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와 동기의 순수성

자아성찰/가치관 | 2015. 11. 15. 14:54
Posted by 메가퍼세크

며칠 새 큰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파리에서는 테러가 일어나고, 서울에서는 대규모 시위와 그에 대한 강경진압이 이슈가 되고. 페이스북에서는 온통 그 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뭐 그런다보다 하고 스크롤을 내리는데, 어쩐지 평소와 달라 보이는 프로필 사진들. 테러를 겪은 프랑스와 파리 시민들을 응원한다는 뜻에서, 페이스북에서 프로필에 프랑스 국기를 덧씌우는 기능을 만들었다고 한다.


분명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겠지만, 어쩐지 못마땅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삐딱해서일까. 예전 아이티 지진 때부터 세월호, 아이스버킷, 오바마의 동성애 지지 법안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슈'나 '캠페인' 등이 SNS와 매스컴을 점령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동참할 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약간의 불편함이 항상 내 마음 속에서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대중 매체를 통해 어떤 이슈를 접하고, 그 이슈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그 의견을 표현하는 과정은 과연 순수할 수 있을까. 예컨대 어떤 국가적인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면, 아무리 큰 참사라고 해도 결국 자신과 상관 없는 타인의 일인 이상 딱히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관심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면, 그 안에서 '나는 슬프지 않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나 분위기도 파악 못하는 푼수로 취급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 흔한 현상에는 큰 문제가 있다. 우선, 나와 아무 관계도 없고, 내 주변에도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단지 텍스트 몇 줄과 사진, 또는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된 사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당장 내가 아프리카에서 여러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정확한 통계 그래프와 숫자들을 들고 와서 여기에 첨부한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심하게 동요하고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스토리를 담은 영상을 첨부한다면, 이전의 경우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동정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정은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렇듯 현실의 심각성과 객관성에서 유리된 시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강한 감정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위의 예시 속에서 불쌍한 어린아이에게 동정심을 느낀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찾아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람들에 비해 잠깐 생각하다가 몇 분 안에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최소한 천 배는 될 거라는 데 돈을 걸겠다.


결국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단지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이슈에 대해,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지도 않을 어떤 감정을 가진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이슈에 대해 눈꼽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작은 행동으로 그 일시적인 감정을 표출하며 자기만족하는 건, 또 어떤 의미가 있을가? 이것이 나에게 있어 이번 페이스북의 프랑스 국기 프로필이 못마땅한 이유다. 


끝으로, 세월호와 아이스 버킷 챌린지, 파리 테러 같은 여러 사건들을 처음 접하고 내가 느낀 솔직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한 문장으로 표현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어차피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합리한 이유로 매 초마다 죽어가고 있을 텐데, 단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규모의 인명이 죽었다고 해서 굳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터무니없는 위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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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김동률 'The concert'

경험 | 2015. 10. 12. 11:31
Posted by 메가퍼세크

김동률 콘서트에 다녀왔다.


몇 년 전 김동률 음악에 걷잡을 수 없이 꽂힌 때부터 언젠가는 가야지 하고 생각했던 곳. 돈이라던가 시간이라던가 망설임 같은 자잘한 문제들로 몇 번 없던 기회들을 항상 놓쳐오다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갈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콘서트의 이름은 'The concert'. 콘서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그린 곡의 제목.

원래부터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지만, 콘서트의 제목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콘서트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으로 꺼내지 않을까 했는데, 끝까지 나오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콘서트보다는 음악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곡 하나하나마다 세심한 편곡으로 곡 자체의 분위기와 전체의 흐름을 살렸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가 많은 부분에서 느껴졌다. 전체적인 곡의 템포도 조금 느리게 잡았는데, 한 음 한 음을 놓치지 않으며 전력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김동률의 모습을 보며 가수도 성대라는 악기를 사용하는 연주자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곡 사이의 멘트 시간도 그랬다. 말주변도 별로 없고 말투도 조용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진지함과 겸손함이 느껴졌고, 곡에 대한 설명이나 관객에 대한 감사를 말할 때는 활기가 느껴졌다. 이 사람은 정말로 교과서적인 '음악가' 구나. 음악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음악에서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곡의 레퍼토리도 대부분 오래된 앨범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누구나 아는 곡도 있었지만 조금 생소하거나 새로 알게 된 곡들도 꽤 있었다. 거의 모든 곡이 최고였지만 가장 좋았던 곡은 '그게 나야', '그 노래', '동행' 의 세 곡.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감정의 흐름이 머리에서 머리로 직접 전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보였음에도 가볍거나 활발한 곡들의 선곡이 거의 없었다는 점. 개인적으로 '구애가' 나 '출발' 같은 곡들도 듣고 싶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이적이나 소속사 막내 같은 게스트를 활용해 분위기를 잠시 전환시키기는 했다. '거위의 꿈' 이나 'advice' 같은 듀엣 곡들도 좋았고, 이적이 '하늘을 달리다' 로 한바탕 뒤집어놓고 간 분위기를 질 수 없다며 '취중진담' 으로 수습하는 모습도 웃겼다. 아무래도 힘들었는지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몇 소절을 날로 먹는 부분도.


올림픽 체조경기장이라는 큰 무대는 그동안 경험했던 공연들과는 많이 달랐고, 사람들의 바다에 파묻혀가며 운동 경기 관람용의 딱딱하고 좁은 의자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만여 개에 달하는 좌석을 빼곡하게 메운 사람들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장관이라고 생각했다. 오직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교감한다는 것은,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얻을 수 없는 희소한 행복이겠지. 언젠가 나도, 어느 분야에서든 저런 행복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콘서트의 마지막 곡을 들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세상물정의 물리학

취미/책 | 2015. 9. 22. 18:59
Posted by 메가퍼세크



대형 서점의 하고많은 코너들 중에서도, '자연과학'은 가장 한산한 코너들 중 하나일 것이다. 출판된 지 수십 년이 넘은 외국 석학의 책이 맨 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그 아래에는 십수년 쯤 된 국산 대중과학서가 있고,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초중고 대상 과학상식집이 빈 자리를 채우는 광경은 퇴적암의 지층을 연상하게 한다. 그나마 개중 괜찮은 책들을 보고 입문하게 된 몇 안 되는 사람들은 곧 턱없이 부족한 바리에이션과 도통 들려오지 않는 신작 발매 소식에 진저리를 치다가 이윽고 흥미를 끊어 버리기 일쑤고, 안 그래도 좁은 과학책 시장은 날이 갈수록 더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간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신작 과학책의 소식은, 기다림에 지쳐버린 소수의 과학 책 독자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고 할까. 응원하는 팀이 꼴찌를 전전하다가 큰맘먹고 영입한 특급 신인을 보는 기분으로 책을 펼쳤다.


책의 제목은 '세상 물정의 물리학'. 거시적 현상을 기술하는 통계물리학의 방법론을 이용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세상물정' 이라는 오랜만에 듣는 단어에서 묻어져 나오는 느낌과 같이, 목차에서는 서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서른 개의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 콘서트',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같은 오래된 대중 과학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찌 보면 해묵은 구성이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세상물정' 이라는 주제에는 딱 어울린다고 할까. 게다가 각 단원의 내용이 아주 독립된 것도 아니어서, 각 챕터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들에서는 충분한 일관성과 통일성이 느껴진다. 마치 주인공이 통계물리학이라는 무공을 가지고 여러 문제들과 싸우러 돌아다니는 무협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저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었다. 과학이라는 하나의 렌즈로만 세상을 보는 많은 과학자들과 달리,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는 인문학적 감수성과 관점, 상상력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진달래꽃' 을 통해 관계맺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사랑과 미움의 비대칭성을 통해 인간 관계의 특성을 분석하며, 교육과 기대 소득의 관계를 통해 사회 구조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다양한 분야들을 아우르는 저자의 통찰이 느껴졌다한 부분에만 열중하지 않고 자연의 거시적인 부분을 조망하는 통계물리학자로서의 능력일까


대중에게 외면받고 오랜 침체기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책 시장에서, 이 책의 성공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만이 느끼는 무언가를 대중의 언어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책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로 포스팅을 마치겠다.


"물론 이러한 '궁극의 이론'을 알게 된다고 해서 물리학자들의 할 일이 더 이상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알파벳들을 제대로 알게 되면 이제 '자연의 시'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시' 를 쓸 일이다. 아래로 내려가 드디어 우리가 단단한 땅 위에 섰다면, 이제는 눈을 들어 저 하늘로 오를 일이다. 통계물리학은 바로 그 사다리다. 물론 사다리의 길이가 무한대라 문제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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