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와 동기의 순수성
며칠 새 큰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파리에서는 테러가 일어나고, 서울에서는 대규모 시위와 그에 대한 강경진압이 이슈가 되고. 페이스북에서는 온통 그 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뭐 그런다보다 하고 스크롤을 내리는데, 어쩐지 평소와 달라 보이는 프로필 사진들. 테러를 겪은 프랑스와 파리 시민들을 응원한다는 뜻에서, 페이스북에서 프로필에 프랑스 국기를 덧씌우는 기능을 만들었다고 한다.
분명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겠지만, 어쩐지 못마땅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삐딱해서일까. 예전 아이티 지진 때부터 세월호, 아이스버킷, 오바마의 동성애 지지 법안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슈'나 '캠페인' 등이 SNS와 매스컴을 점령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참할 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약간의 불편함이 항상 내 마음 속에서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대중 매체를 통해 어떤 이슈를 접하고, 그 이슈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그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은 과연 순수할 수 있을까. 예컨대 어떤 국가적인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면, 아무리 큰 참사라고 해도 결국 자신과 상관 없는 타인의 일인 이상 딱히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관심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면, 그 안에서 '나는 슬프지 않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분위기도 파악 못하는 푼수로 취급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 흔한 현상에는 큰 문제가 있다. 우선, 나와 아무 관계도 없고, 내 주변에도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단지 텍스트 몇 줄과 사진, 또는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된 사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당장 내가 아프리카에서 여러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정확한 통계 그래프와 숫자들을 들고 와서 여기에 첨부한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심하게 동요하고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스토리를 담은 영상을 첨부한다면, 이전의 경우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동정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정은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렇듯 현실의 심각성과 객관성에서 유리된 시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강한 감정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위의 예시 속에서 불쌍한 어린아이에게 동정심을 느낀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찾아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람들에 비해 잠깐 생각하다가 몇 분 안에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최소한 천 배는 될 거라는 데 돈을 걸겠다.
결국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단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이슈에 대해,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지도 않을 어떤 감정을 가진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이슈에 대해 눈꼽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작은 행동으로 그 일시적인 감정을 표출하며 자기만족하는 건, 또 어떤 의미가 있을가? 이것이 나에게 있어 이번 페이스북의 프랑스 국기 프로필이 못마땅한 이유다.
끝으로, 세월호와 아이스 버킷 챌린지, 파리 테러 같은 여러 사건들을 처음 접하고 내가 느낀 솔직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한 문장으로 표현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어차피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합리한 이유로 매 초마다 죽어가고 있을 텐데, 단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규모의 인명이 죽었다고 해서 굳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터무니없는 위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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