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이드 스쿼드 후기
최악을 예상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뇌를 비우고 액션만 보면 적당히 볼만하긴 한데,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나 바보같은 장면들이 자꾸 눈에 띄어서 한 번씩 헛웃음이 나오는 그런 정도?
신기한 건 예전에 명량을 봤을 때 느낀 실망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거다. 영화의 주제에 맞는 씬(명량:전쟁 자살특공대:전투, 광기)에 집중하기보다 감성팔이에만 치중했다고 할까? 아무 필요없이 나오는 눈물짜기 연출에 억지로 집어넣은 백병전 연출(이순신 무쌍, 최종부 인챈트리스 쌈질)까지. 전체적으로 흥행하고 싶어서 억지로 집어넣은 장면들이 개연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런 게 싫어서 한국 영화를 안 보는데 DC까지 이러고 자빠지다니.
게다가 이런 류의 영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캐릭터 디자인과 개성도 생각보다 개판이었다. 존재감도 없는 부메랑 던지는 놈이나 나올 때마다 오글거리고 어색하기만 한 일본 여자 칼잡이를 시작으로, 광기의 끝을 보여주기는커녕 그냥 총 좀 잘 쏘고 쌈 좀 잘하는 주연 캐릭터로 바뀐 할리퀸과 조커에, 하수구에 사는 괴물 주제에 너무 인간답고 마음에 그늘도 없고 심지어 어디가 나쁜지조차 잘 모르겠는 킬러 크록. 그나마 데드샷이나 엘 디아블로는 좀 멋졌지만 이 둘도 전혀 악당같지는 않다. 유일한 악역인 인챈트리스가 그 절정인데, 넝마 쪼가리 걸치고 순간이동으로 기밀문서 셔틀이나 하다가 빡치니까 오빠 불러서 징징거리기나 하고. 나중에는 세상을 멸망시킬 무기를 만든답시고 엉덩이나 흔들다가 뜬금없이 또 내려와서 쌈질 좀 하다가 갑자기 또 염력을 쓰는가 하면 마지막엔 폭탄 한 방에 가고.. 캐릭터의 강렬한 매력이라는 건 분장 좀 세게 하고 cg 떡칠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애초에 영화 내에서 애네가 나쁜 짓을 하는 장면이라는 거 자체가 번갯불에 콩 볶듯 몇 초로 끝나는데 나쁜 놈이라고 인식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그냥 인상 좀 더럽고 말 좀 미친놈처럼 하면 다 나쁜놈인가? 이건 '나쁜놈들' 을 모은 게 아니라, '쌈 좀 잘하는 놈들' 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쌈 잘하고 총 잘쏴서 대단하다는 평을 들었나?
하긴 애초에 미친놈들을 모아서 부대로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광기와 난폭함, 빌런의 미덕과 같은 여러 특성들은 결국 예측 불가능성과 자유로움에 기반을 두고 있을진대, 목에는 폭탄이 심어지고 자기 목숨을 내놓고 강한 적과 싸우는 판에 광기 표현한답시고 이상한 짓 하다간 죽기밖에 더 할까?(실제로 한 놈 죽었고) 개인 영화들이 한 개씩 있는 상황이었다면 몰라도, 다 처음 나오는 듣보잡들인데 개성을 보여줄 시간도 없이 쌈박질만 하니 이게 히어로 영환지 악당 영환지.
시작부터 캐릭터성을 존나 강하게 표현하겠다는 의도를 너무 대놓고 풍기는 감옥 씬들로 시작해서 뭔 카탈로그마냥 빌런들 하나씩 능력과 사연을 소개하고, 모아서 쌈박질 하러 가는 극도로 뻔하고 예측 가능하고 평면적인 전개나, 아주 개판은 아니지만 묘하게 조금씩 모자라고 공감 잘 안 가는 연출이나 모자란 개그 센스까지. 세세한 부분들까지 참 꼼꼼하게 개판인 영화다.
그래도 뭐, 데드샷이나 할리퀸의 액션은 나름 괜찮았으니 그냥 그거 본 걸로 만족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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