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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루시아

취미/음악 | 2015. 4. 25. 11:57
Posted by 메가퍼세크



그대의 낱말들은 술처럼 달기에 
나는 주저 없이 모두 받아 마셔요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너는 나를 다 믿었죠 

어떤 때에 가장 기쁨을 느끼고 
어떤 때에 가장 무력한 지 
나 자신도 알지 못 했던 부분과 
나의 모든 것에 관여되고 있어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그러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떠났다가 다시 오라 내게 머물지 말고 

부유한 노예 녹지 않는 얼음 
타지 않는 불 날이 없는 칼 
화려한 외면 피 흘리는 영혼 
하나인 극단 그것들의 시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그러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그래 녹지 않는 얼음처럼 
아픔을 마비하고 고통을 무감케 해 
함께 할 수 없을 거예요 
서로를 찢고 할퀼 거예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모를 거예요 

그대의 낱말들은 
그대의 낱말들은 




루시아의 가사는 무언가 특별하다.


소재의 선택이나 본인의 감성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그 소재와 감성을 가사로 담아내는 표현 능력.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주제라도 다른 사람들이 조망하지 않았던 측면을 파고들어 자신만의 새로운 정서로 다시 창조하는 느낌이 든다.


이 곡은 그런 측면이 가장 잘 돋보이는 곡 중 하나다.

'햄릿' 의 등장인물인 오필리아의 정서가 소재인데, 얼핏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인다. 사랑과 집착이라는 두 가지 정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문화 컨텐츠에서 가장 널리, 많이 쓰이는 소재에 속하고, 잠깐 가요 차트만 뒤져도 그에 대한 곡을 수십 개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의 내용을 아는 사람에게, 곡의 가사는 다르게 들린다.


'햄릿'의 도입부에서, 오필리아와 햄릿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복수에 눈이 먼 햄릿이 미친 척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도를 당하고, 복수극에 얽힌 사고로 자신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마저 잃은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해 미쳐버리고 결국에는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런 죄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사람에게 매도당하고, 아버지까지 잃어버리게 된 비련의 여인 오필리아. 그럼에도 이전의 사랑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면, 그 정서는 이 노래의 가사와 같지 않았을까. 햄릿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실성한 오필리아가 부르는 아리아는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곡에 쓰여진 표현들이다. 일반적인 사랑노래들의 레퍼토리처럼 사랑의 대상에 집중해 그저 자신의 사랑을 토로하고 애원하는 대신, 이 곡은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은유와 비유를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대신 '당신의 낱말들은 술처럼 달고,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당신은 나를 믿어 주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당신을 영원히 생각하겠습니다' 대신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하고, 영원히 안고 있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장본인을 사랑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한탄하는 대신 수많은 역설적 상황에 대한 묘사와 내적 갈등에 대한 암시로 곡 속에 녹여냈다.


결국 이 곡의 가사는 햄릿이라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등장인물에 대한 깊은 감정 이입.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 능력이 합쳐져 탄생한 훌륭한 2차 창작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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