원은 내일이라는 슬픈 진실. 밖에라도 나가볼까 했지만 오늘까지는 병원 안에 있어야 된다는 코디님 말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그래도 나가려는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병원복 입고 나가기는 쪽팔리고 갈아입기는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있었다.


그래도 고작 저녁 여섯 시부터 아무 것도 안 하고 방 안에 있기는 영 심심해 어디 갈까 생각하다가, 빌려왔던 친구의 노트북을 들고 병원 안에 있던 스타벅스로 갔다.


적당한 자리를 잡고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한 후 노트북을 켜고 하릴없이 웹서핑을 하다가, 아무래도 내 인생에서 한 번 뿐일 이번 일을 그냥 넘기기에는 아쉽다 싶어 메모장을 켜고 입원 중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 날부터 있었던 일들을 시간 구분 없이 기억나는 대로 한 줄씩 쭉쭉 써내려가자, 순식간에 수십 줄이 꽉 차고 시간도 쭉쭉 갔다. 물론 지금 쓰는 이 글도 그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어찌 보면 기획부터 실제로 써서 올리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 된다.


그렇게 시간을 적당히 때우다 보니 한두 시간이 금방 갔고, 방에 들어가 노트북에 담아온 셜록 1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맛없는 밥을 먹고, 퇴원 수속을 하고 마지막으로 코디님이 사주신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퇴원 수속 할 때 병원비가 194만원이나 나온 걸 보고 좀 놀랐다.(물론 재단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퇴원 며칠 후부터 쓰기 시작한 이 글을 타고난 게으름으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끌던 동안 집에는 감사패가 도착했고, 코디님의 전화를 통해 환자의 기증이 엄청 잘 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증 후의 건강 검진도 마쳤다. 물론 전혀 이상도 없고, 기증을 마치고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몸은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건강하다. 술을 잠시 못 마시는 게 아쉬웠지만, 건강검진 다음날 괜찮겠지 하고 친구와 마신 맥주는 여전히 맛있었고, 별 문제도 없어서 그냥 쭉 마셨다.(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심지어 기증날 저녁에 병원을 빠져나와 소주에 곱창을 먹으러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깡이 장난이 아닌 듯.)


어차피 환자를 직접 볼 수도 없고 이름도 뭣도 알 수 있는 건 없으니 생명을 구했다는 실감 같은 건 별로 안 나지만, 최소한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을 한 거겠지. 앞으로 살면서 많은 후회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 기증을 후회할 일은 평생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 그 이후에도 종종 환자분의 소식을 들었는데, 상태가 점점 나아지다가 결국은 완치까지 되셨다고 한다. 이 일로 재단 측에서 감사패도 받았고, 그 후에도 매 년마다 조혈모재단에서 선물과 행사에 대한 공지를 보내고 있다. 뭐 어찌 보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나마 가끔씩이나마 기억할 수 있다는 건 각별한 기분이다. 이 글도 몇 년 동안이나 이 작은 블로그의 가장 큰 간판이 되어 많은 분들이 기증을 결심했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는데, 내 작은 경험이 이런 식으로 세상에 무언가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여러모로 참 신기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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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트레이닝.

보관소 | 2014. 5. 4. 22:06
Posted by 메가퍼세크

작년 6월 말.


오랫동안 여러 사정으로 계속 미뤄왔던 보컬 트레이닝을 드디어 받기로 했다.


몇 달 전 친구와 같이 돌아다녔던 학교 근처의 여러 학원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회기역 쪽의 '스트럼스타일' 학원에 등록하고, 첫 달 강습비로 15만 원이라는 거금을 질러버린 후 바로 다음 주부터 레슨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학원의 보컬 선생님은 가수 지망생인 '소담' 이라는 분으로, 프로젝트 앨범으로 곡도 하나 내신 분이었는데 성격이 털털하셔서 수업 분위기는 항상 편했다. 첫 시간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과 복식호흡, 음정 연습 등의 기본기에 대해 배웠고, 두 번째 시간에는 평소에 자주 부르던 곡의 악보를 가져와서 목소리나 창법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무슨 곡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노래방에서 키 덜 낮추고 부를 수 있었던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 를 선택해 가져가 불렀는데, 평가는 그럭저럭. 목소리가 좋은 편이니 이적이나 김동률 같은 가수들 곡 중심으로 연습해 보라고 하셨다. 노래부를 때의 나쁜 버릇, 어설픈 비성이나 호흡과 같은 문제도 많이 지적해 주셨고.


그 이후로는 여러 연습곡을 중심으로, 곡의 표현에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차례차례 배우기 시작했다. 한 곡에 걸린 시간은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한 달 근처. 모두 기억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겠다.


1.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임재범


-두 번쨰 레슨 후 쌤이 어울리겠다며 정해 주신 노래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 이라는 첫 소절에서 락~할 떄 항상 호흡을 다 써버려서 쌤이 뭐 이리 야하게 부르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기본적인 호흡 관리와 완급 조절,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올바른 발성법을 중심으로 배웠다. 호흡량이 작아서 조금 길다 싶은 구간에서는 무조건 끊어 불렀는데, 임재범의 라이브 영상을 보니 그냥 쭈우우욱 부르면서 성량도 더럽게 크고 바이브레이션까지 넣길래 멘붕했던 기억이 있다.


2.오래된 노래-김동률


-첫 곡이었던 가로수가 끝나고 평소 하고 싶었던 곡을 골라 오라고 하셔서 선택했던 곡이다. 김동률 노래는 그나마 저음 톤이고 잔잔하게 부르는 곡이니 쉽겠거니 하고 골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철저한 오산이 되었다. 매 소절마다 나오는 바이브레이션과 끝나지 않는 고음부 때문에 곡을 배우는 내내 고통받았으니까. 배를 잔뜩 부풀리고 키보드 앞에서 혼자 아아. 아아아. 하면서 바이브레이션 연습만 수십 시간은 한 것 같다. 그래도 막상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가니까 내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렸고, 지금도 연습한 곡 중 가장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곡이다.


3.good bye-air supply


-팝송. 다른 노래를 부를 때 겪던 문제들에 발음 문제까지 합쳐져 더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곡 자체는 좋았는데 다음 곡의 사정 때문에 그리 오래 하지는 못했다.


4.the concert-김동률


-졸업하기 전에 학과 행사에서 노래를 해 보고 싶어, 그 전 곡을 접고 연습했던 곡.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던 무대에 올라 눈부신 조명 속에서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마치고 내려간다는, 졸업 무대에 어울리는 멋진 가사 때문에 선곡했다. 


김동률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때문에 오래된 노래에서와 같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 곡에서는 네다섯 마디가 넘는 긴 바이브레이션으로 여운을 남기는 부분이 많아서 더 고생했다. 똑같은 멜로디에 점점 조를 바꿔가며 웅장해지는 구성이 듣기에는 참 좋은데 부르는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었고, 결국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를 살짝 내리고 마지막 8마디 바이브레이션을 다소 포기하면서 타협해서 불렀다.


실전에서는 엄청난 긴장 때문에 음정도 불안해지고 분위기도 제대로 못 살리고 여러 가지로 만족할 만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생 처음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5.서울의 달-김건모


-리듬감 있는 노래도 한 번 해 보자는 취지에서 쌤이 선택해 주신 노래. 일반적인 발라드 같으면서 리듬 타는 부분도 꽤 있는 참 특이한 곡이었다.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6.기억의 습작-김동률


-하고 싶은 곡을 다 뽑아 오래서 한 7개를 뽑아갔는데 제일 뒤쪽에 있었던 이게 뽑혔었다. 이것까지 해서 김동률 노래를 이미 두 개나 연습해서 그나마 좀 나았고, 살인적인 난이도를 자랑했던 the concert에 비하면 천국이었지만 역시 고음부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고생했다. 처음 부분부터 올라가기 전까지는 괜찮다가, '나에게 말해봐' 부터 시작되는 엔들리스 고음부를 다 부르고 나면 온몸의 힘이 다 빠져서 떡실신. 최고음도 장난 아니게 높다 보니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삑사리가 나기 십상이라 집중력과 체력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곡이었다.


7.나란 놈이란-임창정


-불렀던 모든 곡 중에 가장 특이한 축에 드는 곡이었다. 시작하는 음역대부터 궤를 달리하고, 멜로디 진행도 급격한 음 변화가 많고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부분과 음 하나 하나를 강조하면서 부르는 부분이 명확히 나뉘어서 한 소절 한 소절이 기가 차도록 어려웠다. 그래도 뭐 지금까지 안 어려운 노래가 없었으니 그런갑다 하고 더 빡세게 연습. 노래의 맛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8.desperado-임재범


-마지막이 된 곡. 원곡이 애드립과 소울로 가득차 있어서 따라부르기가 정말 힘들었다. 거의 랩처럼 빠르게 뭉개고 지나가는 부분도 있고 음이 위로 빙빙 휘돌아 아래로 내려가는? 부분들도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따라해봤는데, 결국 임재범의 소울에는 따라갈 재간이 없더라. 결국 너무 빠른 가사나 복잡한 부분을 조금 컷트하고 오버하지 않으면서 불렀다. 나름 정말 열심히 했지만 원곡이 너무 미쳐서 따라갈 수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무려 8개월 남짓 동안 저렇게 많은 곡을 연습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결국 무언가를 익히는 데 왕도란 없다는 것. 복식호흡, 음정 연습, 바이브레이션과 같은 여러 기본기를 몇 달 간 매주 몇 번씩 연습실에 나가 죽어라고 반복하면서 스스로는 잘 몰랐지만 매 곡마다 녹음한 파일들을 들어보면 확연히 달라지고 있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결국 모든 과정이 끝난 지금은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하기 전보다는 꽤나 나아진 실력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아직 어디 가서 '노래 잘한다' 라는 소리 들을 만큼은 안 되지만, 계속 노래를 즐기고 스스로 단점을 고쳐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만족할 만큼은 노래할 수 있겠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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