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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입문기.

취미/기타 | 2017. 12. 26. 22:03
Posted by 메가퍼세크

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꽤 된 것 같다.


처음으로 티백을 샀던 시점으로부터 계산하면 3년 남짓, 처음으로 찻잎을 산 때부터는 2년 정도. 차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 입장에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일 수 있겠지만, 정말로 문외한이었던 시절부터 생각하면 나름대로 제법 많은 단계들을 거쳐왔다고 생각한다. 그 소박한 과정과 행복들을 언젠가 잊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안타까움이 남아, 짧은 글로나마 기억을 정리해 보려 한다.


처음으로 홍차라는 음료의 매력을 알게 된 계기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홍대의 한 찻집. 커피를 주로 하는 일반적인 카페가 아니라, 정말로 차만을 주 메뉴로 내놓는 '찻집' 이었다. 그동안 대충 우려낸 립톤 티백밖에 몰랐던 입장에서는 온갖 찻잎의 이름과 특징들이 적힌 메뉴판만으로도 신기했는데, 사진에서나 볼 법한 하얀 찻주전자와 찻잔, 보온을 위한 천 덮개까지 딸려나오는 디테일함이 참 인상깊었다. 그 때 마셨던 차는 '웨딩 임페리얼' 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찻잔에 따르자마자 확 풍기는 진한 향기와 은은한 맛, 곁들여 먹었던 스콘의 맛까지 그야말로 모든 게 완벽하게 만족스러웠다. '몇 잔이라도 끝없이 마시고 싶다' 는 생각에서부터 '그동안 왜 이런 걸 몰랐을까' 라는 후회, '앞으로 살면서 이런 걸 계속 마실 수 있다면, 인생이란 건 꽤 살 만한 게 아닐까' 라는 감정까지도 이끌어낼 정도로, 살면서 느꼈던 가장 깊고 진실한 만족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 짧은 만족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본격적인 찻잎은 생각보다 너무 양이 많았고, 몇 번 마시고 내팽개치는 애물단지가 될까 싶어 근처 마트에서 산 얼그레이 티백 한 통이 내가 스스로 구입한 첫 홍차였다. 비록 크게 비싼 티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느꼈던 만족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은 상당히 뿌듯했고, 나름대로 우리는 시간도 바꿔보고 어울리는 과자도 찾아가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새로운 취미에 익숙해졌다. 마침 그 즈음에 사는 곳도 바뀌고 취업 비슷한 것도 해서, 기념삼아 처음으로 진짜 잎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구입했던 브랜드, 트와이닝스.>


그저 처음에는 클래식한 게 좋겠지 싶어 트와이닝스라는 브랜드의 다즐링(왼쪽)을 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홍차의 강한 향에 매료된 초보자에게 다즐링의 향은 너무 은은했고, 언뜻 녹차와도 비슷한 그 느낌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산 지 한 달 남짓은 의욕적으로 마시다가 어느새 잊어버리고, 몇 달간 방치해두다가 밀크티 시도해본다고 좀 마시고, 홍차시럽 시도해본다고 또 손대고... 그러다 보니 결국 다 마시는 데 한 일 년은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찻잎 한 통을 비웠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하얀 본차이나 다구들과 함께 산 게 오른쪽의 레이디그레이. 트와이닝스의 대표적인 상품이고, 초심자에게 추천한다는 리뷰를 보고 덜컥 질렀는데 상당히 괜찮았다. 조금 연하고 녹차같은 느낌이 났던 다즐링에 비해, 레몬처럼 상큼한 향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쉽게 지루해지는 생물인 탓인지, 아무리 좋은 향이라도 매일같이 하나만 마시다 보면 물리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얼마 안 되는 인내심이 지름신의 유혹에 순식간에 패퇴하고 통장 잔고의 숫자 몇 개를 바꿔놓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수순과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자낫-노르망디 뽐므>(왼쪽)

<티센터 스톡홀름 블렌드>(오른쪽)

<꽁뜨와 프랑세 뒤 떼-떼 드 리베흐>(아래)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나가면 안 되겠지 싶어 세 통으로 제한을 걸고, 다양한 향을 맛보고 싶었으니 최대한 느낌이 다른 것으로,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쇼핑몰을 뒤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과정조차도 사실은 꽤 마음에 들었다고도 할까. 찻잎의 향과 느낌에 대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과 묘사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끝에 찾은 최적의 답이, 이 세 종류의 찻잎이었다.


먼저 사과를 뜻하는 '뽐므' 라는 이름이 붙은 첫번째 차는, 숯덩이같이 검은 색의 찻잎과 그에 걸맞은 강력한 떫은 맛, 뭔가 약재 냄새 같으면서도 곰곰히 짚어보면 사과의 느낌이 나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차들과 비슷한 시간을 우려도 월등히 떫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짧은 시간을 우리면 향이 충분히 우러나오지 않아, 초 단위의 정확한 시간 조절을 필요로 하는 상당히 고난이도의 잎이었다.


하지만 그런 높은 난이도와 성공했을 때의 중후하면서도 달작지근한 향은 열정에 불타는 초보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도전 과제가 되었고, 실수로 떫게 우려져도 커버할 수 있는 단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집어들게 되곤 하는 차였다.


두 번째, '티센터 스톡홀름 블렌드' 는 대중적으로 꽤 인기가 많은 것 같았는데, 올록볼록한 요철과 함께 세심하게 디자인된 차 용기도 그렇고, 홍차 특유의 따뜻한 느낌과 레이디그레이를 닮은 시트러스의 시원한 향,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이름 모를 보라색 느낌의 향으로 이루어진 완성도 높은 향의 스펙트럼, 그리고 다른 차보다 조금 더 우려도 그렇게 떫지 않은 부드러움을 가진 붙임성 있는 찻잎이었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가벼운 느낌으로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너무 가라앉은 마음을 조금 편하게 놓아주고 싶을 때, 그리고 홍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 처음 대접하고 싶을 때 안성맞춤인, 보편적이고 편안한 느낌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마지막 차 '떼 드 리베흐' 는 프랑스어로 '겨울의 차' 라는 뜻인데, 그 이름처럼 따뜻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조금 밝은 갈색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가지고 있었다. 스톡홀름 블렌드와 같은 상큼한 느낌은 없지만 완만하게 풍겨져 오는 따뜻함과 그 사이사이 풍겨오는 고풍스럽고 깊은 향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세 종류의 차를 차례로 즐기는 경험은 어느덧 하루에 한 번씩 맡는 향과 목을 넘어가는 따뜻한 액체의 느낌에 익숙해지게 만들었고, 그렇게 형성된 나의 작은 의식은 이윽고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었다. 언젠가 무슨 이유로든 이런 느낌과 감정을 잃어버리고 다른 취미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해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개척한 이 작은 즐거움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는 한 조각으로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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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가퍼세크

보통 '안경닦이' 라고 부르는, 안경을 닦는 데 쓰이는 극세사 천은, '계륵'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물건이다. 있으면 여러 모로 좋지만, 딱히 없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옷자락 같은 적당한 천으로 안경을 닦다가 생긴 자잘한 기스들을 보면서 안경닦이의 필요성을 느낄 때도 많지만, 안경을 쓰고 다니는 모든 곳에 손수건만한 천을 챙겨 가기도 귀찮고, 막상 들고 나가서 잃어버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딜레마 때문인지, (특히 남자들의 경우) 이 작은 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은근히 찾아보기가 힘들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안경을 쓰기 시작한 어릴 적부터 잃어버린 안경닦이가 최소한 수십 장. 하도 잃어버리다 못해, "비싼 안경닦이를 사면 안 잃어버리겠지?" 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도달해 인터넷을 뒤졌던 적이 있었다.(아마 5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도레이시' 라는 일제 안경닦이가 좀 비싸지만 엄청 좋다는 말을 듣고 바로 주문, 만 원 근처라는 안경닦이로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놀랐지만, 생각보다 엄청 뛰어났던 성능에 만족하고 소중히 썼다. 하지만 사람의 습성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기에 몇 달이 지나기도 전에 그 비싼 물건조차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즈음에 바쁜 일들이 많았던지, 어쩌다 보니 다시 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안경점에서 공짜로 주는 안경닦이를 쓰게 되었다.


얼마 전에 다시 생각이 나서 해당 상표의 안경닦이를 찾아보았지만, 해당 상품은 이미 품절에 새로 들어올 기약도 없고, 국내에서 구할 방도가 없는 상황.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거진 한 시간여의 검색 끝에 이베이와 아마존닷컴에서 '도레이시' 라는 이름의 천조각을 찾았고, 배송비 포함 17유로(대략 2만원 이상)에 가까운 미친 가격에 잠깐 고민했지만 마침 한창 돈 쓸 데가 없던 상황이라 그냥 질러버렸고, 얼마 전 한국에 물건이 도착했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을 넘어 다시 재회한 그 물건의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


역시 비싼 몸이라 그런지, 흰색 바탕에 일부분만 물건이 보이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포장이 참 멋지다.

안경을 쓰는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색다른 선물로도 괜찮을 것 같다.


'Multi-purpose washable micro fibre lens cloth' 라는 긴 문장은 이 물건의 용도와 재질, 특성을 명확히 설명해 준다.


'다목적의, 세탁 가능한, 극세사 재질의 렌즈 클로스'


그런데, 잠깐의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이 문장의 진의는 놀라웠다.


'극세사' 라는 단어는 한 가지 섬유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는 실' 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고, 극세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이, 'NP분할사' 라고 하는, 단순히 하나의 섬유를 잘게 쪼갠 종류의 극세사로, 직경은 대략 5마이크로미터 정도. 보통 안경점에서 나누어 주는 공짜 안경닦이는 보통 저급의 NP극세사를 일반적인 굵은 실과 혼방하여 직조하는 것으로, 원가는 겨우 100원 이하.


그에 비해 이 렌즈 클로스를 직조하는 데 쓰인 극세사는 '해도사' 라고 하는, 특수한 화학 공정을 통해 처음부터 엄청나게 얇게 제조한 고급 실로, 직경은 2마이크로미터 정도에 NP분할사와 달리 단면이 둥근 모양이라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제조 원가도 비싸고 제조에 드는 기술력이 상당해서, 이 상품의 제조사인 일본의 '도레이' 나, 한국의 '코오롱' 같은 몇몇 기업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고.


워낙 얇다 보니 렌즈에 닿는 표면적이 넓어 본연의 목적(렌즈 클리닝)에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보통 비누로 거품을 내도 극세사 때문인지 거품이 거의 쉐이빙 폼에 가까울 만큼 작고 균일하게 나서 미용 목적으로도 많이 팔린다는 믿기지 않는 말도 있었다.


말 그대로 '다목적' 의, '질 좋은 극세사를 사용한', '최고급'의 렌즈 클로스. 이런 놀라운 품질에 대한 광고문구나 설명서 하나도 없이, 그저 시크하게 한 문장으로 상품 설명을 끝냈다는 건 대체 어떤 자신감일까. 


아무튼, 설레발은 이쯤 하고 상품을 개봉해 보자.




일단 순수 극세사라 그런지, 두께가 정말 얇다. 양면에 손가락을 마주대고 비벼 보면, 천 특유의 부피감은 간데없고 거의 기름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둔 느낌? 약간 손수건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말도 안 되는 두께 때문에 확실히 구별된다. 그렇게 얇음에도, 말도 안 될 만큼 치밀해 직조물 특유의 체크무늬는 거의 보이지도 않으며, 엄청나게 가까이에서 쳐다보아야 거의 점에 가까운 조밀한 벌집 모양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시험삼아 렌즈를 닦아보니 그 두께 때문에 거의 손가락으로 직접 렌즈를 닦는 느낌이면서도, 렌즈에 묻은 모든 기름기나 이물질이 천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참 신기했다. 가장자리의 마감 처리도 상당히 꼼꼼하고 촘촘해서, 아무리 사용해도 실 한 오라기 하나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좋은 지갑을 사면 돈을 많이 쓰게 되고, 좋은 신발을 사면 많이 걸어다니고 싶게 된다고 했던가. 앞으로는 안경을 닦는다는 것의 느낌이 참 많이 달라질 것 같다. 물론 그 느낌에는, 무려 2만원이나 하는 렌즈 클로스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긴장도 (좀 많이)섞여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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