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RPG2000으로 만들어진 어떤 게임의 BGM이 너무 좋았다.
게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주인공이 피리를 불어 주는 장면에서 그 BGM이 나왔는데, 그 BGM 하나를 들으려고 그 장면 바로 앞에서 세이브를 해 놓고 수십 번씩 로드해서 듣다가, 나중에는 검색을 통해 그 게임을 뜯어서 음악을 추출해낸 후 또 죽어라고 들었었다.(게임은 그냥 그럭저럭이었던 거 같다)
어제 저녁에 오랜만에 다시 듣고 싶어 그 음악을 검색해보려 했지만, 간단한 멜로디 라인과 RPG2000 게임이라는 힌트만 가지고 노래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대략 한 시간 정도 헛짓을 하다 직접 음을 찍어보기로 결심했다.
눈꼽만큼 다룰 줄 아는 기타프로를 잡고 한 시간 정도 끙끙대면서 기억에 있던 멜로디라인을 구현해냈고, 악기는 오카리나로 설정해 유튜브에 업로드.(그래봐야 조악한 미디음이긴 하지만)
자주 가던 게임 사이트 게시판에 동영상 링크를 걸어 질문글을 올리자, 답은 3분만에 나왔다.
영웅전설 5-바다의 함가 오프닝. 당시에도 매우 호평받던 노래라고 한다.
답변하신 분이 걸어 준 링크로 들어가니 확실히 맞는 멜로디였지만, 기억 속에 있던 것보다는 약간 다른 느낌.
그 미묘한 느낌을 설명하려고 댓글 몇 개를 할애하다가 그냥 포기했는데, 오늘 그 사이트에 다시 접속해 보니 그 밑 댓글로 링크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3분 13초부터)
링크에 들어가 보니 정확히 내가 들었던 그 음악이었다. 답변해 주신 분은 그 게임의 팬으로, 내 글을 보고 답변해 주기 위해 가입했다면서 링크 아래에 곡과 게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주셨다.
역시 명작에 대한 추억은 어디 가지 않는구나. 이런 멋진 멜로디를 만들어 낸 팔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 참 신기하기도 하다. 댓글들을 보면 원래 BGM이 유명한 회사라 음반을 사면 게임이 덤으로 따라온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게다가 이 게임은 그 중에서도 레전드로, 제목부터가 '바다의 함가' 로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그런지 한층 더 퀄리티가 미쳤다고 한다. 각 챕터의 이름도 전주곡, 광상곡, 행진곡 등 악곡의 형식을 따 붙였을 정도.
수십 번쯤 무한반복으로 곡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문용 오카리나 가격을 검색하고 있었지만, 불 곳도 없고 불 시간도 없으며 가격도 비싸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순식간에 때려쳤다. 나중에 돈 왕창 벌면 방음 되는 방 하나 만들어서 악기 미친 듯이 다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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